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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새해의 비극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새해다. 국제 금값이 지난해 말의 상승세를 이어가며 껑충 올랐다. 미국 달러 약세가 지속하면서 금값이 새해 첫날부터 훌쩍 올랐다. 비트코인 가격도 급등세를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비트코인 이야기는 모든 이의 관심거리가 되어 버렸다. 

 
“비트코인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해 향후 흐름에 대한 관심이 지속할 전망입니다. 다양한 알트코인들의 등장에 앞서 비트코인은 가상화폐 시장에서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현재 가장 보편적인 결제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본 업체들이 비트코인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곧 비트코인을 오프라인 점포 26만 곳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실생활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가맹점이 알트코인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이 또한 증가하고 있습니다. 엇갈리는 시각도 있습니다. 부시 정부 시절 백악관 예산실장을 지낸 스톡맨의 말입니다.”

 
스톡맨은 비트코인의 끝은 재앙이라며 화폐가치가 없어 결국 거품이 꺼질 것이라고 전했다. 선도자의 가격 상승은 지속하고 있었다. 수많은 아류가 태어나 암호 화폐 시장을 주름잡던 비트코인의 힘은 상대적으로는 약해졌다. 전체 가상화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하긴 너무나도 많은 알트코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은 시소게임을 하며 오르락내리락을 하였다. 
 
그사이 리플과 이더리움이 시가총액 2위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리플은 해외 송금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암호화폐다. 이더리움은 계약의 조건을 문서로 하지 않고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계약을 이행하도록 만든 암호 화폐다. 그렇게 여러 암호 화폐가 생겼지만, 문제는 이러한 암호화폐가 지급수단의 성격과 주식의 성격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급수단의 성격보다는 주식의 성격에 더 관심을 가진다. 나는 분명히 인간의 탐욕을 간과했다. 비트코인을 돈세탁에 악용하던 범죄자들도 모네로 같은 다른 암호화폐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참 세상은 요지경이다.

 
“암호화 가상화폐의 수익성이나 전망에 대해 과대 홍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암호화폐를 통한 유사수신행위나 투자유도를 통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마음이 섬뜩하게 느껴진 지 오래다. 죄지은 자는 말이 없지 않은가. 사실 억울한 점도 많았다. 투명성과 신뢰성의 관점에서 비트코인 기술만큼 깨끗한 지불결제 시스템이 있던가? 소량의 화폐를 송금할 수 있는 착한 기술 이야기는 다 어디로 가고 돈 벌었다는 이야기만 나오는가? 나는 그런 자본주의가 너무 미웠다. 이제 비트코인에 ‘투기’란 단어가 들어가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투기는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는 행위다. 비슷한 단어들이 있다. 돈이나 재물을 걸고 하는 도박이다. 한 번의 시도로 큰 재물을 얻거나 크게 성공하려는 태도를 내 발명품에 부친다는 것은 정말 참기 어려운 모욕이었다. 비트코인은 한탕주의와도 친밀한 단어가 되고 있다. 광기, 투기, 도박, 한탕주의를 비트코인과 연계하는 무리로 내 마음은 병든 지 오래다.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에서 한발 물러나 다른 가상화폐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비트코인 가격은 계속 올랐습니다. 최근에는 페이팔 공동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의 큰손 투자자 피터 틸이 비트코인에 대거 투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는 페이스북, 링크드인 등 유명 IT 기업에 초기 투자해 큰 이익을 거둔 인물입니다. 제한된 채굴량과 점포 확대가 비트코인 불패 신화를 이어갈지 궁금합니다."

 
방송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내 귓전을 어지럽게 한다. 매스컴이 더 부채질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그런 소식에 초연해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그게 내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이었다. 암호화 가상화폐 가격의 상승과 하락은 그 어떤 기쁨도 슬픔도 주지는 않는다. 그냥 수많은 암호화 가상화폐 붐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죄책감만 느껴졌다. 나는 심리적으로 정상이 아닌 상태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새해가 오자 부모님 몰래 바람을 쐬러 여행을 떠났다. 멀지 않은 곳의 힐턴 헤드 아일랜드. 조용한 마을은 골프로 유명한 곳이다. 한 리조트에 여장을 푼 후 간단한 음식으로 요기했다. 박물관을 둘러본 후 바다를 보러 갔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들린 이곳은 늘 아름다웠다. 새들의 날갯짓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따뜻한 물로 저녁에 온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전거를 타고 맨발로 다소 차가운 바닷물 위를 거닐었다. 단란한 가족들 사이에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런 내가 싫고 미웠다. 배도 고프고 허기가 져서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들어가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20대로 보이는 두 남자가 대화한다.

 
“웰스파고증권이 그랬어. 비트코인이 사상 최대 버블붕괴가 될 수도 있다고. 예상치 못한 붕괴를 조심해야 한다고. 미친놈들. 암호화 가상화폐 시장은 지금 시작이잖아.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놈들 아니야. 우리 같은 젊은이가 돈을 어디서 벌겠어. 버블이 터지기 전에 뛰어내려야 하는데. 아무튼 아직은 아니야.”

 
“그렇지 버블은 금방 터지지는 않아. 상상 이상의 버블이 만들어질 거야. 올해 상승률이 작년보다는 못하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 사토시 나카모토는 누구일까. 궁금해. 나도 그처럼 부를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달려들 여자들이 한둘이겠어. 사토시는 침대에서 이 여자 저 여자 불러들이며 호의호식하겠지.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거야. 세계가 사토시에게 어떤 죄를 뒤집어씌울 거야. 국가전복음모죄. 염병할 정부. 자기네들이나 잘하라고 해. 요새 청년들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 좀 더 하라고 해.”

 
“하긴 정부 불신이 이런 가상화폐 투자에 사람들을 물들게 했어. 죄가 있다면 정부고 사토시는 피해자야. 사토시는 우리 같은 흙수저에게 이런 돈 벌 기회를 주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야. 그런데 언젠가는 돈을 잃는 사람이 생길 것은 분명해. 그리고 그 파장의 정도는 가늠하기 어렵지 않겠어. 버블의 크기가 클수록 파장의 크기는 깊어 질 건데. 그 버블이 터질 것은 아무도 모른다는 거지.”

 
“지금은 아니야.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얼마인데. 이자율을 올린다지만 경제 상황을 감안하여 올릴 거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 주식시장의 열기도 대단하잖아. 몇 년 갈지도 몰라. 그런데 누군가 올해 언제쯤에 주식시장 맛이 갈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 그게 비트코인 붕괴와 연결되어 찝찝하기는 하네.”

 
“아직은 아니야. 버블은 무섭게 천정으로 솟는 거야. 그때 버블을 경고했던 사람들을 무색하게 만들지. 사람들은 열광과 탐욕의 도가니에 이미 빠져들기 시작했어. 무서운 것은 버블은 무너질 때 무시무시하게 떨어지는 거지. 지금 누구는 6만 달러까지 간다고 하잖아. 그 옛날 드라마 시리즈 있잖아. 600만 달러의 사나이. 우리 세대가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없지만…. 뭐 그 정도는 되어야 버블이 아닐까? 그 전에 우리는 뛰어내릴 준비를 해야지. 낙하산 펴고 말이야.”

 
“하긴 이건 결국에 가서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봐. 세력들이 아직은 팔지는 않을 거야. 그 세력들이 우리 같은 일반인들을 호구로 보면서 유혹의 미끼를 계속 던질 수 있지. 세계 정부도 우왕좌왕하잖아. 비트코인은 민간이 만들고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건데 한 나라의 정부가 규제할 방법도 마땅하지 않잖아.”

 
“그런데 이런 걸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긴 해. 우리는 가진 자가 모두 해 먹는 사회구조, 열심히 일해 봐야 집 한 채 살 수 없는 사회구조, 사랑도 결혼도 단란한 가정도 꿈꾸기 어려운 사회구조… 뭐 이런 걸 정당화하잖아. 그런데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니?”

 
“맞는 소리 아니야. 우리 같은 젊은이들이 보기엔 이 사회는 거대한 장벽이야. 어쩌면 사토시가 우리에게 길을 열어 준거야. 불평등을 봐. 그게 우리가 만든 거니? 사토시는 평등한 사회를 이루려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을지 어떻게 아니. 암호화폐의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르지만 어떻게든 남을 거야.”

 
“무기력한 병적 사회구조가 투기, 도박, 한탕주의라는 병적 사회현상으로 치유될까. 또 다른 문제점은 없을까.”

 
“야. 남 걱정하지 말고 네 걱정이나 해. 학자금 융자 갚으려면 등골이 휜다. 미친 사회구조에서 미친 사회현상이 만들어지는 게 정상이지. 너는 당장은 변덕을 부리지 마. 비트코인이 지폐와 같은 가치를 보장하는 원천이 어디 있겠어. 다 팔면 제로지. 너 역시 소문을 계속 퍼트려. 얼마 벌었다고. 어차피 비트코인의 가치는 순전히 시장참여자들의 변덕에 달린 것이잖아. 그 변덕이 빨리 오면 우리는 폭망하는 거야.”

 
월가에서 느낀 것인데 미친 투기판에는 특별한 속성이 있다. 돈을 따거나 잃은 기억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불로 지진 도장으로 남아 돈을 딴 자나 잃은 자 모두를 떠돌게 한다. 집안에 투기와 도박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패가망신하는 건 익히 안다. 하물며 사회는 어떨까. 투기와 거리가 먼 집안에서 자란 내 존재가 어떻게 이렇게 엮이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내게 세상은 야속하게만 돌아갔다. 속이 갑자기 안 좋게 느껴졌다. 하긴 그런 일이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오래전 예약한 병원으로 갔다. 정밀 진단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보호자 분은 계신가요.”

 
“아니요. 그냥 말씀해주세요.”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망성이 없나요.”

 
“네. 현재로써는.”

 
위암 말기 환자로서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 있지 않았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처럼 내게 그런 시계가 있다면 좋겠다. 누구나 가끔 인생을 되돌리고 싶을 때가 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늙은 노인의 몸으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 저주를 받고 태어난 그는 곧바로 아버지에 의해 버려진다. 그런 그와 내가 대비되는데 내가 더 비참해 보였다. 사랑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영화 속 늙은 아이 벤자민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젊어진다. 영화 속에서 벤자민은 소녀 데이지와 평생 사랑하는 관계를 맺는다. 젊고 아름다웠던 데이지가 점점 나이 들어가는 데 반해, 점점 젊어지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 비록 데이지를 떠나지만, 벤자민은 평생 그녀를 사랑했다. 나와 아니타의 관계가 연상되었다. 아니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중년, 청년, 소년, 그리고 어린 아기가 되어 우유병을 빨게 되는 벤자민. 마침내 우리가 늙어 흙으로 돌아가듯, 그는 갓난아기의 몸으로 흙으로 돌아간다. 나는 이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바다에 비친 노을이 예쁘다. 나는 내 죽음의 가망성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는 것이니까.
 
※ 3월 30일 금요일 1시 27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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