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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당신 곁에 나도 가만히

섬진강의 봄은 동시다발적으로 온다. 선발대로 전남 광양 소학정의 첫 매화가 피면 남해 망덕포구에서 황어 떼들이 매화 향기를 맡으며 거슬러 오른다. 경남 하동 남도대교에 도착하면 지리산 자락의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다.  

벚꽃잎 흩날리는 산자락에서 내려다본 섬진강. 4월 초면, 사진처럼 섬진강변에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다. [사진 이원규]

벚꽃잎 흩날리는 산자락에서 내려다본 섬진강. 4월 초면, 사진처럼 섬진강변에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다. [사진 이원규]

하지만 이보다 보름 정도 앞서 복수초가 눈 속에서 황금 술잔을 내민다. 뒤를 이어 작고 여린 변산바람꽃과 솜털 보송보송한 노루귀며 너도바람꽃이 피었다가 지면서 얼레지에게 바통을 넘겨준다. 깊은 숲속에서 얼레지가 피면 마침내 섬진강변 벚꽃이 환하게 피어난다.
그야말로 봄은 속도전이다. 꽃샘추위로 한발 물러서는가 싶더니 또 다른 빛깔의 꽃을 피우며 전방위적으로 달려든다. 봄기운은 빛깔이며 향기이자 입맛이며 촉감이다. 삶이 늘 그렇듯이 갈 수 있을 때 가고, 볼 수 있을 때 보아야 한다. 두꺼운 외투를 벗고 열린 오감으로 마중을 나가야 비로소 봄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다. 수동적으로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봄은 더디게 오고, 왔다가도 너무 빨리 지나갈 뿐이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현천마을에 만개한 산수유꽃. [사진 이원규]

전남 구례군 산동면 현천마을에 만개한 산수유꽃. [사진 이원규]

지난 겨울은 사철 푸른 녹차 잎들이 누렇게 다 얼어버릴 정도로 추웠다. 하지만 와야 할 것은 기어코 오는 법, 늦은 매화꽃들이 3월 중순부터 절정으로 치달았다. 광양 매화축제와 구례 산수유축제가 동시에 열렸다. 우리집 앞마당의 토종매화 세 그루도 어느새 꽃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바로 윗마을인 매화마을은 인산인해였고, ‘예술곳간 몽유(夢遊)’에도 주말이면 많은 벗들이 찾아왔다.
매화 나뭇가지에 앉은 직박구리. [사진 이원규]

매화 나뭇가지에 앉은 직박구리. [사진 이원규]

지난해처럼 올해도 원 없이 매화를 보았다. 지리산에 기대어 살다가 2년 전에 섬진강 건너 매화의 본고장인 다압면 외압마을로 이사를 왔다. 지리산 입산 20년 중에서 가장 긴 탐매(探梅)의 날들이었다. 특히 별이 빛나는 밤마다 길을 나섰다. 밤의 매화(夜梅)에 흠뻑 빠진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매화꽃을 찾아오는 별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주변 마을의 빛공해(光害)가 심하거나 아무리 찾아다녀도 아주 멋진 매화나무 모델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매화나무 고목 한 그루가 서있었다. 과수원처럼 무더기가 아니라 산기슭 녹차밭에 단아한 자세로 제자리를 잡았다. 이 나무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달빛이 없는 그믐 무렵의 밤마다 찾아가 별빛 안부를 물었다. 멀리 마을 가로등의 불빛도 별빛이 지워지지 않을 만큼 아주 적당하게 몰려왔다. 최고의 모델에 최상의 꽃자리였다. 매화가 피었다가 지는 동안에 사흘 밤을 그 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으며 지새웠다.  
매화꽃 위로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산기슭 녹차밭에 꼿꼿이 선 매화나무와 별 빛나는 하늘을 사흘 밤 동안 촬영했다. [사진 이원규]

매화꽃 위로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산기슭 녹차밭에 꼿꼿이 선 매화나무와 별 빛나는 하늘을 사흘 밤 동안 촬영했다. [사진 이원규]

그리하여 나의 사진 ‘별나무’ 시리즈 중에서 매화나무를 겨우 졸업했다. 단 한 장의 점성사진을 얻기 위해 수동조작으로 300장 가까이 찍고, 별궤적 사진을 얻기 위해 타임 랩스(카메라가 일정 주기로 자동 촬영하는 모드)로 1500장 이상을 찍었다.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단 한 장의 사진을 건졌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봄밤이었다. 지난 5년 동안 감나무, 오동나무, 능수버들 등 한국의 토종나무들을 찾아오는 별나무 사진을 찍어왔다. 지난해에는 3년 만에 이팝나무를 졸업하고, 올해는 매화나무를 겨우 졸업했다. 물론 내 맘대로 입학하고 나 홀로 졸업한 것이니 언제든 또 다시 입학할지 모른다. 이제 별나무 시리즈도 1차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떨어진 매화 꽃잎 위로 자주 봄비가 내렸다. 슬슬 꽃이 진다고 봄비를 탓하랴, 바람을 탓하랴, 세월을 탓하랴. 질 때는 져야하는 법, 지지 않는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다. 꽃은 필 때도 좋지만 지는 꽃이 더 향기로운 법, 지지 않는 꽃은 이미 꽃이기를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남 하동 악양면 평사리 부부송. 부부송 아래 매화꽃 피고 먼산에 눈이 내렸다. [사진 이원규]

경남 하동 악양면 평사리 부부송. 부부송 아래 매화꽃 피고 먼산에 눈이 내렸다. [사진 이원규]

섬진강 벚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자 왼팔 통증이 심해졌다. 모터사이클 타기도 어렵고, 카메라를 들기도 힘들고, 깊이 잠들지도 못했다. 오십견 때문인지 왼팔을 높이 치켜들기가 너무 힘들었다. 진통제를 먹어가며 스트레칭을 좀 했더니 사흘 만에 통증의 큰 파도 하나가 지나갔다. 아프지 않고 어찌 봄이 오고, 통증도 없이 어찌 꽃이 지겠는가.
목련꽃이 피고 벚꽃이 피는 날, 하동 악양면 평사리 동정호에 들렸다. 그곳에 ‘동정호 사랑의 느린 우체통’이 있다. 흐린 날 낮에도 가보고 별빛 초롱초롱한 한밤중에도 가봤다. 1년 뒤에 배달된다니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쓰고픈 봄밤이었다. 온 세상은 흰빛, 분홍빛, 연초록의 봄 편지로 가득했다. 문득 박완서(1931~2011) 선생의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떠올랐다.
드론으로 촬영한 섬진강의 봄. [사진 이원규]

드론으로 촬영한 섬진강의 봄. [사진 이원규]

박완서 선생은 돌아가시기 1년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매화 필 무렵에 섬진강을 찾아왔다. 해질녘이면 소주 두어 잔 정도 마시던 박 선생께서 먼 산을 바라보았다. 26세 외아들과 남편을 먼저 앞세운 한 여인의 비애가 깊이 묻어나왔다. “차라리 남편의 죽음은 견딜 만하더라구요. 아들을 앞세우고 너무 절망에 빠져 신을 부정했지요. 이스라엘 요단강까지 가보았지요. 그런데 직접 보고는 너무 실망했어요. 차라리 북한강과 섬진강만 보다가 죽는 게 더 나을텐데….” 혼잣말인 듯 낮은 목소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2011년 1월 22일, 섬진강 첫 매화가 막 피어나기 시작할 무렵에 그예 먼길을 떠나시고 말았다.
선생의 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 힘으로 이룩한 업적이나 소유는 저세상에 가져갈 수 없지만 사랑의 기억만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진다.” 봄을 마중하고 배웅하면서 죽음조차 두렵지 않다는 말이 가슴을 친다. ‘사랑의 기억’을 꽃빛으로 보여준다면 어떤 꽃일까. 분명 연분홍 계열의 봄꽃일 것이다. 굳이 한 꽃을 보여준다면 나는 단연코 ‘남바람꽃’이라 말할 것이다.
구례에서 만난 남바람꽃. 꽃잎 뒷면의 분홍빛이 매혹적이다. [사진 이원규]

구례에서 만난 남바람꽃. 꽃잎 뒷면의 분홍빛이 매혹적이다. [사진 이원규]

꽃 송이송이마다 연분홍 물감으로 수채화 붓 터치를 한 듯한 남바람꽃, 그 연분홍 무늬는 단 하나도 같은 게 없다. 한때 남방바람꽃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남바람꽃으로 개명된 희귀 야생화다. 고(故) 박만규(1906~77) 박사가 1942년 전남 구례에서 처음 발견한 꽃이다. 일본의 남바람꽃이 아니라 ‘조선 남바람꽃’이었다. 4년 전인 2014년, 벚꽃이 피고 질 무렵에 우연히 이 꽃을 찾았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남바람꽃을 제주가 아닌 뭍에서 만난 건 무려 72년 만이었다. 그것도 최초 자생지인 구례에서 발견한 것이다.
지리산 남부능선 자락에 올라 벚꽃 환하게 피는 섬진강을 내려다보았다. 저 물굽이 벚꽃나무 아래 남바람꽃 일가들이 꽃망울을 내밀기 시작했다. 4월 첫째 주말에 화개장터 벚꽃축제가 시작되면 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교통정체가 심하니 이른 아침이나 밤에 도착하는 것이 현명하다. 매화도 그렇지만 대낮의 꽃보다 이른 아침이나 밤의 벚꽃이 더 환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절감한다. 문득 노안이 찾아와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을 놓치고, 자꾸 더 먼 곳만 바라보게 된다. 그리하여 다시금 낮은 포복으로 오는 봄의 전령들에게 배우고, 오체투지의 자세로 접사 렌즈를 들여다보며 인생을 배운다.
봄비 내리는 날 안개 속에 얼굴을 내민 얼레지꽃. [사진 이원규]

봄비 내리는 날 안개 속에 얼굴을 내민 얼레지꽃. [사진 이원규]

섬진강 갯버들. [사진 이원규]

섬진강 갯버들. [사진 이원규]

청명(淸明)이나 곡우(穀雨)가 돼야 봄이 온 줄 아는 사람은 이미 늦었다. 농부나 어부처럼 미리 봄을 살아야만 온몸 그대로 봄이 된다. ‘그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을, ‘우리는 날마다 가닿아야 할 그곳에 이미 도착하고 있다’는 것을 날마다 되새기는 봄날이다. 꽃 피는 당신 곁에 나도 가만히 꽃 한 송이 피우고 싶다.  
 
◇이원규=시인.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97년부터 지리산 자락에서 살고 있다. 오토바이 타고 지리산과 섬진강을 누비며 사진도 찍는다.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 『옛 애인의 집』등, 산문집 『지리산 편지』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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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