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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면 PC 꺼지고, 커피 마시는 시간은 근무서 빼고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 │ 기업들 시범실시 백태
“직원 급여 변화는 없습니다. 집에 일찍 갈 수 있으니 다들 좋아하죠.”  
 
“수당 못 받으니 수입에 ‘펑크’가 나요. 퇴근 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해요.”  
 
주 52시간 근무 시행을 앞두고 야근 없는 직장 만들기에 나선 한 회사에서 간부와 직원의 답은 이렇게 달랐다. 같은 회사에서도 직급과 부서에 따라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간부와 직원 간은 물론, 같은 직급에서도 가치관이나 처지에 따라 입장이 달랐다. 7월부터 시작되는 주 52시간제를 준비하는 일터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기업들은 근무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고심하고 있다. 직원들은 자율이라는 미명하에 실제로 일은 하는데 수당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동시에 ‘야근 천국’의 기업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기업 “시간 누수를 잡아라”
 
삼성전자·LG전자·SK하이닉스·KT 등이 잇따라 52시간 시범 운영에 나서면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제도가 등장했다. 올 2월부터 사무직 직원 대상 자율출퇴근제를 시험 도입한 LG전자는 PC에 ‘개인시간 입력’ 항목을 신설했다. 일을 하다 커피를 마시거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할 때는 업무를 멈출 수 있다. 5분 단위로 하루 최대 4시간 사용이 가능하다.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만 근무시간으로 셈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별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에는 “이미 ‘눈치껏 잘 활용하라’는 지침이 내려와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LG전자 관계자는 “부서별 업무 시간과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며 “편법으로 일을 더 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근무 시간을 줄이기 위한 대안도 나왔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14년부터 오후 6시에 PC가 꺼지는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 8월부터는 2시간 휴가제(반반차)를 운영 중이다. 올해부터 주 35시간 근로제를 도입한 신세계그룹은 이마트 폐점시간을 오후 11시로 1시간 앞당기고 신세계백화점 일부 점포의 개점시간을 오전 11시로 30분 늦췄다. SK텔레콤은 전화상담사에게 정오부터 한시간을 점심 휴식시간으로 준다. 디자인이나 컨설팅, 연구직, 언론사처럼 정해진 시간 내에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은 직종은 고심중이다. 한 미디어 업체에서는 2주 연속으로 6일을 근무하고 이어지는 2주는 4일을 근무하는 실험을 일부 부서에 도입하기도 했다. 이 회사의 한 직원은 “근무할 경우 사유서를 내야해 일하고 안 좋은 소리가 나올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야근 본능’ 기업 문화 바뀌나
 
“야근 많이하면 팀장이 지점장에게 불려가서 야단맞아요.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죠.”
 
하나은행 직원 K씨는 경영진과 현장의 괴리가 크다고 전했다. 금융권에서는 ‘PC 강제 오프제’, ‘자율 출퇴근제’, ‘오후 6시 사무실 일괄 소등’ 등을 경쟁적으로 도입했지만 체감효과는 기대에 못미친다는 얘기다. IBK기업은행의 L모 대리는 “자동으로 PC 꺼지기 전에 야근 결재를 받는 게 중요한 일과”라고 말했다. 야근을 많이 하면 지점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 때문에 알아서 ‘무료 봉사’를 감수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신한은행에서는 오후 7시가 되면 PC가 ‘깜빡깜빡’하며 잠시 화면이 꺼졌다가 도로 켜진다. 한 직원은 “동탄 등 최근 아파트 분양이 이어진 지점 등에서는 상당수가 야근 신청없이 저녁 10시까지 일하고 팀장은 휴가를 신청해 놓고도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 시중은행 지점에서 PB로 일하는 K씨는 “야근을 하는데 본점에서 어서 퇴근하라는 전화를 받은 뒤로는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업무를 처리하는 쪽으로 바꿨다”며 “할 일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워라밸 vs 투잡, 기대와 우려
 
어디까지가 업무시간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차가 있다. 한 대기업의 홍보부문 간부는 “집에서 전화받는 시간, 카톡 같은 메시지를 보는 시간까지 근무시간에 포함하라는 것은 과하다”고 말했다. 반면 직급이 낮은 직원들은 생각이 다르다. 전자업체의 영업담당 사원 S씨는 “카톡 감옥에 갇혀 있다고 느낄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메시지가 날아오는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정보기술(IT) 기업도 고민이 많다. 이들은 프로그램이나 게임 출시 직전 이른바 ‘크런치모드’에 돌입해 집중 근무해왔다. 돌연사로 이어지는 등 게임업계의 고질병으로 꼽혀왔다. 출시에 임박해 결과물이 쌓이고 수정이 몰리는 업종 특유의 문화는 그대로인데 근무시간만 줄여서는 고쳐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일주일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의 한도가 5일 최대 68시간에서 7일 최대 52시간으로 줄어들면 급여 수령 총액은 줄어든다. 추가근무가 많지 않고 기본급 중심인 직종은 큰 문제가 없지만 기본급이 낮은 대신 수당으로 몫돈을 보전해줬던 중소 제조업체에서는 타격이 클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급여 감소폭은 종업원 수 300명 이상 기업이 7.9%(41만7000원), 중소기업(30~299명)은 12.3%(39만1000원)이었다. 대기업 직원의 임금이 더 줄어들지만 감소폭은 중소기업이 더 큰 셈이다.
 
결국 낮은 기본급을 특근으로 메우던 가계에서는 적자가 나고, 이를 메우기 위해 ‘투잡’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 일과 가정의 조화(워라밸, Work and Life Balance)를 위한 정책 도입 취지와 맞지 않다.
 
근무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건설업계는 고민이 더 많다. 여전히 빠듯한 공사기한을 맞추느라 현장에서는 법정 근로시간을 넘기고 쉬쉬하는 관행이 그대로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임금 수준을 맞추려면 기본급을 대폭 인상해야 하는데,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른다고 볼 때 퇴직금과 4대보험까지 감안할때 정규직 연봉이 2000만원을 훌쩍 넘는다”며 “경영 부담이 생각보다 커서 추가 채용을 망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공사원가가 올라가고 숨어서 잔업을 하거나 도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도급 업체가 종업원 300인 이하일 경우 당장은 주 52시간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구내식당·도시락 이용 직원 늘어
 
한국 기업의 야근과 접대 문화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10대 그룹에 속한 한 계열사 홍보 부문장은 최근 “회식을 근무시간에 포함해야 한다”는 직원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외부 인사를 만나는 경우는 물론 부서 회식도 업무의 연장, 즉 야근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저녁 영업이나 회식이 업무라고 하면 다음날 반차를 써야 하는데 업무에 지장이 생긴다”며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눈치가 보여 암묵적으로 회식은 점심에 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시간을 잡아먹는 전시성 업무에도 제동이 걸렸다. LG전자는 오후 5시 이후 회의 소집을 금지했다. 회의는 간단히, 문서 작성에 들이는 시간도 줄일 방침이다. 시간이 새는 곳을 찾아 업무 흐름에 가속도를 붙이는 실험도 한창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유사계약서를 일괄처리하고, 화려한 프리젠테이션 대신 핵심만 글자로 표시한 한쪽짜리 보고서를 장려하고, 회의는 1시간 내에 끝내는 등의 대안을 마련했다. 한 직원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경우가 늘었고 도시락을 먹으면서 일을 계속하는 직원도 자주 보인다”고 말했다.
 
 
고용 확대로 이어질지 관심
 
근무시간이 줄면 고용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실제로 게임 제작사인 엔씨소프트는 모바일 게임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새로운 근로문화 정착을 위해 2년 전부터 직원 채용을 늘려왔다. 결과적으로 2014년 2203명이던 직원이 3213명으로 늘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지난 1월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 일자리가 13만~16만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문제는 업황이 좋지 않은 곳이다. 유통업계는 점포수를 줄이고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서 철수하고 있어 채용 여력이 크지 않다. 철강이나 조선 업계, 건설처럼 불황을 겪는 곳은 현상 유지도 어렵다. 근무 시간을 줄여도 즉각적인 고용 증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전영선·염지현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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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