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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맹을 계승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북·중

노동신문은 30일 1면에 ‘조중(북·중) 친선의 새로운 장을 펼친 역사적인 방문’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사설의 요지는 북·중 관계가 공동의 위업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 속에서 피로써 맺어진 관계이며, 대를 이어 귀중하게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찬에 앞서 손을 잡고 있다.[중국CCTV 캡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찬에 앞서 손을 잡고 있다.[중국CCTV 캡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5월 북·중 정상회담을 한 이후 노동신문 6월 3일자 1면 사설 제목은 ‘조중(북·중) 친선의 역사는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였다. 주요 내용은 북·중 관계가 오랜 역사적 전통과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대를 이어 계승되고 있는 두터운 친선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신문의 두 사설을 비교해 보면 북·중 관계는 18년이 지나도 여전히 대를 이어 계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0년 북·중 정상회담은 김정일이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 첫 정상회담이자 해외 방문으로 이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같은 경우다. 
 
북·중 관계는 국가 대 국가와 당(黨) 대 당(黨) 관계 등 이중 구조로 이뤄져 있다. 국가 대 국가 관계는 정상적인 외교로 국익을 우선하지만, 당 대 당 관계는 여전히 혈맹 관계로 맺어져 있다. 중국은 1972년 닉슨 방중 이후 ‘혈맹’이란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혈맹을 의미하는 ‘피로써 맺어진 관계’로 대신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국익에 따라 서로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피로 맺어진 관계’로 형제처럼 지냈다. 하지만 북·중 관계는 당 대 당 관계가 국가 대 국가 관계보다 앞선다. 노동신문은 북·중 관계를 표현할 때 항상 ‘두 당, 두 나라’로 표기하는데 당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의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2012년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 6년 만에 이뤄졌다. 아버지 김정일이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6년 만에 북·중 정상회담을 한 것과 같은 모양새다. 김정일은 한·중 수교(1992년)로 북·중 관계가 극도로 악화돼 있었고 고난의 행군(1995~1997년)마저 겹쳐 북·중 정상회담을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 바로 하지 못했다. 김정은도 핵·미사일 도발과 장성택 숙청 등으로 북·중 관계가 김정일의 2000년 방중 이전과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비로소 정상회담을 하게 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5월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5월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은은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 이수용 당 국제부장(북·중정상회담 담당),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남북정상회담 담당), 이용호 외무상(북·미정상회담 담당) 등을 배석시켰다. 아버지 김정일은 2000년 북·중 정상회담에서 조명록 총정치국장, 김영춘 총참모장, 김국태 당 간부담당 비서, 김용순 당 대남비서(남북 정상회담), 김양건 당 국제부장(북·중정상회담) 등과 함께 참가했다. 
 
김정은은 군인을 한 명도 배석시키지 않았지만 김정일은 선군정치의 영향 탓에 군인을 배석시켰다. 그리고 김정은은 북·중,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실무 책임자를 참가시켰고, 김정일은 남북, 북·중정상회담의 실무 책임자만 불렀다. 당시는 북·미정상회담이 없어 백남순 외무상은 빠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정상회담에 왕후닝 정치국 상무위원, 양제츠 정치국 위원(외교담당), 딩쉐샹 중앙판공청 주임(시진핑 비서실장), 황쿤밍 당 선전부장, 왕이 외교부장, 쑹타오 당 대외연락부장 등을 배석시켰다. 김정일과 북·중 정상회담을 한 장쩌민은 후진타오 정치국 상무위원, 첸치천 정치국 위원(외교담당), 왕깡 중앙판공청 주임, 쩡칭홍 당 조직부장, 탕자쉬안 외교부장, 다이빙궈 당 대외연락부장, 류화추 당 외사판공실 주임 등과 함께 했다.
 
시진핑과 장쩌민의 공통점은 정치국 상무위원, 정치국 위원(외교담당), 중앙판공청 주임, 외교부장, 당 대외연락부장 등을 참가시켰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3박 4일(3월 25~28일) 체류 기간 리처창, 왕후닝 등 정치국 상무위원 2명을 만났다. 반면 김정일은 2박 3일(5월 29~31일) 체류 기간 리펑, 주룽지, 리루이환, 후진타오, 웨이젠싱, 리란칭 등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을 만났다. 정치국 상무위원은 2000년과 2018년 모두 7명이었다. 
 
중국은 김정은에게 최대한 예우를 갖추되 김정일에 못 미쳤다. 전통을 계승하지만 과거처럼 부둥켜안고 싶지 않은 복잡한 중국의 속내가 담겨 있는 의전이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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