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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느님·2인자 수직적 리더십은 옛날 예능 느낌

굿바이 ‘무한도전’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31일 종영한다. 왼쪽부터 조세호·정준하·하하·박명수·양세형·유재석. [연합뉴스]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31일 종영한다. 왼쪽부터 조세호·정준하·하하·박명수·양세형·유재석. [연합뉴스]

최근 ‘무한도전’은 김태호 PD가 하차하고 3월 말 종영한다고 공식화했다. 김태호 PD는 휴식기를 거쳐 가을쯤 돌아올 거라 밝혔지만 그것이 ‘무한도전’일지는 미지수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을까. 그 변화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살아온 13년이 보인다.
 
MBC ‘무한도전’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저 하나의 프로그램이 종영한 것에 ‘시대’ 운운하는 것이 지나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프로그램이 13년간, 그것도 매회 자기 혁신에 가까운 도전들을 계속해왔다는 건 당대의 대중들이 가진 열망과 정서들이 거기 공기처럼 담겨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그 몇 가지 변화들을 열거하면, 성장드라마 시대의 종언, 시즌제, 리얼리티 시대와 중심 없는 수평 리더십의 시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성장드라마 시대의 종언은 ‘무한도전’이 갖고 있던 핵심적인 동력이 이제는 사라졌다는 걸 말해준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캐릭터가 도전을 거듭해가며 성장한다는 서사는 ‘무한도전’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무모한’ 도전에서보다 현실적인 도전, 이를테면 댄스스포츠나 봅슬레이 같은 도전으로 이행해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대중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이들이 ‘최정상’의 위치에 오르게 되자 성장드라마는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장드라마 시대의 종언은 우리가 개발시대를 지나 외환위기를 겪고 현재까지 걸어오면서 맞닥뜨리게 된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지금의 대중들은 더 이상 성장드라마를 추구하지도 믿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건 좌절된 성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가치가 성장, 성공에서 행복과 평등 쪽으로 이행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즌제’의 요구는 이런 가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쉬지 않고 13년을 ‘무한히’ 달려오는 도전은 성장드라마 시대의 종언과 함께 이젠 휴지기를 요구하게 되었다. 미래의 성공을 위한 현재의 희생이 성장드라마 시대의 방식이었다면 당장 현재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이른바 ‘욜로적’ 생각들이 꿈틀대는 건 멈추지 않으면 자칫 소진되어버릴 수 있는 ‘노오력’의 시대의 반작용이다. ‘시즌제’란 그래서 쉬어야 더 좋은 것들이 나온다는 가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요소다.
 
여자 컬링 대표팀이 출연한 ‘무한도전’의 한 장면. [중앙포토]

여자 컬링 대표팀이 출연한 ‘무한도전’의 한 장면. [중앙포토]

리얼리티쇼는 ‘무한도전’이 시작되던 시기부터 이미 전 세계적인 흐름이었지만 우리는 정서적인 장벽 때문에 이를 연예인 캐릭터쇼라는 방식으로 수용했다. 누군가의 사생활을 들여다본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어서다. 하지만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은 이미 ‘투명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셀피들이 일상화된 시대로 접어들었다. 스마트폰이 촉발시킨 영상의 일상화는 더 이상 대중들이 ‘연예인 캐릭터쇼’라는 조화(造花)에 만족할 수 없게 만들었다. 리얼리티쇼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관찰카메라라는 이름의 리얼리티쇼가 부지기수로 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무한도전’이 추억을 자극하는 ‘옛날 예능’ 같은 느낌으로 남고 있다는 걸 김태호 PD는 못내 아프게 바라봤을 것이었다.
 
또한 캐릭터쇼에서 만들어진 수직적인 인물 구성 역시 지금의 시대와는 맞지 않는 방식이다. 즉 1인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유재석과 그 밑에서 영원한 2인자 역할로 남아있는 박명수, 그리고 유재석을 ‘유느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하하 같은 수직적 구조는 캐릭터쇼를 위해 구축된 것이지만, 그건 지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체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리더’와 ‘센터’에게로만 집중되는 대중의 시선이 이제는 분산되고 다양화된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대중들은 드라마에서 주연에만 거의 집중했지만, 지금은 그 주변 인물들에도 시선을 준다. 적은 등장에도 매력적인 이른바 ‘미친 존재감’이라는 인물군이 생겨나는 건 이러한 다양성 사회로의 변화를 말해준다.
 
수직적 체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바뀌는 과정을 촉발시킨 건 인물들을 각각 조명해낼 수 있는 카메라의 일상화와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소수의 카메라가 몇몇 중심적인 인물들과 그 리더십에 집중했다면, 이제 누구나 손안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시대에 각각의 카메라들은 각각의 인물들을 비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한도전’의 오프닝에서 흔히 발견되는 한 줄로 죽 선 인물들이 서로 센터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들이 이제는 옛 풍경이 되어버렸다. 이제 무수히 설치된 관찰카메라들은 그런 중심 자체가 없는 세상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무한도전’의 종영을 아쉬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 종영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그 13년 사이, 성장드라마는 종언을 고했고, 무한 ‘노오력’이 아닌 중단 있는 삶이 요구되기 시작했으며, 투명사회가 도래했고 수평적인 관계를 중요한 가치로 보게 됐다. 그러니 휴지기를 거쳐 돌아온다는 김태호 PD의 선택은 어쩌면 더 긴 흐름의 ‘무한도전’인 지도 모른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롭게 열리는 시대에 맞춰진 또 다른 무한도전.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각종 방송 활동, 강연 등을 통해 대중문화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남자들의 숨은 마흔 찾기』 『웃기는 레볼루션』(공저)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가 있다. 더키앙(thekian.net)이라는 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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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