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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몸에 손대면 금지선 침해 … 경계 존중 교육 시급하다

후진적 조직 문화 바꾸기 
지난 26일부터 포스텍(옛 포항공대)에선 여교수와 남학생이 교내 게시판 등에 하루 걸러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각각 폭로했다. 여교수는 동료 남자 교수를, 남학생은 선배 여학생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포스텍 관계자는 “여교수와 학생 모두 익명 폭로여서 사실 관계를 조사하고 있다”며 “특히 남학생이 당했다는 내용에 대해선 총여학생회가 나서서 사실 관계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학가의 미투 폭로는 여제자가 남교수를 향한 일방향이었다.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동덕여대·덕성여대·성신여대 등에서 성추행 의혹을 사고 있는 남자 교수 연구실은 온통 형형색색 ‘포스트잇’으로 뒤덮여있다.
 
최근 벌어진 포스텍의 사례는 조직내 성추행 등의 문제를 남녀간의 개인적 성문제 정도로 봐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성상현 동국대 경영대 교수는 “조직내 성희롱과 성추행은 권력관계 또는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한다”며 “위계질서에서 힘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상대로 힘을 남용하는데도 이게 아무렇지도 않게 허용되는 조직 문화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 상급자가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의 몸을 습관적으로 만지면서도 “격려하려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남의 몸에 손을 대도 별 문제가 안 된다는 무감각한 문화가 문제라는 것이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울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성에 관한 감수성만 낮고, 다른 건 다 좋은 조직이란 없다”고 말했다.
 
조직내 대표적인 경계 침해 행위

조직내 대표적인 경계 침해 행위

성희롱·성폭력이 벌어지는 조직문화는 기업 등 조직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다. 지난해 6월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 우버, 11월 한샘 등은 조직내 성희롱·성추행 문제로 최고의사결정자가 사퇴하거나 주가가 폭락하는 일을 당했다.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이러한 조직 문화의 문제를 ‘경계 침해’로 설명했다. 조직엔 공식적인 경계(권한의 경계·직무의 경계 등)와 사적인 경계(물리적·신체적·언어적·정서적·시각적 경계)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조직내 성희롱·성추행은 상급자가 하급자의 사적 경계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하급자가 경계를 침범 당했는데 거부하는 의사표현이나 불쾌함을 드러낼 수 없는 조직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조직내 사적 경계 침해 사례는 남의 몸에 손을 대는 물리적 경계 침해 외에도 수도 없이 많다. 상급자라는 이유로 “연애 상대가 있느냐” “주말에 뭐하느냐”는 질문을 수시로 하거나 하급자가 일하는 공간에 불쑥 들어가는 일은 정서적 침해에 해당한다. 일과 시간 이후에도 수시로 업무와 관련한 전화하기·문자 보내기, 휴일인 토요일·일요일 등반대회·단합대회 개최 등은 개인의 휴식과 가정 생활의 경계를 침해하는 사례다. 동국대 성 교수는 “이런 일이 벌어져도 하급자가 ‘불쾌하다’고 항변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조직 문화”라고 말했다.
 
남의 경계를 침해하는 게 아니라 존중하는 교육은 초·중학교에서 일부 이뤄지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을 통해 최근 발간한 ‘나의 성·나의 인권’이란 중학생용 교과서를 통해 경계 존중으로 학교 폭력·성폭력을 예방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자신의 경계를 침범하려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의 경계에 들어가려 할 때는 동의를 구하라고 가르친다. 이 때 “아니오”라고 말하는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현혜 교수는 “일상생활에서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 개인의 사적 영역을 존중하는 게 인간관계의 기본”이라며 “정작 성인들 중엔 이러한 경계 존중 교육을 배워본 사람이 없어 성인들에게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교육은 누가 어떻게 해야 할까. 조직의 구성원이 늘상 받는 성희롱 예방 교육 정도로 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이덕로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조직의 구성원 간에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 세세하고 분명하게 규정해주고,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의 일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처럼 한 번이라도 어겼으면 가혹하게 처벌하는 리더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래야 조직 문화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홍준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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