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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3월 수상작

<장원>
비혼(非婚) 시대
-이순화
 
자정 지나 퇴근하는 환갑 줄 총각 이씨
기다리는 처자식 누구 하나 없어도
대세는 비혼이라며 너털웃음 달고 산다
앞질러 기다리는 자잘한 불행에게
젊음과 맞바꾼 돈 빚 갚는 셈 내어주며
새벽길 파지 한 장도 기쁨으로 주워든다
바닥을 치면서 바닥이면 또 어떠냐고
국보급 무한긍정 같이 늙는 트럭 한 대
방지 턱 넘을 때마다 달빛 출렁 쏟아진다  
 
◆이순화
이순화

이순화

1965년생. 서경대 일문과. 동두천 문협, 동연독서회에서 활동. 유심시조아카데미에서 시조 공부 중.
 
 
 
 
 
 
 
<차상>
뿔   
-윤애라
 
보도블록 틈 사이로 헤집고 나온 봄이  
텅 빈 하늘에다 점을 찍고 있습니다  
홀씨로 들이받는 꿈 환해지는 이 공간  
 
어느 골짝 먼 물소리 귀 기울여 보다가
한 방울 젖을 때면 키를 늘인 연둣빛
비집고 나섰습니다 아직 추운 이 둘레
 
겨우내 찬바람에 닦이고 닦인 별빛
가슴에 받아 안고 그예 꿈 내 딛는 날
천지를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싶습니다.    
 
<차하>
봄의 현관    
-조긍
 
잡동사니 쌓인 겨울 읽고 있는 다용도실
여남은 개 묵은 감자 새싹이 돋고 있다
겨우내 미루던 일기 씨눈으로 적는 건지
 
텃밭 가꾼 친구가 먼 택배로 보내와서
버리지 못했더니 그예 한마디 쓰나 보다
잔설의 여백을 건너 첨부하는 상춘 안부
 
식탁에 올리면 구수한 낱말 돋아난다
대보름 부럼이랑 찐 감자에 동치미 조각
손 글씨 늦은 답장이 자꾸만 길어진다  
 
<이달의 심사평>
그리하여 마침내 봄이 왔고, 봄이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작품들이 응모되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숙성을 위해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한 가운데 이순화씨의 ‘비혼 시대’를 장원 작으로 들어올렸다. 이 작품은 환갑 줄에 접어들도록 총각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무한긍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씨의 곡절 많은 삶이 오롯이 포착된 가작이다. 바로 그 이씨의 삶 위에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내 집 마련도, 인간관계도 다 포기했다는 5포에다, 그 보다 더한 7포, N포 세대가 겹쳐져 보여서 가슴이 뭉클 했다. 시상 전개에도 별다른 무리가 없고, “방지 턱 넘을 때마다 달빛 출렁 쏟아진다” 같은 신선한 구절에도 방점을 찍게 했다. 차상으로 뽑힌 윤애라씨의 ‘뿔’은 봄날 뾰족뾰족 돋아나는 생명을 뿔에다 비유하여 표현한 제목부터가 상큼하고, “천지를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싶습니다”로 이어지는 메시지의 도출과정도 자연스럽다. 차하로는 조긍씨의 ‘봄의 현관’을 뽑았다. 달마다 빠짐없이 응모하고 있는 조씨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리듬이 불안하고 말의 기맥이 자연스럽지 못한 점이 늘 아쉬웠는데, 이제 많이 개선된 것 같다. 앞으로 이점에 좀 더 유의하면 보다 좋은 작품을 쓰게 될 것이다.
 
박혜순, 설경미, 정화경, 원순자, 김경연씨 등의 작품들이 끝까지 각축을 벌였다. 모두 새로 투고한 분들이라 앞날에 기대를 가지게 했다.
 
심사위원: 염창권·이종문(대표집필:이종문)
 
<초대시조>  
※진아영
-이숙경
 
턱 괴고 생각한다느니 한 턱 낸다는 말
그녀에겐 당찮은 슬픔의 관용어였지
씹어서 삼키지 못할 아픔이 우물거렸네
 
따뜻한 포유류의 둥근 턱이 사라진 뒤
어류의 아가미처럼 변해버린 입언저리
죄없는 사람이었다고 조아릴 틈 없었네
 
살아야 할 신념에 비할 바 없던 이념
오랜 총성 그 환청 무시로 관통하는
무명천 얼굴에 감싼 미안한 역사였네
 
※진아영: 제주 4·3사건 당시 토벌대 총탄에 턱이 소실되어 평생 무명천으로 턱을 감싸고 살다 간 할머니.

 
◆이숙경
이숙경

이숙경

1966년 전북 익산 출생. 전주교대, 대구교대 교육대학원 졸업.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집 『파두』, 현대시조100선 『흰 비탈』, 시론집 『시스루의 시』. 영언 동인 
 
 
 
 

며칠 후면 제주 4·3사태가 70주년을 맞는다. 탄환은 순간을 스쳐 지나가도 탄흔은 남는다. 우리는 역사의 시계를 빠르게 돌려 너무 쉽게 잊으려 한다. 알고 보면 현실이란 인간의 기만이며 허상이다. ‘진아영’은 잘못 맞힌 역사의 과녁이 낳은 역설과 반전의 이중주다. 이제 진실의 꽃잎은 바람에 흩날리다 땅에 묻혔다. 우리는 영원히 “씹어서 삼키지 못할” 불편한 진실의 “환청”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한 시인에 의해 되돌아 온 ‘진아영’은 비현실적인 유미주의에 대한 서정시의 집착을 역사적 리얼리티로 재탄생시킨다. 그 어떤 수사나 미학조차 배제하고 시대를 직시함으로써 관념적 서정시의 퇴락을 경고한다.
 
제주 4·3사건의 동족에 의한 만행은 침략자의 악행보다 더하게 생명을 수탈한 비극이다. 그러므로 역사 앞에 말 많은 수사는 위선이다. 희생양인 ‘진아영’ 역시 평생을 죄 없는 죄인으로 “무명천” 멍에를 쓰고 살다 갔다. 시인은 질곡보다 무서운 그녀의 한 생을 시대의 모순율로 고발하고 반성하며 읊조린다. 즉 “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틈도 없이 “무명천 얼굴에 감싸”안은 것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이 아니라 “미안한 역사”였다고. 생명이란 이념과 신념을 넘어서는 절대적 가치다. 때문에 “오랜 총성 그 환청 무시로 관통하는” 상처 속에 일생동안 악몽의 통증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가 견딘 숙명이 우리의 죗값이 되어야 한다. 시인은 지나간 사실을 너무 태연하게 진술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읽어서는 시인이 숨겨둔 의도를 찾을 수 없다. “무명천” 속에 가려진 우리가 볼 수 없는 여인의 감춰진 얼굴 속에, 말하지 않는 말 속에 시인의 숨겨진 눈이 있다. 철 이른 냉이 달래가 봄을 부르듯이 시인의 자각이 우리를 불러 세우고 뒤돌아보게 한다. 반목의 시대를 속죄양이 되고자 한 시인처럼 ‘진아영’을 잊지 말자. 
 
최영효(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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