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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김정은의 명줄 쥐게 된 볼턴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한 이유로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해 왔다(이 주장은 그럴듯한 거짓말이다. 북한은 한국을 협박·지배하고 통일하기 위해 핵을 개발해 왔다. 필자의 감각으로 한국인의 15%쯤 되는 사람들이 북한의 주장에 속아 북한 핵무기는 한민족의 공동 자산이며 미·중·러·일 열강으로부터 한반도를 지키기 위해 필수적인 우리 민족끼리의 무기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북미국장은 국제회의에서 “국가 주권을 수호하는 유일한 길은 핵 보유뿐이다. 우리는 이라크·리비아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이라크·리비아 얘기는 김정은 시대에 개발된 논리다.
 
그런데 두 나라의 체제 붕괴와 관련한 김정은의 핵 인식은 틀렸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해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WMD)가 있다고 뒤집어씌워 전쟁을 일으켰다. 패전의 결과로 후세인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반면 리비아에 대해선 카다피가 핵무기를 개발하다 뒤늦게 비핵화를 약속하고 실천에 옮기자 체제 보장을 허용해 줬다. 미국이 세계 핵 체제에 도전하는 불량국가를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기준은 엄밀히 따지면 핵을 포함해 대량살상무기를 실제로 보유하고 있느냐 여부가 아니다. 불량국가가 미국에 얼마만큼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가, 비핵화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가 하는 게 기준이다. 핵무기의 실존성이 아니라 대미 적대성의 정도와 약속 이행의 진실성이 불량국가의 생존 조건인 셈이다.
 
김정은이 미국한테 체제를 보장받으려면 핵무기 완성을 추구할 일이 아니다. 대미 적대성을 누그러뜨리면서 비핵화 의지를 미·북 정상회담 때 확인해 주고 약속을 지키면 된다. 카다피가 2011년 비참한 최후를 맞은 건 핵 문제와 무관하다. 핵 문제는 2006년 미국이 리비아와 외교 관계를 수립해 대사관을 설치함으로써 깨끗하게 정리됐다.
 
카다피의 죽음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나 중동·북아프리카 거의 전역에서 자연 발생한 아랍 민주화운동 때문이었다. 수십 년간 누적된 독재의 폐해가 국내에서 저항을 불러 자기 국민의 손에 잡혀 죽은 게 카다피 최후의 진실이다. 따라서 김정은에게 충고하자면 1차적으로 비핵화를 실천해 미국과 평화 관계를 수립하고, 2차적으로 정교한 위로부터의 민주화를 이행해 주민의 마음을 사는 게 장수의 비결이 될 것이다.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의 번영을 구가하는 중국과 베트남의 길을 따를 필요가 있다.
 
미국이 2003년 이라크와의 전쟁, 리비아와의 비핵화를 각각 시작할 때 두 나라의 운명을 가른 주인공은 엊그제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된 존 볼턴이다. 그는 당시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으로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안보 논의의 중심에 있었다. 냉혹한 현실주의자다.
 
볼턴은 WMD가 없는데도 이라크를 공격한 사람이다. 그러니 핵무기 실험을 여섯 차례 했고 미국 본토에 날릴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완성했다고 떠드는 북한을 공격하는 데 주저할 성격이 아니다. 동시에 완전하고 철저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 프로세스를 김정은이 수용한다면 군사적 공격성을 중지하고 바로 외교 관계에 돌입할 사무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볼턴을 잘 아는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의 새 안보 진용은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을 혐오한다.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핵무기를 당장(right now) 없애겠다고 하지 않으면 볼턴은 바로 다른 선택(군사적 옵션을 의미)으로 옮아갈 것”이라고 쓰고 있다(뉴욕타임스 24일자). 문재인 정부도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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