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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사형선고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꿈에 나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현실에도 사형선고를 받았다. 묘하게 동일한 일이 함께 발생한 것이다. 그동안의 일들을 다 복기하고 나니 마지막으로 내 나라 미국 최남단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로 마지막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키웨스트는 작은 마을이라 차를 주차하고 도보로 이곳저곳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 최남단 표지가 있는 곳에서 쿠바까지가 90마일이다. 물론 이곳 '사우스포인트'는 본토 내륙에서의 최남단이고 진짜 미국영토 내의 최남단은 빅아일랜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지점이다. 키웨스트 최남단은 마이애미보다 가깝다. 쿠바와 미국의 해빙이 있은 지도 시간이 흘렀다. 지금 비트코인이란 열기는 다소 식을 필요가 있다. 나는 튤립버블, 미시시피 버블, 남해 버블로 비교하는 사람들이 싫다. 바다를 보며 비참한 최후를 마친 존로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구글에 비트코인을 검색하는데 선전 문구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몸도 마음도 다 아픈 생각에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수수료 없이 비트코인을 거래하세요. 비트코인을 사는 빠른 방법. 자신감 있게 암호화화폐를 거래하는 기회를 가져라.”

 
온통 상업적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광고가 가득했다. 나는 주식처럼 거래가 되는 내 자식과 같은 비트코인을 바라보며 묘한 생각이 들었다. 기술에도 버블은 있었다. 1840년대 영국의 증기기관차가 발명되었다. 철도회사가 수없이 설립되었다. 설립자들은 주식의 일부만을 유통해서 주가 상승을 유도했다. 신문 잡지 등에 허위광고나 과장된 기사 등을 연달아 게재했다. 그렇게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이런 경로를 통해서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다시 팔았다. 엄청난 차익을 챙긴 사건으로 투자자들에게는 막대한 손해를 보게 했다. 나는 또 혼잣말했다.

 
“스티븐스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했을 때 그는 정말 영웅이었나, 아니면 나쁜 인간이었나. 그는 영웅으로 남는 사람이지 않은가! 1820년대 들어오면서 증기기관차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빠르게 발달하였다. 자본가들 그리고 일반 대중들이 앞으로는 철도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철도회사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철도버블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당시와 현재를 비교하여 보았다. 당시는 온 세계가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는 현재만큼 투자가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하루를 멀다 하고 비트코인으로 ICO(암호화폐공개)가 일어난다. 알지도 모르는 기업이 기술과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공개하고 가상화폐를 받아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다. 이처럼 ICO가 폭증한 것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과 같은 가상화폐의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ICO는 IPO(주식에 의한 기업공개)에 비해 가격 상승이 빠르고 별도의 규제가 없어 자금을 쉽게 수혈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기업이 별다른 기술이나 성장성 없이 무분별하게 ICO를 진행했다. 해킹을 통한 코인 가로채기 사건도 속출했다. 그 모든 회사가 사기꾼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성공리에 ICO를 한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소비자 분석 및 소셜 마케팅 플랫폼 ‘로빈8 (Robin8)’이 한 ICO가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과 함께 단 5분 만에 마감됐다. 로빈8은 빅데이터와 AI, 블록체인을 통해 기존 온라인 생태계의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다. 마케팅 플랫폼을 선보여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은 것이다. 로빈 8의 최고경영자는 말했다.

 
“투자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기반으로 200만 달러가 확보되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자체적인 검색엔진과 블록체인을 통한 투명한 개인정보 관리가 가능합니다. 새로운 소셜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증기기관차의 발명 이후 신생회사가 생기면 대부분이 철도회사였다. 매일 1개꼴로 철도회사가 생기고 일주일에 한 개꼴로 주식시장에 상장되었다. 오늘날 온라인에 비교가 되지 않지만, 신문 잡지 등에 허위광고나 과장된 기사를 연달아 게재해서 투자자를 끌어들였다. 당시 과열된 시장 분위기는 여러 곳에서 반영되었다. 리즈라는 지역에서는 증권거래소가 3개나 들어섰다. 활동하는 주식중개인이 3000여명에 달했다. 철도회사 주식담보대출이 설립될 정도였다. 지금 비트코인 담보대출이 나온 것과 비슷하다. 역사는 그렇게 돌고 돈다는 느낌을 생각하며 여기저기를 배회한다. 바다는 항상 광대한 느낌을 준다. 그 광대한 꿈을 안고 비트코인의 세계를 열고 싶었다.

 
1845년 10월 철도 노선계획이 발표되면서 투기는 극에 달하게 된다. 노선계획대로 해버리면 영국 전체 국토면적의 수십 배가 필요한 허무맹랑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 투기에 미쳐있던 영국 시민들의 눈엔 보일 리가 없었다. 나는 문득 당시 한 시인의 목소리를 상기해 본다. 그 시인의 이름은 윌리엄 위즈위스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나라 영국은 ‘철도 투기에 미친 사람들이 수용된 정신병원’이다.” 
 
그의 자조 섞인 말을 비트코인과 대비하여 보았다. 코인투자자들의 비중이 당시 영국인에 비해 많을까? 물론 죽어가는 마당에 그런 게 내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비트코인이 애플 같은 회사의 시가총액을 넘고 수많은 비트코인의 아류들이 값진 회사들의 시가총액을 넘는다고 생각해 본다. 아찔하기도 하다. 당시의 철도회사들의 실적은 오히려 채무 규모만 6억 파운드 정도였다. 당시 영국 국민 총생산액이 5억5000만 파운드였으니 실적도 없는 회사에 전 국민이 한 해 동안 번 돈을 모두 철도회사 주식에 투자했을 정도였다. 투기세력이 철도사 주가 상승을 부추겼고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르자 투매로 인하여 거품은 한순간에 꺼져버렸다.

 
그러나 철도망이란 기술은 어떤가? 급격하게 영국 전토로 확대되면서 산업혁명을 더욱 가속하였다. 18세기 중엽에는 국민소득의 불과 5%가 생산적 투자에 충당되었다. 철도 붐이 일어난 1840년대에는 10%에 달하였다. 영국의 증기기관차는 영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나라로 수출되어 수송혁명을 선도하였다. 비슷한 사례는 미국의 철도버블에도 있었다. 지금의 세계는 그때의 세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연결된 세상이다. 아무리 신기술이 발생하였다고 하지만 개화도 하기 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있다. 갈증이 생기고 피곤해서 한 레스토랑에 들렸다. 비트코인 관련 뉴스가 진행되었다.

 
“주식시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1999~2000년에 발생한 닷컴 버블만 한 흥분은 지금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흥분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의 세계로 번지고 있습니다. 지금 수많은 ICO의 열기는 비트코인 가격의 급속한 상승이 가장 주된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ICO의 열기가 비트코인의 가격을 상승시키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선물거래도 한몫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안정화되기를 바라지만 더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버블이라는 논란 속에서도 가격이 얼마나 상승할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버블이라면 그것은 언젠가는 꺼진다는 것입니다.”

 
그 언젠가가 언제일까? 나는 많은 사람이 벌떼처럼 나에게 달려드는 생각을 하니 괴로움이 물밀 듯이 몰려옴을 느꼈다. 그 자리에 있기가 힘들었다. 비트코인과 관련한 새로운 상품을 내놓으면 더 많은 사람이 투자할 것이고 그 향방은 나도 모르는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비트코인을 만들 당시를 회상하면서 왜 사람들이 광분하는지에 대해 상상을 해 보았다. 그리고 정말 꿈속에서처럼 내게 고의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반문해 보았다. 
 
어쩌면 비트코인의 매력은 이런 것이 아닐까? 우선은 공급이 제한된 것이다. 사람들은 주요 기축통화의 양적 완화로 인한 돈의 가치에 대한 장기적인 두려움을 가진 것이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이 풀리면 물가상승이 일어나고 물가상승이 일어나면 돈의 가치는 줄어든다. 비트코인은 계속해서 가격이 올랐다. 사람들은 미신처럼 이것을 믿는데 내가 어느 정도의 돈의 가치가 상승할 것을 의도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처럼 올라갈 것을 상상하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익명성이다. 나는 내 정체를 숨기고 싶었다. 혹시라도 내 신변에 위협을 가할 사람들이 두려웠다. 그런데 이게 돈세탁에 사용될 것을 내가 몰랐을까? 월가에서 근무한 사람으로서 조금만 신경을 기울였다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마지막 이야기가 정말 나를 괴롭혔다. 이 돈이 범죄의 소굴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익명성으로 인하여 과거에 벌어졌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들이 비난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 기술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비트코인과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미의 말처럼 어쩌면 비트코인이 블록체인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하나는 가더라도 하나는 영원할 수 있을 것이다. 주머니에 있는 수첩을 꺼내 한 장을 떼어 작은 종이배를 만들어 보았다. 저 종이배는 욕심을 가지지 말기를 바랐다. 내가 광기 어린 서브 프라임 모기지로 돈 번 인간이다. 내가 광기 어린 비트코인의 역사를 만든 주범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생명이 더욱 단축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몸이 으스스하게 느껴지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종이배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마치 남해회사에 투자하여 폭망한 뉴턴처럼 말이다. 종이배에 인간의 광기를 싣고 저 멀리 보내버리는 기도를 하였다.

 
“'광기'. 그래 그것은 합리성의 결여이지. 합리성이란 무엇일까? 경제학에서 사람들이 투자가가 합리적이란 이야기는 과장되었다. 모든 투자자가 합리적이라는 가정도, 모든 시간에 합리적이라는 가정도 현실에서 모순점이 너무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럼 현실적이란 것은 무엇일까? 개별 투자가가 합리적이라고 시장이 합리적일까? 세력이 있다면? 시세 조정자가 있다면? 국민의 투기적 기질은 고려대상이 되지 않을까? 비트코인처럼 변동성이 클 경우 누가 그것을 지급결제로 사용할 것인가. 구매자는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고 판매자는 내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사는 것은 내가 산 것을 더 높은 가격에 받아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이다. 그게 영원할까?”

 
수많은 비트코인을 가진 백만장자가 매집한 비트코인을 일반사람들에게 건네주는 광경을 생각하니 너무 힘이 들었다. 국민의 투기적 기질은 어떤 특정 국가 국민의 특성이 아니다. 해당 시기의 국민적 분위기나 시대 분위기를 따르는 것이다. 지금 흙수저들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나는 불평등한 시대에 비트코인이란 것을 내놓아 세상에 불을 지폈다. 어쩌면 사회 전체의 분위기나 시대상을 고려하지 않고 불장난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그는 버블의 역사에 관해 많은 연구를 했다. 그는 『광기, 패닉, 붕괴 : 금융위기의 역사』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그가 말한 명구절을 조용히 읊었다. 차가 놓여 있는 주차장으로 가는 내 발걸음이 무겁다. 몸이 너무 안 좋았지만, 마지막 본 키웨스트의 바다는 영원하리다. 찰스 킨들버그는 ‘사촌이 땅 사서 돈 벌면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

 
“친구가 부자가 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자신의 복지와 판단을 방해하는 것은 없다.”

 
“There is nothing so disturbing to one’s wellbeing and judgement as to see a friend get rich.”



월가의 사람이었던 사람으로서 한마디 해 본다.

 
“비트코인 거래의 지침서란 것은 없습니다. 회사의 이윤도, 채권증서도, 투자수익에 대한 지속적인 현금흐름도…. 그냥 수익이라고는 가격이 상승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에는 적정가격이 없습니다. 그게 10달러일 수도 10만 달러일 수 있습니다. 설마 연기금이 포트폴리오에서 1%를 암호화 화폐에 투자하는 것은 아니겠죠. 비트코인이 지급결제 수단이 될 것은 여러분들이 얼마나 이성적인가에 달려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실패자입니다. 돈을 좋아한 내가 속죄하겠다고 한 내가 수많은 욕망과 번민을 만들었습니다. 세계시민 여러분 앞에 정중히 사과합니다. 지금 세계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위험을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그 가능성에 세계는 주목하여야 합니다.”

 
회개의 방법을 생각하는데 무서움만이 다가온다. 그냥 차를 바닷속으로 몰고 가고 싶었다.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기에 잭슨빌로 향했다.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서 세상에 대한 회한으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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