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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외교문서]"88올림픽 앞두고 박종철 사건 부각 안되게"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린 2018년에서 시곗바늘을 30년 전으로 돌려보면 1988년에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특히 올림픽 개최를 한 해 앞둔 87년엔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그 기폭제가 된 사건으로는 서울대생 박종철씨 고문 치사사건이 있다. 당시 우리 정부가 박씨 사건 등 국내 인권 탄압 실태가 국제사회에 부각이 안되도록 외교 활동을 벌인 사실이 30일 공개된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외교부는 이날 30년 이상 경과한 외교문서 1420권(23만여 쪽)을 주요 내용 요약본과 함께 공개했다. (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
 
외교부는 30일 작성된지 30년 이상 경과한 외교문서 1420권(23만여 쪽)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외교부는 30일 작성된지 30년 이상 경과한 외교문서 1420권(23만여 쪽)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금일 한국 언론에 보도된 사건과 같은 것은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아 한국의 민주적 노력을 저해(undermine)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1987년 1월 19일 한국을 찾은 존 포터(공화당ㆍ일리노이) 의원이 최광수 당시 외무부(현 외교부) 장관에게 꺼낸 말이었다. 당시 미 하원 경제사절단으로 포터 의원 등 8명이 방한, 양국 간 무역 및 투자 현안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화두는 한국의 민주화로 옮겨갔다. ‘금일 보도된 사건’은 박종철씨 고문 치사 사건이었다. 1월 19일은 경찰이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가혹행위를 시인한 날이다.
 
 그러자 최 장관은 “금번 학생 변사 사건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사건은 하나의 고립된 우발적 사건이며, 아마도 하부 관리가 빨리 취조를 끝내 성과를 올리려는 과도한 의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찰 자체 내에서 조사가 진행돼 완전한 진상이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1987년 1월 15일자 중앙일보.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1987년 1월 15일자 중앙일보.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이어 2월 7일 열린 범국민추도식에 대해서도 정부가 대외적으로 의미를 축소하고 부정적인 홍보를 펼친 사실도 문서에서 확인된다.
 
 최 장관은 2월 11일 말콤 왈롭 상원 의원과 면담에서 “‘고 박군 국민추도회’는 민통련, 민추협 등 반정부 단체와 급진좌경학생, 문제 종교인, 일부 야당의원 등 반정부 세력 전체가 가담한 집회로서 단순한 추도집회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가진 불법 집회”라며 “법 질서 차원에서 강력 저지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2월 16일에 열린 재외공관장회의를 주재하면서는 “일부 정치인, 재야 불순 단체가 추도회라는 명목하의 2ㆍ7 명동 불법집회를 통해 민심을 자극하고 폭력에 의한 민중봉기를 획책하려 했지만 정부의 법질서 유지와 예방조치로 큰 사고 없이 무산된 바 있다”며 “사회 안정을 위한 노력에 대하여 일부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 언론에서도 왜곡 보도하여 정부의 진정한 노력을 반대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례가 없지 않은데, 공관장님들의 각별한 노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주문했다.  
 
1987년 당시 고 박종철 군 국민추도회 장면. 학생들과 시민들로 이루어진 시위대와 경찰간의 충돌이 벌어졌다. [중앙포토]

1987년 당시 고 박종철 군 국민추도회 장면. 학생들과 시민들로 이루어진 시위대와 경찰간의 충돌이 벌어졌다. [중앙포토]

 
 정부가 이렇게 나선 건 인권침해와 정국 혼란이 당시 정부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였던 88서울올림픽 개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로명 주브라질 대사가 보낸 전문(6월 24일)에 따르면 동구권 국가인 유고 대사관 서기관이 올림픽 문제와 관련 “현재 북한의 김일성은 한국이 국내 정치 문제로 큰 혼란을 겪고 있어 올림픽 개최지로 적당치 못하다고 말하고 있다는데, 최근 한국 내 사태가 어떠냐고 묻고 만약 혼란이 계속되면 김일성 말대로 올림픽 개최에 의구심을 갖게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고 보고했다. 
 
 실제 그해 미 상ㆍ하원 의회는 한국관계 청문회를 개최했고, 외무부는 청문회 상황 뿐 아니라 개별 의원들의 성향까지 파악해 보고했다. 리차드 시프터 당시 미 인권 차관보는 하원 청문회에서 “지난 1년 간 한국의 인권 상황은 박종철 사건 및 예방적 인신 구속 등으로 깊이 우려할만하다. 북한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이 인권 침해를 정당화할 수 없다”라고 발언했다. 이와 관련 김경원 당시 주미대사가 외무부에 보낸 전문(5월 9일)에는 “시프터 차관보에게 유감의 뜻을 표할 계획”이라며 “시프터 차관보는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 말려드는 경향이 있으므로 가능한한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두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나, 앞으로 증언을 피할 수 없는 경우 사전 접촉, 올바로 발언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보고했다.
  
 1월 외무부가 작성한 ‘제43차 유엔인권위원회 대책자료’에는 한국의 인권 상황과 관련해 “한 국가의 인권 보장의 방법과 정도는 그 국가의 시대적, 역사적 배경과 현실적 상황에 따라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세계 모든 국가에서 서구적 관점의 인권의 내용과 수준이 동일하게 보장될 수는 없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폐쇄적이고 교조적이며 폭력적인 북한과 휴전선을 경계로 긴박하게 대치하고 있는 바, 이러한 현실에서 반국가적 범죄에 대하여는 강력히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라고 적고 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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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