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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서만 한해 50조 경제효과 … 박쥐는 친구일까 적일까

하늘의 제왕인 박쥐. 포유류 중 유일하게 날아다니는 박쥐는 해충을 없애주기도 하지만 사람에게 병을 옮기기도 한다. [중앙포토]

하늘의 제왕인 박쥐. 포유류 중 유일하게 날아다니는 박쥐는 해충을 없애주기도 하지만 사람에게 병을 옮기기도 한다. [중앙포토]

아주 먼 옛날 신(神)의 궁궐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신은 모든 새를 차례로 보내 불을 끄게 했다. 다른 새는 다 실패했고, 박쥐만 성공했다. 커다란 날개로 바람을 일으킨 덕분이었다. 하지만 재를 뒤집어쓴 채 돌아온 다른 새가 신에게 자신이 불을 껐다고 거짓으로 아뢰었다. 신은 크게 칭찬하며 그 바람까마귀란 새를 ‘새들의 왕’으로 삼았다. 뒤늦게 박쥐가 돌아와 자신이 불을 껐다고 했지만 신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박쥐는 잔뜩 화가 났고, 그는 영원히 신에게 등을 돌리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 박쥐는 거꾸로 매달려 지낸다. 마다가스카르의 신화다.
 

꽃가루 옮겨주고, 배설물은 비료
해충 잡아먹는 강력한 자연 살충제

사스 등 바이러스 많아 인류 위협
개발로 서식지 파괴돼 멸종 위기
동아시아에서는 재복 상징하기도

캄캄한 동굴과 밤하늘을 좋아하는 동물. 하늘을 제대로 날아다니는 유일한 포유류인 박쥐. 뭉툭한 코와 커다란 귀, 뾰족한 이빨을 가진 박쥐는 생김새 탓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여기에 흡혈박쥐 얘기까지 나오면 혐오를 넘어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과연 박쥐는 인류에게 해롭기만 한 적일까.
 
지구 상에는 약 1200종의 박쥐가 사는데 과일을 먹는 박쥐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은 곤충을 잡아먹고 산다. 피를 빠는 흡혈박쥐(뱀파이어 박쥐)는 1종뿐이다.
 
광견병을 옮겨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는 흡혈박쥐.

광견병을 옮겨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는 흡혈박쥐.

흰코증후군을 앓는 박쥐.

흰코증후군을 앓는 박쥐.

미국 텍사스 주 브라켄 동굴에 사는 2000만 마리의 박쥐 무리는 하룻밤 사이에 한 마리당 10g씩, 모두 200t의 곤충을 먹어치운다. 어떤 박쥐 종류는 한 시간에 모기 1000마리를 잡아먹기도 한다. 엄청난 양의 곤충(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농촌에서 살충제 사용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자연계의 강력한 살충제인 셈이다.
 
박쥐는 동굴 천장에 매달린 채 배설한다. 오랜 시간 쌓여 딱딱하게 굳은 박쥐 배설물(구아노)은 비료로 사용된다. 박쥐 중에는 바나나·망고·빵나무·복숭아·대추야자·무화과 등 식물의 꽃가루를 옮겨주는 종류도 있다.
 
이처럼 박쥐가 농업 분야에 기여하는 가치는 북아메리카지역에서만 연간 최대 50조 원에 이른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하지만 박쥐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도 사실이다. 박쥐는 다양한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는 ‘바이러스 창고’다. 사스(SARS·급성호흡기증후군)나 에볼라 바이러스는 모두 박쥐를 중간 숙주로 삼아 인간에게 전파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2015년 국내에서 큰 피해를 냈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도 박쥐가 갖고 있던 바이러스가 낙타를 거쳐 사람에게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흡혈박쥐가 옮기는 광견병 바이러스 탓에 과거 남아메리카 아마존 밀림 근처에 사는 브라질이나 페루에서는 한 해 수만 명이 물리고, 20~30명이 사망했다. 최근에는 예방접종 덕분에 목숨을 잃는 사례는 훨씬 줄었다. 흡혈박쥐도 처음부터 살인 박쥐는 아니었다. 인간과 멀리 떨어진 삼림지대에서 살아왔는데, 무분별한 벌목작업에 박쥐들이 서식지에서 쫓겨나면서 사람과 자주 접촉하게 됐다. 이처럼 개발로 인해 박쥐가 숨을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 세계 박쥐 종(種)의 20%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
 
중국 도자기에 그려진 박쥐는 행운을 상징한다.

중국 도자기에 그려진 박쥐는 행운을 상징한다.

박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도 받는다. 새끼들의 젖을 먹여야 하는 암컷들은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날개로 인해 몸 표면적이 넓어 증발량이 많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물이 귀해지면 박쥐는 더 긴 거리를 비행해야 한다. 기온이 급상승하면 동면이 방해받을 수도 있다.
 
10여 년 전부터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박쥐 사이의 감염병인 ‘흰 코 증후군(White Nose Syndrome)’이 번져 700만 마리 이상이 죽었다. 하얀 곰팡이는 코뿐만 아니라 날개 등 몸 전체로 번지면서 피부가 녹아버리는 병이다.
 
한반도에는 모두 23종의 박쥐가 분포한다. 황금박쥐로 알려진 붉은박쥐(오렌지윗수염박쥐)는 환경부가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했다. 다른 3~4종도 멸종됐거나 멸종위기에 처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이 지난 2010년 발간한 대한민국 생물지 ‘한국의 척추동물-박쥐류’에 따르면, 멧박쥐의 경우 60년 이상 국내에서 채집된 적이 없다. 고바야시박쥐(시선졸망박쥐)도 1920년대 평양에서 잡힌 이후 눈에 띄지 않는다. 작은코박쥐도 과거 북한에서 채집됐으나 남한에서는 1960년 뱀의 위장 속에서 머리뼈가 발견된 게 전부다.
 
오렌지윗수염박쥐는 전남 함평 고봉산 폐금광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2013년에는 내장산에서도 오렌지윗수염박쥐가 발견됐다. 멸종위기 2급인 토끼박쥐는 2013년 오대산에서, 2014년 가야산에서 발견됐다. 2016년에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큰귀박쥐가 북한산에서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서식지가 파괴되고 먹이인 곤충이 줄면서 박쥐도 감소하는 추세”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박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박쥐가 부지런히 재물을 모으고 사람을 보호하는 동물로서 복과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기도 했다. 우리 전통가구에도 박쥐 문양이 자주 등장한다. 중국에서는 박쥐를 가리키는 글자인 복(蝠)자와 행운을 가져오는 복(福)자가 발음이 같아 박쥐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박쥐는 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잘 돌본다면 친구로 남을 수도 있다. 외모로 판단하기 좋아하는 우리 인류가 친구인 박쥐를 적으로 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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