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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핵무기의 공통점, 생존 위한 노림수

[도시와 건축] 쓸데없이 돈 써야 효과 커지는 ‘과시’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기자 피라미드 앞에서 낙타와 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기자 피라미드 앞에서 낙타와 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중앙포토]

인류 최초의 문명은 수메르문명과 이집트 문명이다. 그런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건조기후대에 위치해 있다. 왜 건조기후에서 최초의 문명이 발생했을까. 그들이 다른 인종보다 더 똑똑해서인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우연히 그곳에 있어서였다.
 
문명이 발달하려면 많은 사람들 간 생각의 교류가 있어야 한다. 도시는 생각 교류의 장소를 제공한다. 따라서 문명발달에는 도시 형성이 필수적이다. 씨족단위로 움직이는 유목민족에게서 혁신적인 발명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세계사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모든 혁신적 아이디어는 도시민들에게서 나왔다. 그런데 인구가 밀집한 도시가 형성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전염병이다. 산업혁명의 시기 영국에서 고밀화된 도시가 만들어졌을 당시 문제는 전염병이었다. 갑작스럽게 사람이 모여 살면서 건축물이 급격하게 필요해졌고, 기존의 건물에 칸만 나누어서 방을 만들다 보니 채광과 통풍이 안 되어서 각종 세균이 들끓었다.
 
 
물 풍부한 건조기후대서 문명 탄생
 
이처럼 고밀화된 도시에서는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고대의 도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상하수도 같은 위생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전염병이 돌지 않는 도시가 되기에는 습한 지역보다는 건조한 기후가 유리했다. 위도상으로 보더라도 최초의 도시들은 건조기후대인 낮은 위도에 위치해 있다. 기원전 3000년께에는 수메르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도시인 ‘우르’가 만들어졌다. 우르는 지금의 바그다드보다 조금 남쪽에 위치한 북위 32도쯤에 위치해 있다. 2500년 정도가 흐르고 소크라테스가 활동했던 아테네는 북위 37도에 위치해 있다. 이후 400년이 흐른 후 전성기를 맞이하는 도시 로마는 북위 41도에 위치해 있다. 이처럼 최초의 문명은 건조기후대에서 시작해서 문명이 발달할수록 북으로 북으로 비가 오는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로마는 ‘아퀴덕트’라고 불리는 수도교 수로를 건축해서 시골의 깨끗한 물을 도시에 공급하는 시스템을 최초로 만들었다. 이러한 상수도 시스템 덕분에 습한 로마에서도 위생적인 도시를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시스템이 발명되기 전에는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서 도시는 건조기후대에서나 가능했다. 그런데 왜 다른 건조기후대가 아니고 이 지역인가.
 
도시가 형성이 되는 데 또 하나의 조건은 ‘물’이다. 사람이 마시거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물이 없다면 도시가 형성되기 어렵다. 농사를 지으려면 비가 와야 하는데, 비가 오면 습해져서 전염병 때문에 도시가 형성되기 어렵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는 물은 풍부하면서 건조한 지역이다. 두 문화권에는 상류에서 비가 많이 내려서 물 공급이 잘되는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과 나일강 같은 큰 강이 있다. 남북으로 흐르는 강들이다. 강의 상류와 하류의 기후대가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두 문명권 모두 건조기후 덕에 사람이 모여 살아도 전염병이 잘 돌지 않고, 필요한 물은 강이 공급을 해주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인류 역사 초기에 관개수로를 만들어서 농사를 지으면서 큰 도시를 만들어서 살 수 있었고, 최초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건축물 엄청난 위용에 놀라 침략 못했을 것
 
인류 최초의 도시는 예리코성이다. 성경에 여리고성이라고 기록된 성으로 요르단강 유역에서 기원전 8000년께 설립됐다. 역사학자 미야자키 마사키츠에 따르면 수렵채집의 시기 사람 한 명이 먹고 살려면 10㎢의 사냥터와 채집터가 필요했다고 한다. 원시농업시대에는 500㎡의 공간이 필요했고, 관개농업이 시작되면서 1인당 100㎡의 공간이면 먹고살 수 있었다. 관개수로를 만든 건조기후대 도시는 다른 농경사회에 비해 5배 높은 밀도의 도시가 됐다. 농업경제에 기반을 두고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은 국가의 형성이다.  
 
이집트의 경우 소출의 약 10%가량을 세금으로 걷었는데 국가 인구가 늘어날수록 국가재정은 엄청나게 풍족해졌다. 비대해진 국민을 조직화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통합이 필요했고 이들은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피라미드를 만든 이유는 사회적 통합의 목적과 더불어 ‘생존을 위한 과시’였다. 무거운 건축물을 높이 쌓는 일은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다.  
 
선사시대 때 고인돌을 보면 알 수 있다. 고인돌은 작은 돌 두 개가 세워져 있고 큰 돌 하나가 올라가 있다. 바퀴가 없던 선사시대에 고인돌을 세우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힘이 들어가는 일이다. 당연히 대단한 권력자만 지을 수 있다. 이렇게 건축한 고인돌은 ‘생존을 위한 과시’의 용도였다. 만약에 옆 마을에서 수십 명을 데리고 전쟁을 하러 왔다가 자기 동네 것보다 큰 고인돌을 보면 전쟁을 포기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고인돌은 지도자의 권력을 과시해 전쟁을 피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었던 것이다. 고인돌과 마찬가지로 피라미드 역시 엄청난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서 만든 건축물이다.
 
 
에르메스 vs 루이뷔통, 두 명품백의 차이
 
핵폭탄이 터진 뒤 검붉은 버섯구름이 솟아오르는 모습. [중앙포토]

핵폭탄이 터진 뒤 검붉은 버섯구름이 솟아오르는 모습. [중앙포토]

이 같은 과시에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불필요한 곳에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이 돈이 많다고 과시를 할 때는 명품을 산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방식은 명품백을 사는 것이다. 에르메스와 루이뷔통을 비교해 보자. 에르메스의 경우 백 하나의 가격은 1400만원가량 한다. 반면 루이뷔통은 200만원대면 구매가 가능하다. 얼핏 보면 둘은 7배 정도의 차이가 나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에르메스 가방은 오렌지색이나 하늘색 같은 색이다. 이런 색은 일 년에 열흘도 들고 나가기 힘들다. 반면 루이뷔통 가방은 밤색이나 검정색 톤이 주를 이룬다. 루이뷔통은 일 년에 300일은 들고 나갈 수 있다. 그러니 실제 사용빈도를 고려하면 두 가방은 쓰임새 면까지 고려해서 210배의 차이가 난다. 그래서 에르메스가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일 년에 열흘을 들고 나갈 수 있는 백에 1400만원을 쓴다면 이건 분명 엄청난 낭비이다. 그래서 더 과시가 되는 것이다.  
 
생필품에 돈을 쓰는 것은 과시가 되지 않는다. 동창회에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가면 과시가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씹어 먹을 수도 없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에 수천만원을 낭비하는 것은 과시가 된다. 고인돌은 아무런 기능이 없기 때문에 과시가 된다. 마찬가지로 아무런 기능도 없는 쓸데없는 죽은 사람 무덤을 위해서 돌무더기 쌓는 데 수십 년간 국가의 재원을 낭비했기 때문에 과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피라미드는 정말 쓸데없는 낭비였을까.
 
피라미드는 공사할 때 수천 명이 죽고 엄청난 돈을 낭비한 건축프로젝트다. 하지만 고인돌의 경우처럼 피라미드는 전쟁을 미연에 방지한다. 피라미드를 짓는 데 20년간 1만 명이 공사현장에서 죽고 10조원의 돈을 들였다고 치자. 하지만 피라미드를 건축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바로 옆 동네인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론이나 아수르가 침공해서 전쟁을 했을지 모른다. 전쟁을 했다면 10만 명이 죽고 10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생겼을 것이다. 전쟁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피라미드를 짓는 것이 10배 남는 장사이다. 그래서 이집트 파라오는 당대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서 많은 돈을 들여서 피라미드를 건축했다. 같은 인간은 현대에 와서 최첨단 기술인 양자역학을 이용해 많은 돈을 들여서 원자폭탄을 만든다. 현대에서는 피라미드의 기능을 첨단무기가 한다. 수소폭탄은 비키니 섬에서 실험만 했을 뿐 실전에서는 투입된 적이 없다. 이들은 실제로 수소폭탄을 전장에서 사용하는 대신 폭탄이 터지는 장면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보여준다. 과거에는 멀리서도 건축물을 볼 수 있게 거대하고 높은 피라미드를 건축했다면 지금은 미디어를 통해서 자신의 첨단무기의 영상을 보여준다.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동영상은 피라미드의 모습과 동일한 기능을 한다. 그래서 김정은은 각종 미사일 발사장면과 원폭실험 장면을 미디어를 통해서 광고한다. 마찬가지로 냉전시대에 할리우드 영화는 전쟁방지에 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일당백의 람보와 외계인을 무찌르는 미군의 모습은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 미디어가 없던 시절에는 가장 크고 높은 건축을 지어야 했다면 지금은 첨단무기를 만들고 그 힘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미디어에 뿌린다. 우리가 지금 엄청난 방위비를 지출해서 전투기를 사는 것은 전쟁 방지를 위한 피라미드를 짓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전쟁방지 수단은 첨단무기뿐인가.
 
다행히도 미디어를 통해서 평화를 구축하는 장치도 생겼다. 독립전쟁을 했던 미국과 영국은 1964년 비틀스가 미국 대중문화시장에 진출했을 때 비로소 화해를 했다고 본다. 이후 1980년대의 마이클 잭슨은 영국 대중음악계를 평정하면서 두 국가의 문화의 균형을 이루었다. 미디어를 통한 문화콘텐츠는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공통의 스토리를 만들어준다. 일면식이 없는 일본인과 마징가 Z, 드래곤볼로 친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과 남한은 알게 모르게 드라마 ‘시크릿가든’과 ‘도깨비’로 공통분모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 피라미드를 짓던 인간은 현대에 와서는 과시를 위해서 원자폭탄과 전투기를 만든다. 문제는 원자폭탄으로 공멸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미디어문화를 통한 평화의 방법도 만들었다. 피라미드·원자폭탄·한류드라마는 사촌지간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건축의 흐름』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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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