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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 얼리러" 1만㎞ 원정 나서는 나라가 있다?

 3년 전 여름, 중국이 한 스타의 고백으로 떠들썩해졌습니다. 배우 겸 감독인 쉬징레이(44)인데요. 16살 어린 아이돌 그룹 엑소(EXO) 출신 크리스와의 열애설이 불거진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쉬징레이. [차이나데일리 캡처]

쉬징레이. [차이나데일리 캡처]

 “2013년 미국에서 난자 9개를 냉동 보관했다.”
 
중화권 연예계의 대표적 골드미스인 그가 2015년 이렇게 ‘커밍아웃’을 한 겁니다. (난자 냉동은 여성의 몸에서 채취한 난자를 얼리는 것을 말합니다.) 쉬징레이는 미래에 아이를 갖기 위한 ‘백업 플랜(back-up plan)’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참고로 중국에선 미혼 여성이 난자 냉동 시술을 통해 아이를 갖는 건 불법인데요.
 
 그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중국에는 ‘독신 여성’이라는 별개의 생물체가 있나 보다”라고 쓰며 당국의 정책을 정면 비판했습니다.
 
 쉬징레이의 고백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내가 내 난자도 마음대로 못하느냐”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아이를 가질 권리도 없냐”며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컸는데요. 놀라운 점은 당국의 법망을 피해 원정 냉동에 나서는 이들까지 생겨났다는 겁니다. 13억 인구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알고 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가 살펴보겠습니다.
 
변호사·교수가 나서 “미혼 여성에게도 허용” 요구  
"미혼 여성에게 난자 냉동을 허용하라"고 주장하는 잔잉잉 변호사. [글로벌 타임스 캡처]

"미혼 여성에게 난자 냉동을 허용하라"고 주장하는 잔잉잉 변호사. [글로벌 타임스 캡처]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최근 64명의 지린성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낸 20대 변호사가 있습니다. 잔 잉잉(29·여)인데요. “전국 병원에서 여성이 난자를 냉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린성이었을까요.
 
유일하게 결혼하지 않은 여성도 난자 냉동 시술을 통해 임신할 수 있도록 2002년 가이드라인을 만든 곳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타임스) 중국 내에서도 난자 냉동에 대한 입장에는 온도 차가 있는데 나름 전향적인(?) 의원들에게 법 개정에 나서 줄 것을 호소한 겁니다.  
 
그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 아이를 낳길 원하는 이들에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난자를 냉동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중국 유명 사회학자인 리인허 교수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난달 남방도시보와의 인터뷰에서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고 생육권(출산권)은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다. 둘을 분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중국의 사회학자 리인허 교수는 "결혼과 생육권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방도시보·웨이보 캡처]

중국의 사회학자 리인허 교수는 "결혼과 생육권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방도시보·웨이보 캡처]

사실 쉬징레이의 고백 이전까지만 해도 난자 냉동 시술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여성이 많았다는데요. 당국 규제에 불만을 느낀 일부 여성들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정자를 냉동 보관할 수 있는 남성과의 ‘성차별’이라며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암시장 우려와 시술상의 위험 등을 제한 이유로 들고 있는데요. 난자 냉동을 하려면 신분증, 결혼 증명서, 준생증(임신허가증) 등 세 가지 서류를 제출하고 공식적인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하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죠. 
 
 베이징서 LA까지 1만 킬로 ‘원정’
이 때문에 중국 여성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는 추세입니다. 원정도 불사하면서까지 난자 냉동에 적극적인 20~40대 여성이 꽤 된다고 하네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 한 병원에는 2016년에 중국인 250명이 다녀갔습니다. 비용이 만만치 않은 만큼 여유 있는 중산층 여성이 주를 이룬다고 하지요. 평균 나이는 39.5세였다고 합니다. 
 
이 같은 원정 행렬이 서구 언론에서는 신기하기만 한가 봅니다. 지난해 영국 BBC는 “중국인들이 베이징에서 로스앤젤레스(LA)까지 6000마일(약 1만㎞)이나 되는 거리의 여행을 한다”며 한 30대 여성의 체험기를 고스란히 영상으로 기록했습니다. 난자 채취를 위해 2주간 스스로 복부에 여러차례 주사를 놨다고 하네요.
중국 온라인 여행사 씨트립은 아예 관련 상품까지 팔고 있습니다. 미국 LA에서 일주일간 난자 냉동 시술과 관광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다는 식입니다. 가격은 23만 위안(약 3932만원)으로 어마어마합니다. 
 
러시아 모스크바로 가는 상품도 있네요. ‘15일에 9만8000 위안(약 1675만원). 러시아 최고 수준의 출산 센터에서 시술 진행. 성공률 높음.’
씨트립 홈페이지에 올라온 난자 보관 해외 여행 상품. [씨트립 홈페이지 캡처]

씨트립 홈페이지에 올라온 난자 보관 해외 여행 상품. [씨트립 홈페이지 캡처]

 한 30대 여성은 2016년 씨트립을 통해 LA에 다녀온 후기를 올렸습니다. 글의 시작이 인상적인데요. “33살, 나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바로 미국에 가서 난자 냉동을 하는 것.” 이 여성은 출발 전부터 원격으로 미국에 있는 의사에게 몸 상태를 점검받는 등 철저한 준비를 거쳤다고 소개합니다.  
 
세계 곳곳서 ‘열풍’…“임신 능력을 냉동하라”
 
난자 냉동은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요. 
 
미국에선 2012년 ‘실험적(experimental)’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난자 냉동 시술을 보편적 불임 치료법으로 인정했습니다. 
2년 뒤부터는 아예 애플과 페이스북 등 유명 정보기술(IT)기업이 최대 2만 달러(약 2158만원)까지 직원들의 난자 냉동 비용을 대겠다고 나섭니다. 평균 시술 비용의 두 배 수준이라고 당시 언론들은 전했습니다.
애플과 페이스북.

애플과 페이스북.

 유급 육아휴직이나 보육 시설 등의 지원을 늘리기보다 출산을 미루게끔 오히려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고 하네요.  
 
미국에서 난자 냉동을 시도한 여성은 2009년 475명에서 2015년 8000명까지 늘었다고 합니다. 마티니를 마시며 난자 냉동에 대한 정보를 마치 ‘레시피 교환하듯’ 공유하는 난자 냉동 파티까지 열린다고 하니 말 다 했죠. (2014년 뉴욕 고급 호텔에서 진행한 한 파티에는 수백 명의 전문직 여성이 참석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미국 뉴욕의 뉴호프출산센터에서 주최한 난자 냉동 파티.

미국 뉴욕의 뉴호프출산센터에서 주최한 난자 냉동 파티.

 일본에선 2015년 처음으로 오사카의 건강한 40대 여성이 냉동한 난자로 아이를 낳은 것으로 전해지는데요(재팬타임스).
 9000만 엔(약 9억원)가량의 돈을 들여 25~34살 여성의 시술 비용 80%를 대겠다고 나선 지방자치단체도 있습니다. 우라야스 시인데 초저출산이라는 절박한 위기상황에서 나온 겁니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가 삶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무슬림 세계에선 어떨까요.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아랍에미리트(UAE)에서는 지난해 최초로 미혼 여성 일부가 학업이나 커리어 등의 이유로 난자 냉동 시술을 받은 사연이 더 내셔널에 보도된 바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병원 26곳에서 4600개 가까운 난자를 냉동 보관 중이라고 하죠. (2016년, 보건복지부)
 
 “난자 냉동했어요” 셀럽들 눈길 
올리비아 문(왼쪽)과 휘트니 커밍스. [인스타그램 캡처]

올리비아 문(왼쪽)과 휘트니 커밍스. [인스타그램 캡처]

특히 최근에는 셀럽(유명인사)들이 자신의 난자 냉동 보관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서면서 열풍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영국 가수 리타 오라(28), 미국 배우 올리비아 문(38)과 코미디언 휘트니 커밍스(36) 등이 대표적이죠. 35살에 난자를 냉동했다는 올리비아 문은 “내 친구는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난자 나이가 50살로 나왔다”며 “모든 여성이 시술을 받아야 한다”고 밝혀 화제가 됐습니다. 
 
휘트니 커밍스는 시술 이후 자유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연애할 대상을 가능한 한 빨리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도 벗어났다고 하네요. 
 
한국에서는 지난해 일본 국적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친구인 가수 이지혜와 냉동 난자 시술을 받은 사연을 알렸습니다. 당시 보관된 난자를 보러 병원을 찾아 그가 남긴 말 한번 들어보실래요. “엄마가 왔다. 아기야 조금 더 자고 있어. 아빠 데려올게.” 
후지타 사유리 방송 장면. [EBS 캡처]

후지타 사유리 방송 장면. [EBS 캡처]

사회적 냉동(social freezing) 시대
 
전문 용어로 ‘난모세포 동결보존’이라 하는 난자 냉동은 통상 검사→난포 키우기→난자 채취→냉동 보관 등의 과정을 거칩니다.
 
얼리지 않은 신선한 상태의 난자는 체외로 배출되면 금방 죽지만, 동결 상태의 난자는 그 기능을 유지한 채 수년간 보존할 수 있다네요. 
 과거에만 해도 암·백혈병 등으로 방사선 치료를 앞둔 여성이 난자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난자를 얼려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평균 서른을 넘어야 결혼하는 만혼(晩婚) 시대가 도래하면서 난자 냉동은 늦깎이 출산에 따른 난임을 대비하려는 미혼 여성의 풍속도로 자리 잡았는데요. 적절한 짝이 없어서 혹은 커리어 등 때문에 당장은 출산 계획이 없지만 노산에 대비하려는 이유로 하는 난자 냉동을 전문가들은 ‘사회적 냉동(social freezing)’이라고 표현합니다. 
 
“난자 냉동은 생물학적인 유리 천장(biological glass ceiling)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세대의 피임약과 같다.” 타임지의 비유입니다. 
‘시간을 멈추게 할 신기술’이라고 현혹하는 업체들도 있네요. 
 
 ‘임신 100% 보장’ 맹신 말아야
 
저출산이 전 세계적 사회문제로 대두한 만큼 아이를 갖는 방식을 제도적으로 다양하게 인정하고, 비싼 시술 비용을 보험으로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냉동된 난자를 관리하는 모습. [로이터통신]

냉동된 난자를 관리하는 모습. [로이터통신]

 윤리적 고민도 뒤따르고 있습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등 건강상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난자를 냉동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단순히 라이프 스타일을 위해서라면 도덕적 관점에서 재고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기술이 발전하면서 냉동 난자를 이용한 임신 성공률이 크게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100%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조언도 있죠. 도박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고로 이 점에 대해선 학자마다 견해가 달라 “30대 초반에 난자를 냉동하면 임신율이 80~90%에 달한다”며 “건강한 20대 여성이 자연 임신할 확률(25%)보다 높다”는 주장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2015년 일본산부인과학회는 난소 출혈이나 감염 등 부작용을 이유로 “권장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4년 전 블룸버그 비지니스위크지 표지에 “난자를 냉동하고, 커리어를 자유롭게 하라.(Freeze your eggs, Free your career.)”란 문구와 함께 모델로 등장한 브리짓 애덤스의 경험담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브리짓 애덤스의 침실에 놓인 블룸버그 비지니스위크지 표지(왼쪽)와 그가 냉동 난자로 임신하기 위해 맞아야 했던 주사들. [워싱턴포스트(WP) 캡처]

브리짓 애덤스의 침실에 놓인 블룸버그 비지니스위크지 표지(왼쪽)와 그가 냉동 난자로 임신하기 위해 맞아야 했던 주사들. [워싱턴포스트(WP) 캡처]

그는 최근 워싱턴포스트(WP)에 “나쁜 결과에 대한 충고가 부족한 병원들이 많다. 매우 비양심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냉동 난자로 아이를 갖는 길은 절대 쉽지 않았다는 건데요. 결국 기증받은 난자로 지난해 임신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제임스 그리포 뉴욕대 랭곤 건강센터 박사는 더 센 경고를 날립니다.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출산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개념은 모두 소설이고 부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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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연 기자·이동규 인턴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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