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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이 업무보다 중요해?" 조직은 그렇게 피해자를 밀어냈다

“저는 기업법무를 해온 사람이었고 제도권 안의 모든 구제절차를 거쳤습니다. 그러나 어떤 절차에서도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었습니다.”
 
27일 오전 이정미(52) 정의당 대표와 전국미투생존자연대가 주최한 ‘권력형 성폭력·2차피해방지 정책제안 세미나’가 열렸다. 국회 의원회관 단상에 선 실비아(가명)씨는 준비한 글을 또박또박 읽어내려갔다. 실비아씨는 2015년 STX 법무감시팀에 입사한 후 상사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상사는 ‘네가 여자로 보여서 힘들다’고 말하고, 결혼한 사람도 감정이 있다면서 추근거렸다”며 “다른 상사와의 술자리에 날 데려갈 때는 자기 스스로를 채홍사(왕에게 진상할 여자를 고르던 관리)라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및 참석자들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식 및 권력형 성폭형 2차 피해 방지 정책 제안 세미나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스1]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및 참석자들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식 및 권력형 성폭형 2차 피해 방지 정책 제안 세미나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스1]

 
이듬해 실비아씨는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지만 상사는 오히려 “성희롱이 업무보다 중요하면 그만두고 고소하라”고 말한 뒤 그를 업무에서 배제했다. 회사 인사위원회에서는 실비아씨에게 “여권이 신장돼 성추행으로 사람 하나 병X 되기 쉽다”고 말했고, 오히려 그를 사내질서 문란 등으로 징계했다. 그는 “성희롱을 신고하는 순간 공식처럼 이상한 사람, 사회부적응자, 꽃뱀이 되고 경력은 단절됐다”고 증언했다.
 
이날 세미나를 연 전국미투생존자연대는 조직 내 성희롱·성폭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뒤 ‘살아남은’ 사람들 40명이 모여 만든 조직이다. 지난 3일 활동을 시작해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800여명의 지지자가 모였다. 
 
세미나에서 직접 자신의 피해 경험을 증언한 3명은 모두 ‘소리쳤지만 구제받지 못한 경험’을 털어놨다. 아동복지시설에서 상담사로 근무했던 박경진씨는 “시설 내 청소년을 성추행 한 상사를 상부에 보고했지만 시설은 조사를 거부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박씨는 지속되는 직장 내 왕따를 겪다 결국 퇴사했다. 시설 윤리위원회 신고를 통해 복직과 명예회복을 요청했지만, 윤리위원회 측은 ‘성희롱 사실 발견 당시 즉시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오히려 박씨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중앙대 조소과 교수에게 강의 뒷풀이 자리가 끝난 뒤 성폭행 피해를 당한 A씨도 입을 열었다. A씨는 ‘잘 해결하겠다’는 교내 인권센터의 말을 믿고 형사고소를 포기하는 대신 가해자의 미술협회 퇴출과 재발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가해자는 다섯 줄짜리 사과문을 쓰고 학교만 그만뒀을 뿐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A씨의 증언을 대신 전한 김기홍 사회복지사는 “학교가 빠르고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면, 전임교수가 나서서 합의를 종용하거나 ‘꽃뱀이 돈 받으려고 자작한 사건이다’고 주장하는 2차피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정숙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대표는 “조직내 갑인 가해자는 을의 문제제기에 대해 ‘남녀 카르텔’을 형성해 을을 조직에서 제거하는 ‘2차 가해’ 형태로 보복한다”며 “권력형 성폭력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권력과 조직의 폭력에 의해서 벌어지는 사회적·구조적 문제”라고 분석했다.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은 “미투가 반짝하다가 사라질 것이라고, 잠깐 조심하다가 다시 옛날대로 살아야지, 라고 생각한다면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생존자연대는 이날 “피해자들 스스로 정책 제안 및 조직과 공권력에 의한 2차 가해를 감시하고, 각계의 전문가를 육성하는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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