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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혈액' 옻, 옻칠을 거치면 명품이 되는 이유

기자
이정은 사진 이정은
[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2)
필자는 분야별 인간문화재와 함께 최고급 한국 수공예품을 제조해 유통하는 일을 한다. 전국 곳곳에 있는 인간문화재를 포함해 숨은 분야별 장인을 찾아 소개하면서 이전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문화재로 새롭게 지정되어가는 분야 또한 들여다본다. 무엇보다 이제는 거의 끊긴, 한국 고유의 전통 수공예 기법의 맥을 잇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은퇴 후 전통 공예를 배울 문하생을 찾고 있다. <편집자 주>
 
 
나전칠기 장의 모습. [중앙포토]

나전칠기 장의 모습. [중앙포토]

 
1900년 파리박람회. 동양에서 온 한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당시 프랑스의 한국 연구자가 쓴 참관기엔 “금속장식이 정교한 장롱 등 아름다운 가구가 전시장에 있다. 자개 박은 나무상자, 나무 장롱, 옷장 등은 우아한 면에서나 그 멋으로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 등으로 설명돼 있다. 
 
한 유학생이 파리의 동양어 학교 도서관에서 이 참관기를 발굴해 중앙일보 1977년 7월 4일 자에 소개했다. 유럽에 처음 전시된 나전칠기 이야기다. 나전칠기는 유럽인에게 처음으로 선보인 한국의 공예작품이었다.
 
요즘 영화나 TV엔 나처럼 80년대에 태어난 사람은 정확하게 잘 모르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보인다. 그게 현실이든 과장된 허구이든 늘 문헌이나 작품을 통해 역사를 만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항상 흥미롭다.
 
고려 시대 문화를 알 수 있는 『고려도경』에는 “고려 나전칠기 기법은 매우 정교하여 귀히 여길 만하며, 제작된 말안장도 매우 정교하다” 는 기록이 있다.
 
선사시대 이래 국내 각지에서 발견된 칠기 유물을 보면 나무와 흙 등으로 만든 기물에 옻칠하거나, 옻칠에 안료를 배합해 만든 채화칠기가 통일신라 시대에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900년 만에 귀향한 고려 나전경함. 고려 미술을 대표하는 나전칠기는 국내에 한 점도 없다가 YFM(박물관의 젊은 친구들)의 후원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 됐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900년 만에 귀향한 고려 나전경함. 고려 미술을 대표하는 나전칠기는 국내에 한 점도 없다가 YFM(박물관의 젊은 친구들)의 후원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 됐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러한 칠기 미술은 고려 시대에 들어 정점에 이르게 되고, 이는 자개를 오려내거나 끊어서 장식한 나전칠기로 발전해 품격이 높은 예술품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특히 고려 원종 13년(1272년)에는 전문적으로 칠기를 제작하는 기관인 ‘전함조성도감’을 설치했다. 이곳에서 제작된 장경의 경첩을 보관하기 위한 경함 등은 정교한 나전 기법이 조형미의 극치를 보여줘, 상감청자의 선구가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국보급의 고려 나전칠기는 민족예술로 승화했고, 조선 시대에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민중예술로 발전했다.   
 
안타깝게도 근대에 들어서 칠기 문화는 급속도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1950년 한국 전쟁을 기점으로 우리 칠기 예술은 정체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경남 통영에서는 우리 문화재가 파괴되고 분실되는 것을 막는 차원에서 일부 정치인과 예술인에 의해 나전칠기 기술을 가르쳐 계승하기 위한 ‘나전칠기 기술원양성소’가 설립된 건 의미가 있다. 당시 1기생으로 입문해 지금까지도 작업하고 있는 한 장인이 있다.

 
 
옻칠의 대중화에 앞장 선 김성수 장인
장인의 작업하는 모습 (2016년). [사진 김성수]

장인의 작업하는 모습 (2016년). [사진 김성수]

 
여든을 넘긴 김성수 장인이 그 주인공이다. 나전칠기 역사의 산증인으로 ‘옻칠’이란 단어를 널리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전칠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수공예다. 분업을 통해 여러 장인의 손을 빌려 공동 제작하기 때문에 한 사람만의 작품이 아니다. 
 
나무를 깎아 형태를 만드는 소목장, 그 원목 위에 옻칠하는 옻칠장, 이와 함께 화룡점정처럼 자개를 오려내거나 끊는 자개장 등이 서로 손발을 맞춰 작품을 완성한다. 그중에서도 나전칠기가 영롱하게 빛나도록 하는 가장 귀한 요소가 바로 옻칠이다.
 
천연 옻칠 재료를 사용해 예술품을 생산하는 나라는 아시아에선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4개국이 대표적이다. 이 중 대물림이 가능한 옷칠 성분을 가지고 있는 옻나무가 자라는 나라는 중국, 한국, 일본 3개국이다. 이들 나라의 옻나무에서 추출한 진액의 가치는 17세기 유럽에서도 인정했다. 
 
옻나무 씨앗을 중국에서 가져와 심어봤지만, 나무 가구의 본고장인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는 기후 조건 때문에 옻나무가 자라지 않아 옻칠을 사용하지 못했다.
 
 
장인의 연구실 (2017년). [사진 이정은]

장인의 연구실 (2017년). [사진 이정은]

 
오늘날 영어 사전을 보면 옻칠을 'Lacquer', 옻칠 공예를 'Lacquer Craft', 옻칠 회화를 'Lacquer Art' 'Lacquer Painting' 등으로 표기한다. Lacquer는 일반 도료로 쓰는 화학 칠 정도로 풀이된다. 옻칠 공예품이 서양에서 평가절하되는 이유다. 
 
중국(Daqi), 일본(Urushi)은 일찌감치 Lacquer 대신 고유 언어로 표기하고 있다. 일본의 한 옻칠 공예가는 ‘옻칠은 신의 혈액’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 고유 언어인 옻칠(Ottchil)은 2002년에 와서야 김성수 장인 덕분에 고유명사로 쓰이기 시작했다.
 
 
작품명 '우주공간'. 2018년작. [사진 김성수]

작품명 '우주공간'. 2018년작. [사진 김성수]

 
김성수 장인은 고 이중섭 선생으로부터 소묘를, 고 김봉룡 나전장 무형문화재로부터는 나전기법을 배웠다. 여기다 옻칠의 다채로운 색감을 활용해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현해 왔다. 무엇보다 그는 나전칠기를 옻칠 회화로 정립하려고 한다. 2006년에는 통영에 옻칠 미술관을 설립해 한국의 옻칠이 세계화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작품명 '웅비'. 1988년작. 서울올림픽기념. [사진 김성수]

작품명 '웅비'. 1988년작. 서울올림픽기념. [사진 김성수]

작품명 '흑빛'. 2014년작. [사진 김성수]

작품명 '흑빛'. 2014년작. [사진 김성수]

 
김성수 장인의 작품 세계를 자세히 보면 현존하는 한국의 천재 회화가란 이야기가 나올 법하다. 그는 옻칠과 나전을 재구성해 창작함으로써 한국의 현대 옻칠 회화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1960년대부터 미술대학 교수로 임용돼 후학 양성의 길을 걸으며, 전통 옻칠의 계승 발전에 힘쓰는 한편 디자인 교육과 창작 활동을 통한 전통문화의 현대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장인 인터뷰 모습 2017년 [사진 이정은]

장인 인터뷰 모습 2017년 [사진 이정은]

 
“옻 이상의 칠 재료는 지구 상에 없습니다. 방수·방충은 물론 습도까지 조절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쇠 장식에 칠하면 녹이 슬지 않고 가죽에 칠하면 부드러운 결을 유지해 줍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반영해 옻칠 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셈이다.  
 
 
옻칠 전통문화, 단절 위기 
1960년대 이후 한국은 개방화 시대를 맞았다. 이때 이루어진 서구문물유입과 서구방식의 교육은 우리 문화의 탈전통화를 가속했다. 이런 속에서 학문 밖으로 소외된 전통 나전칠기는 점차 ‘카슈’라는 합성칠로 대체돼 값싼 나전칠기 제품으로 변질됐고, 급기야 우리의 뿌리 깊은 전통이 단절의 위기를 맞았다.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모든 제조업이 대량생산하면서 옻칠이 아닌 합성칠이 유행하기 시작했죠. 아직도 요즘의 사람들은 옻칠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합성칠과 옻칠을 구분하지 못해요. 옻칠이 우리 한국의 오랜 전통인데도요. 잘 모르니 저평가돼 있고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작업인 만큼 옻칠의 가격대는 높을 수밖에 없어요. 20세기로 들어오면서 그 전통 기술의 맥이 단절된 이유는 그동안 가르칠 사람도, 배울 문하생도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옻칠의 평가절하로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다 보니, 공예품을 사는 사람도 줄었죠. 옻칠 공예품은 명품입니다. 옻칠 자체가 정말 귀한 재료인 데다, 이를 만드는 사람이 점점 귀해지면서 더욱 고가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옻칠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린다. 외관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장인의 손길이 오랜 시간 작품에 녹아든다. 수공예업은 사람이 기획하고, 투자하고, 만들고, 판매하고, 사고, 사용하다가 대물림한다. 사람이 만들고 쓰는 이야기가 작품 하나하나에 스며든다. 문제는 장인층이 엷다는 것이다. 김장인 역시 사람이 귀해 옻칠의 명맥이 끊어질 것을 걱정한다.
 
수공예업의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옻칠의 가치를 알았으면 한다. 크건 작건 수공예품의 가치를 생활 속에서 느끼는 문화야말로 진정한 선진문화가 아닐까.
 
이정은 채율 대표 je@cheyul.com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news.joins.com/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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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