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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꾸며야 … 예쁜데 일도 잘해 … 미투 키우는 작은 차별

“너같이 말 통하는 개념녀가 많아져야 된다니까.”
 
“너도 화장도 하고 여성스럽게 꾸미고 다니면 예쁠텐데.”
 
30대 여성인 회사원 A씨는 살면서 이런 말을 여러번 들었다. 어렸을 적 서툰 손으로 남동생과 빨래를 개거나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부모님은 동생에게만 “벌써 엄마 일을 도울 줄 안다”고 칭찬했다. A씨에게는 “이런 걸 잘해야 나중에 시집가서 예쁨 받는다”는 말이 돌아왔다. 대학생 시절 동성 친구들과 술을 잔뜩 사들고 펜션으로 놀러갔을 때 펜션 주인은 “처녀들이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된다”며 핀잔을 줬다. 입사 초반에 만난 직장 상사는 A씨의 업무능력을 칭찬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A씨는 예쁜데, 일까지 잘하네!”
 
이런 것들은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차별’, 즉 ‘먼지차별’에 해당한다. 하나 하나는 너무 작아 티가 나지 않는다. 쌓이고 나서야 보이는 미세먼지같은 차별들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외국 인권단체들이 사용하는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아주 작은 공격)’이란 단어를 번역해 만든 용어다.
 
최근 ‘미투’(#MeToo) 운동의 물결 속에서 여성들이 어디에서든 매일, 매 순간 느끼고 있는 먼지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회가 주입하는 ‘여자니까 ~ 해야 한다’‘여자는 ~할 것이다’라는 공식에 대항하는 움직임들이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사소한 편견들이 쌓여 차별을 만들고, 때로는 차별 대상에 대한 폭력을 낳기도 한다”며 “미투 운동의 출발점에는 바로 이같은 뿌리 깊은 먼지차별이 있다”고 설명했다.
 
먼지차별은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
 
대학원생 김은주(27)씨는 “며칠 전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내가 중년 여성에게는 자연스럽게 ‘이모’, 남성에게는 ‘사장님’이라고 부르고 있어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5년차 직장인인 김도연(32)씨도 “회사에 누가 과일을 가져오면 그걸 깎아 다과를 준비하는 건 늘 여직원 몫이다”고 털어놨다. 때로는 ‘야무져서 나중에 남편한테 사랑받겠다’ ‘살만 조금 빼면 예쁘겠다’ 등 농담이나 칭찬을 동반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그래서 차별을 경험해도 정색하고 따지기 애매할 때가 많다. 발언을 지적하는 순간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게 왜 문제야?”라는 질문과 함께 ‘프로불편러’로 찍히기 십상이다.
 
흔히 접하는 광고 속에도 먼지차별이 있다. 주로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적이고 남성을 위해 꾸민다’는 편견이 담겨있다. 여성단체들이 만든 온라인 아카이빙 페이지 ‘광고계 여성혐오’에는 ‘늑대들이 좋아하는 핑크빛 유두’라는 광고로 가슴에 바르는 미용크림 광고를 한 화장품 회사, 남자한테 모든 짐을 맡기고 웃고 있는 여자 사진 위로 ‘다 맡기더라도 피임까지 맡기진 마세요’ 문장을 삽입한 보건복지부 공익광고 등 다양한 사례가 저장돼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는 12개 공공기관 홍보물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발견해 해당 기관에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먼지차별들을 광범위한 ‘혐오표현’으로 규정하고 ‘혐오표현 확산에 대한 적극 대응’을 올해부터 3년 간 ‘인권증진 행동계획’에 포함시켰다.
 
이보람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과 소속 변호사는 “미투 이후 여성들은 성폭력 문제 뿐 아니라 오래 전부터 축적돼 온 여성 차별적인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한 사회의 언어나 표현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규정하는 측면이 있어 아무리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위험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분석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수많은 먼지차별은 일상을 움직이는 사회의 리듬 자체가 차별을 바탕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매일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고 마스크를 쓰는 것처럼 먼지차별에 대해서도 개개인의 민감도가 한층 더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상에서 흔한 ‘먼지차별’ 발언들
● “여자는 능력 없으면 그냥 취집(취업+시집) 가.”
● “넌 살만 빼면 남자들한테 인기 많을 거야.”
● “직업이 교사면 나중에 시집 잘 가겠네.”
● “안 그렇게 생겼는데 담배를 피워?”
● “얼굴 예쁘면 3개월, 요리 잘하면 평생 사랑받아.”
 
홍상지·여성국·김정연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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