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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지슬’… 문화ㆍ예술은 4ㆍ3을 잊은 적 없다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제주 4ㆍ3의 상징으로 흔히 붉은 동백꽃이 사용되는데 그 기원이 이 작품이다. 제주도는 제주 4ㆍ3 70주년을 맞아 동백꽃 배지 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강요배 화백 제공].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제주 4ㆍ3의 상징으로 흔히 붉은 동백꽃이 사용되는데 그 기원이 이 작품이다. 제주도는 제주 4ㆍ3 70주년을 맞아 동백꽃 배지 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강요배 화백 제공].

“오늘 4·3을 기릴 수 있기까지 세 가지 중요한 문화적 사건이 있었다.  ‘순이삼촌’과 ‘동백꽃 지다’, 그리고 ‘지슬’이다. 4·3을 증언한 문화·예술 덕분에 4·3은 우리의 기억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의 말마따나 4·3은 문화·예술이 지켜왔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역사가 외면한 비극이었고, 제주 사람도 쉬쉬한 비밀이었지만 시와 소설이, 그림과 영화가 끊임없이 4·3을 불러냈다. 
 
누구도 4·3을 말하지 못했던 1957년. 일본에서 단편소설 한 편이 발표됐다.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92)의 ‘까마귀의 죽음’이었다. ‘까마귀의 죽음’은 4·3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김석범의 대표작이자, 4·3에 관한 가장 방대한 문학적 기록은 대하소설 『화산도』다. 76년 1권이 발표되고 97년 전 7권이 간행될 때까지 20년이 넘게 걸렸다. 등장인물이 100명이 넘는다. 
 
4.3 문학과 미술

4.3 문학과 미술

『화산도』 1권이 발표된 지 이태 뒤 한국 문단에서도 4·3을 정면에서 응시한 작품이 출현한다. 현기영(77)의 중편소설 ‘순이삼촌’이다. 현기영은 78년 9월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문제의 작품을 발표했고, 이후 정보기관에 끌려가 호된 고문을 당했다. ‘순이삼촌’의 배경이 된 사건이 북촌리 학살사건이다. 학살이 있었던 날 시체 더미에 깔려 용케 살아난 여성 ‘순이’의 기구한 삶을 파헤쳤다. ‘순이삼촌’은 4·3 문학의 가장 뛰어난 성취로 평가된다. 
 
4.3 문학과 미술

4.3 문학과 미술

시인 이산하(58)도 혹독한 필화사건을 겪었다. 그는 87년 3월 ‘녹두서평’ 창간호에 4·3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장편 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했다. 도피생활을 전전했던 시인은 끝내 체포됐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4년 6개월형을 선고 받았다. 노태우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시인은 10년을 꼬박 절필했다. 4·3 70주년을 맞아 최근 『한라산』 복원판이 출간됐다. 
 
미술에서도 뜻 깊은 작업이 있었다. 강요배(66) 화백의 ‘동백꽃 지다’ 연작이다. 92년 서울에서 전시회 ‘동백꽃 지다’를 열었고 뒤이어 제주에서도 같은 제목의 전시를 했다. 모두 59점의 ‘동백꽃 지다’ 연작은 4·3을 순서대로 증언한다. 폭낭(팽나무) 아래에서 백발 성성한 할망(할머니)이 어린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원(始原)’에서 시작하는 연작은, 5·10 선거를 피해 한라산에 오른 제주 주민을 담아낸 ‘한라산 자락 사람들’, 한모살 학살사건을 강렬하게 표현한 ‘붉은 바다’ 등을 거치며 4·3의 전 과정을 복원한다. 4·3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붉은 동백꽃으로 굳은 것도 ‘동백꽃 지다’ 연작에서 비롯됐다. 강요배 화백은 “내가 말하려고 했던 건 4·3의 참상이 아니라 그 지옥 같은 나날을 통과해야 했던 제주 사람의 삶“이라고 말했다. 
 
제주 출신 오멸 감독의 흑백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의 장면. 토벌대를 피해 큰넓궤에서 숨어 살다 할상당한 동광리 무등이왓 주민들의 사연을 처연하게 재현했다.[중앙포토]

제주 출신 오멸 감독의 흑백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의 장면. 토벌대를 피해 큰넓궤에서 숨어 살다 할상당한 동광리 무등이왓 주민들의 사연을 처연하게 재현했다.[중앙포토]

영화로는 오멸(47) 감독의 흑백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가 있다. 제주 출신 감독이 제주 출신 배우와 함께 제주 사투리로 영화를 만들었다. 2013년 개봉해 관객 14만 명이 들었고, 선댄스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는 등 화제가 숱했다. 
 
‘지슬’은 감자의 제주 방언으로, 동굴로 피신한 제주 사람의 최후 식량이었다. 영화는 동광리 무등이왓 학살사건을 다뤘다. 지금은 폐쇄된 큰넓궤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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