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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미국 금리인상이 내 연금 축낼까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정말 강한 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투명한 스텔스기와 스텔스 탱크가 무서운 것이다. 치명적 위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다. 아무리 과거에 치명적이었던 시스템 위험도 이젠 잘 볼 수 있고 잘 대비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시스템 위험이 아니다. 그래서 위험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도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요인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가능성이 아무리 낮아도 한 번쯤 생각해 본 상황은, 전혀 생각 안 해 본 상황에 비해 대응하기 쉽기 때문이다.
 
1997년과 2008년 경험했던 한국 경제의 시스템 위험은 자본의 급격한 해외유출 때문에 발생했다. 외환시장과 외화자금시장이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란 뜻이다. 이런 전통적 시스템 위험 차원에서 보면 현재 한국 경제는 지극히 안정적이다.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견조하고, CDS(credit default swap)  프리미엄, 외평채 프리미엄같은 지표가 거의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외환보유액과 함께 통화스와프 대상국도 늘었다. 예대비율, 단기부채비율 그 어떤 지표로 봐도 시스템 위험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위험요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미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악마의 변호자(devil’s advocate) 역할을 한다고 치고 조금 다른 위험요인을 생각해 보자. 미국 경제의 과열이 한국 입장에선 시스템 위험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경제는 이미 완전고용 상태에 진입했다는 것이 대부분 이코노미스트의 판단이다. 완전고용 수준을 넘어섰다는 보고서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더불어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감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의 지나친 과열은 연방준비제도(Fed)의 지속적 금리 인상을 유발할 것이고, 이는 단기 기준금리뿐 아니라 기간구조(term structure) 곡선을 통해 중장기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외 자본이동에 관한 실증분석과 과거 경험에 의하면, 미국 금리 인상은 한국의 시장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금리 차를 노리고 국제적으로 자본을 이동시키는 재정거래자가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금리 차를 노리고 설계된 금융상품들이 글로벌 자본시장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글로벌 자본이동이 발생하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시장금리는 인상된다. 과거에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한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급등해 국채 가격이 올라 금리가 떨어진 경우가 있었다. 통화 당국은 금리를 올리고 싶었는데 말이다. 미국이야 자신의 경제 여건 때문에 경기가 과열되어 이를 통제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금리가 오르지만 한국은 경제 여건에 맞지 않게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한은의 통화정책과는 무관하게 긴축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이르는 가계부채가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에 미치는 위험은 그래도 보이는 위험이다. 더 안 보이는 것은 저금리 시대에 위험자산 비중을 확대한 연기금들이다. 서브프라임 위기 등 과거 외국 사례를 보면 금리의 급격한 인상은 연기금이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부동산 등 위험자산의 가치를 급락시킨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때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연기금들의 가치하락이 미미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한국의 연기금들이 주로 안전자산에 투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안전자산이 80%, 위험자산이 20%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안전자산이 40%, 위험자산이 60% 정도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국내 연기금들도 과거 저금리 시기 동안 국내외 주식·부동산을 비롯한 대체자산 등 위험자산 비중을 크게 확대해 놓았기 때문에, 그리고 헤지는 거의 안 했기 때문에, 금리 인상 시 자산가치 하락에 직면할 가능성 높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위험자산의 가치 급락은, 선진국 연기금과 달리, 한국 연기금은 처음 맞이하는 현상이다. 처음 맞는 사건엔 허둥대기 쉽다. 물론 연기금은 장기로 자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단기적 상황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몇 년이 지나면 회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 차원에선 맞는 말이다.
 
현실은 다르다. 10 년 전 서브프라임 위기 때를 뒤돌아보면, 미국과 유럽 연기금들의 자산가치가 급락했을 때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었다. 왜 이런 고위험 자산에 투자했느냐, 왜 이렇게 많이 투자했느냐, 위험관리를 위한 적절한 절차를 거쳤는가, 왜 위험이 빤히 예상되는데 헤지 안 했느냐 등 책임소재 공방과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경제 차원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몇 일 전 미국 유수의 투자은행이 금리 인상 시 연기금 자산가치의 하락 가능성 이슈를 제기하는 것을 보고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과연 금리가 급격히 올라 위험자산의 가치가 급락하면 한국 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참아 줄 수 있을까. 고금리가 가져올 또 다른 위험요인이다.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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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