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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한국을 대표하는 봄꽃은?...오는 5월 가장 큰 진달래 나무 공개

여수진달래가 피기 시작했다. [사진 영취산 축제위원회]

여수진달래가 피기 시작했다. [사진 영취산 축제위원회]

봄이다. 지천에 꽃이다. 그 중에 한국을 대표하는 꽃이 있다.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알리는 매화나 목련이 아니다. 봄의 대명사처럼 굳어진 벚꽃도 아니다. 백두산이나 한라산 등 명산에만 피지도 않는다. 집 가까운 뒷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진달래꽃이 그 주인공이다. 일부 식물학자들은 진달래가 고조선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일까. 무궁화 대신 진달래를 국화로 해야 한다는 논란도 잊을만 하면 이어진다.  
 

일부 식물학자들 "진달래꽃 고조선부터 우리 나라 대표 꽃" 주장
진달래꽃은 서민들의 배고픔 달래주던 꽃이자 한민족의 애환 담겨 있어
오는 5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진달래나무 추가 공개될 예정

우리나라 옛 문헌에는 진달래가 두견화(杜鵑花)로 기록된 것이 많다. 두견화는 진달래를 중국식으로 부르는 이름으로 두견새가 울 때 핀다고 해 붙여졌다. 관련된 슬픈 전설도 있다. 옛날 중국 촉(蜀)나라의 임금 망제(望帝)가 위(魏)나라에 망한 후 도망쳐 복위를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 그 넋이 두견새가 되었단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한을 품고 밤마다 이산 저산을 옮겨 다니며 처절하게 운다는 것이다. 두견새는 울 때마다 피를 토하고 그 원한의 피로 물들여진 것이 두견화, 곧 진달래라는 것이다.  
 진달래꽃. [사진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진달래꽃. [사진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눈 속에 핀 진달래꽃 . 프리랜서 김성태

눈 속에 핀 진달래꽃 . 프리랜서 김성태

그래서 진달래에는 두견새의 한이 서려 있고 두견새의 혼이 담겨 있다고 한다.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원한의 상징이듯 그 피로 물들여진 진달래꽃도 정과 한이 서린 꽃으로 문학에 자주 등장한다. 두견새와 진달래꽃이 서로 짝을 이뤄 우리나라 시 등 문학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소월이 생전에 펴낸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의 1925년초판본. [중앙 포토]

김소월이 생전에 펴낸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의 1925년초판본. [중앙 포토]

대표적인 것이 김소월의 시다. 김소월이 1925년 12월 26일 매문사에서 펴낸 시집 ‘진달래꽃’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집 중 하나다. 이 시집에 실린 ‘진달래꽃’은 한국인이 애송하는 시이다. 여기서 진달래꽃은 ‘한(恨)’이라는 정서와 연결된다. 이 시로 진달래꽃은 ‘민족의 꽃’으로 떠올랐다. 김소월의 시에 등장하는 진달래꽃이 지천이던 평안북도 영변군은 지금은 북한 핵시설의 대표지역으로 전락해 버렸다.  
 
우리나라 전설도 있다. 옛날 한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다리를 다쳤다. 진(秦)씨 성을 가진 한 나무꾼이 선녀를 발견해 치료해 주고 부부가 됐다. 이들에게 딸이 태어났는데 이름이 달래였다. 이후 달래는 예쁜 처녀로 성장했다. 새로 부임한 사또가 달래를 첩으로 삼고자 했으나 반항하자 죽였다. 나무꾼은 죽은 딸을 안고 울다 그 자리에서 죽었고, 그 자리에 붉은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이 진달래라고 불렀다는 내용이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산에서 유치원생들이 진달래꽃 나들이를 하고 있다. [뉴스1]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산에서 유치원생들이 진달래꽃 나들이를 하고 있다. [뉴스1]

 
풍습도 많다. 예전에는 진달래가 필 때 절을 찾아가 탑돌이를 하며 무병장수를 빌었다. 경상도에서는 진달래 숲에 꽃 귀신이 산다고 해 봄철 진달래가 필 때는 어린이들을 산에 가지 못하게 했다. 전라도에서는 진달래꽃이 피면 이름 없는 무덤에도 꽃다발이 놓였다. 시집 못 가고 죽은 처녀 무덤에는 총각들이, 총각 무덤에는 처녀들이 진달래꽃을 가져다 놓았다. 이렇게 처녀와 총각 귀신을 달래지 않으면 원혼이 나타나 혼사를 망쳐 놓는다고 믿어서다. 환경과 생태를 연구해 온 경남교육청 체육건강과 정대수 장학사는 “진달래는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가지가 꺾이고 송두리째 잘려나가도 모질게도 땅에 뿌리를 박고 억세게 피어나고 또 피어난다”며 “그래서 진달래꽃은 숱한 고난과 비애를 겪으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찬란하게 문화를 꽃피우며 끈질기게 살아온 우리 민족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말했다.
강화 고려산 진달래꽃 모습. [중앙포토]

강화 고려산 진달래꽃 모습. [중앙포토]

진달래 화전. [중앙 포토]

진달래 화전. [중앙 포토]

 
현재는 벚꽃놀이가 봄날 대표 꽃놀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삼월 삼짇날(음력 3월 3일)에 진달래 꽃잎과 찹쌀가루로 만든 화전(花煎)을 먹으며 봄기운을 입과 뱃속으로 느끼는 것이 대표적인 봄놀이였다. 답청(踏靑) 놀이라고 해서 새로 핀 꽃을 보고 갓 올라온 푸른 풀을 밟으며 봄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기도 했다. 화전과 답청 놀이 때 진달래꽃으로 빚은 진달래술을 마셨다. 차(茶)의 재료나 약재로도 쓰였다. 진달래는 기침을 그치게 하고, 여성들의 월경을 고르게 하는 효과와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만들어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진달래 국수를 만드는 법도 소개돼 있다. 무엇보다도 없는 집에서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봄날 산속을 헤매며 먹고 또 먹었던 꽃,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꽃이기도 했다.
지난해 대전 서구의 한 사회복지법인 정원에 핀 철쭉의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해 대전 서구의 한 사회복지법인 정원에 핀 철쭉의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대구시 북구 복현동 영진전문대학교 캠퍼스에서 활짝 핀 영산홍.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시 북구 복현동 영진전문대학교 캠퍼스에서 활짝 핀 영산홍. 프리랜서 공정식

 
이처럼 진달래는 먹는 꽃이다. 그러나 진달래에 연이어 피어난다고 해 연달래라고도 불리는 철쭉은 독이 있어 먹지 못한다. 그래서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참꽃으로 철쭉은 먹을 수 없어 개꽃으로 불린다. 요즘 집 안 거실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진달래 혹은 철쭉과 닮은 영산홍이다. 이 영산홍은 철쭉을 일본 사람들이 개량해 만든 것이다. 예전에 조성된 조선의 정원에는 진달래가 주요 조경 식물로심어졌다.
 부산 북구 화명동 화명수목원 숲 유치원생들이 수목원에서 진달래를 심고 있다. [중앙 포토]

부산 북구 화명동 화명수목원 숲 유치원생들이 수목원에서 진달래를 심고 있다. [중앙 포토]

진달래 화전. [중앙 포토]

진달래 화전. [중앙 포토]

 
진달래는 주변의 산 어느 곳에서도 즐겨 볼 수 있다. 해마다 진달래 축제를 하는 곳은 경남 창원의 천주산, 전남 여수 영취산, 경기도 부천시 원미산, 강화도 고려산 등이다.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진달래 나무는 2012년 밀양 재약산 사자봉 능선 1000m에서 발견됐다. 뿌리목의 둘레가 86㎝, 키가 3.5m다. 수령은 300년 이상으로 추정한다. 당시 이수완씨와 함께 가장 큰 진달래 나무를 발견한 정우규씨는 최근에 울산지역에서 이보다 더 큰 진달래 나무를 발견해 오는 5월쯤 언론 등에 공개할 예정이다.  
 
울산생명의숲 정우규(식물학 박사) 이사장은 “진달래는 우리 민족사에서 백성들이 그들의 지도자로 환인 천제를 모시면서 진달래꽃이 핀 나무 아래서 추대식과 수락식을 하는 등 최초로 등장하는 식물이고 고조선의 국화였다고 볼 수 있는 꽃이다”며 “우리 겨레의 혼이 담긴 진달래를 잘 보전해 나갈 수 있도록 밀양 사자봉 인근 진달래 군락지 등 주요 진달래 군락지에 대한 보전 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창원=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올해 진달래 예상 개화도. [중앙포토]

올해 진달래 예상 개화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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