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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내고 욕먹는다” … 기부금 확 줄인 대기업

주요 대기업의 기부금 지출이 2년 연속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금융감독원 공시 자료를 토대로 2014년 이후 기부금 지출이 비교 가능한 시가총액 상위 25개사(공기업 제외)의 기부금 액수를 집계한 결과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5개 대기업은 지난해에 전년보다 14.5%나 줄어든 7420억원을 기부금으로 집행했다. 2015년 9241억원이었던 기부금은 2016년 8684억원으로 6% 줄어든 데 이어 지난해엔 감소 폭이 더 커졌다. 지난해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낸 기업은 삼성전자였지만 기부 금액은 2504억원으로 전년보다 25.1%나 줄었다. 지난해 반도체 호황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는데도 기부금은 되레 줄어든 것이다. 또 삼성생명(135억원)이 기부금을 전년보다 79.4%나 줄이는 등 최순실 사태에 연루돼 홍역을 치른 삼성 계열사의 감소 폭이 두드러졌다.
 
이처럼 2년 연속 기부금이 줄어든 것에 대해 재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우선 2016년 터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배경으로 꼽힌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등에 기부금을 출연했다가 호되게 당한 이후 학습효과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같은 해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도 원인이다. 법 위반 여부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아직도 모호하다 보니 기부에 몸을 사리게 됐다는 해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단체 관계자는 “전체 재계의 기부금에서 삼성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며 “삼성이 기부금을 전반적으로 줄인 영향이 크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의 기부가 범법 행위라는 인상을 주게 되면서 기업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는 트라우마가 생겼다”며 “각종 비영리단체·공익재단·학회 등에 대한 지원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실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말연시 모금 운동인 ‘사랑의 열매 희망 나눔 캠페인’ 사랑의 온도탑 온도는 올해 100.2도(목표액 100% 달성 시 100도)로 2011년 이후 최저 온도를 기록했다. 지난해 비영리단체 간부의 잇따른 기부금 유용 사건, 여중생을 살해한 이영학의 기부금 탕진 등으로 기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과 함께 기업의 참여가 위축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 캠페인에서 기업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68.1%, 2016년 71.9%였다.
 
유니세프 관계자는 “운영에 타격을 입을 정도로 후원금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최근 2~3년간 흐름을 보면 기업들이 소극적으로 변한 것이 느껴진다”고 전했다.
 
학습효과 때문인지 대기업의 기부문화는 예전과는 달라지는 모습이 감지된다. 먼저 주요 기업들은 일정 금액 이상의 후원금 및 사회공헌기금에 대해 이사회 의결을 거치기로 하는 등 기부금 집행 기준과 절차를 깐깐하게 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자체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단순 기부에서 벗어나 맞춤형으로 실질적 도움을 주거나 상생·소통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식으로 사회 공헌의 방향을 바꿔 가고 있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는 일선 소방서에 열화상 카메라 1000대를 무상 지급했다. 현장 소방관들이 제품 개발을 요청했고, 삼성전자는 9개월에 걸친 연구개발을 통해 무게를 3분의 1로 줄이고, 휴대성이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
 
현대차는 저소득층 이웃의 자립을 돕기 위해 창업용 차량을 지원하는 ‘기프트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차량을 지원받은 사람들은 월평균 소득이 지원 전보다 2~3배 늘었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SK그룹은 11개의 사회적 기업(사회서비스 제공 및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이 주목적인 기업)을 설립해 1900여 명을 고용했고, LG그룹 역시 사업 아이템은 좋으나 자금이나 경영 노하우가 부족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세계적으로 국가 재정 부족과 맞물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갈수록 중시되는 추세”라며 “하지만 현재 한국 기업은 정상적인 사회 공헌조차 괜한 오해를 받을까 봐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고 진단했다. 
 
손해용·김지아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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