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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함께 누웠어도 ‘노’하면 즉각 중단해야

‘합의된 성관계’ 미 대학 지침 보니
‘무엇이 동의인가? (What is consent?)’
 
대학교 교내 곳곳에 걸려있는 포스터의 글귀다. 학생들이 다님 직한 곳엔 다 있다고 보면 된다. 화장실도 예외는 아니다. 주제는 ‘성관계와 동의’다.
 
2017년까지 8년간 미국 인디애나대 미디어 스쿨 교수를 지낸 이재국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전언이다. 그는 “미국 여대생 4명 가운데 한 명꼴로 재학 중 성폭행을 당한다는 심각한 문제의식에서 수년 전부터 학교 차원에서 여러 대책이 마련됐는데 포스터도 그중 하나”라고 전했다. <표 참조>
 
미국에선 1972년 남녀학생이 균등한 교육 기회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교육 수정 법령 ‘타이틀 나인(Title Ⅸ)’이 시행됐고 1990년대 들어 학교가 성폭력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2011년 예일대·앰허스트대 등에서 교내 성폭력에 대한 공개적 문제 제기가 잇따랐고 교육부가 대학들에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하는 서한을 보냈다.
 
인디애나대에 포스터가 걸린 까닭이다. 실제 그 무렵부터 성관계에서 동의가 어떤 의미인지 대대적인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이뤄지는데 온라인 성교육 단체인 어메이즈(AMAZE)의 콘텐트도 있다.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①‘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동의한 건 아니다.
 
동의는 단 한 가지의 경우다. ‘예스’란 식으로 긍정적으로 말로 한 경우다. 그러므로 물어봐라. 그저 추측하거나 이런저런 신호를 해석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상대방이 주저하거나 불편해하면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당신이 원하지 않는 건 안 하겠다’고 안심시켜야 한다. 뭔가 잘못된 게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
 
②‘예스’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동의도 없는 거다.
 
성적 관계에 있어서 동의는 성적 행위를 하는 두 사람이 특정한 성행위에 대해 서로 적극적이며 기꺼이 함께하기로 한 것 의미한다. “그래 괜찮아. 무방해(Yes, That’s OK with me)”란 식으로 말이다. 흔히들 동의의 주체를 여성으로 여긴다. 하지만 남성도 피해자일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동의가 필수적이다. 누구와 침대에 가더라도 성적 행위를 하기 전엔 그게 어떤 것이라도 서로 100% 동의를 주고받아야 한다.
 
③한 가지 성행위에 동의했다고 해서 모든 성행위에 동의한 건 아니다.
 
누군가와 나체로 침대에 누웠다고 해서 그게 자동으로 성관계를 맺겠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한 행위에 동의했다고 해서 다른 행위에도 동의한 게 아니다. 즉 입맞춤했다고 해서 더는 ‘노’를 할 수 없는 건 아니란 의미다. 한 차례 성관계를 맺는 데 동의했다고 해서 다른 경우에도 어쩔 수 없이 관계해야 하는 건 아니다. 동의는 특정한 시간, 특정한 행위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는 뜻이다.
 
④당연히 언제든 마음을 바꿀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성행위에 돌입했더라도 더는 지속하거나 진행하고 싶지 않다면 언제든 마음을 바꿀 수 있다. 설령 상대방과 성관계를 시작했더라도 당신이 ‘노’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이 ‘노’라고 했다면 상대방은 즉시 중단해야 한다. 혹자는 “그래도 모호한 대목이 있지 않으냐”고 물을 수 있다. 없다. ‘노’는 곧 ‘노’를 의미할 뿐이다. 그걸로 끝이다.
 
⑤누군가 취했다면 설령 그가 ‘예스’라고 말했다고 해도 동의라고 볼 수 없다.
 
누군가 취했다면 법률적으로 그의 판단력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동의를 할 수 없는 상태다. 만약 술이든 약이든 취해 자신을 위해 건전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예스’라고 말했다고 해서 ‘예스’로 인정되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 취한 상대를 대상으로 삼는다면 성폭행일 뿐이다.
 
⑥성폭행당한 건 결코 당한 이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의 ‘노’가 무시됐거나 당신이 취해서 법률적 동의를 주지 못하는 상태를 상대방이 악용했다면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 성폭행이다. 누군가 딴말을 한다면 그건 정말로 동의가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미국 내에선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아예 성적 관계가 금지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교수와 학생 사이다. 2015년 2월 하버드대도 그중 하나였다. 위계와 그로 인한 이해 충돌 가능성 때문이다. 이재국 교수는 “사적 감정이 개입될 경우 교수가 객관성·공정성을 잃어 호의를 베푼다면 이는 (다른 학생들에게) 불리한 일이 된다”며 “바로 이해 충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수 스스로 사적 감정을 가졌음에도 객관성·공정성을 유지했다고 믿더라도 또 실제로 그랬더라도 다른 학생들이 ‘특수 관계로 인해 호의를 베풀었다’고 여기게 된다면 이 또한 인지적으로 이해 충돌이 발생한다”며 “이 때문에 교수-학생 사이 어떤 사적 관계도 안 된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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