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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성군 아니다 … 오늘 기준으로는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이영훈 지음, 백년동안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이영훈 지음, 백년동안

 
시대착오∙아나크로니즘(anachronism)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변화된 새로운 시대의 풍조에 낡고 뒤떨어진 생각이나 생활 방식으로 대처하는 일”이라고 나온다.  
 
한글판 브리태니커 사전에는 “고의적으로든 실수로든 시간적 관계를 무시하거나 곡해하는 것”이라고 나온다. 예컨대 영화 속 이순신 장군이 시계를 차고 있다면 그것은 시대착오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군주정에 민주공화정의 잣대를, 민주공화정에 군주정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 또한 시대착오다.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쓴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는 세종을 21세기 민주공화주의 시대의 롤모델로 삼으려는 일부 시각에 반대한다. 유교에 바탕을 둔 군주정을 기준으로 보면 세종은 성군 중에서도 최고의 성군이었다. 이를 저자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세종을 시원적 민주주의자처럼 우상화하려는 시도에는 무리가 따른다.  
 
조선의 제4대 왕, 세종대왕.

조선의 제4대 왕, 세종대왕.

이 책의 핵심은 2부 ‘세종과 노비제’, 3부 ‘세종과 기생제’, 4부 ‘세종과 사대주의’다. 저자는 “세종이 치세 30년간에 이룩한 업적은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이 되었다”라고 했다. 또한 “세종은 역사가 그에게 요구하는 책무를 훌륭하게 감당하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시대착오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노비제와 기생제, 그리고 사대주의 국가체제를 정비한 사실은 깡그리 생략하고, 21세기의 리더십을 세종에게서 찾으려는 환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다음과 같이 반응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친일파인 이영훈 교수는 우리 역사의 자랑인 세종대왕마저도 깎아 내리려고 하는가.’  
 
자신을 둘러싼 ‘친일파 논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한국의 근대문명은 일제가 이 땅을 지배한 기간에 제도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로 사람들은 나를 친일파 또는 식민지근대화론이라고 손가락질하였다. [중략] 그 모든 매도에도 불구하는 나는 내가 딛고 있는 실증의 토대가 허물어지는 아픔을 느낀 적이 없다. 나는 한국 근대문명의 역사적 경로를 달리 설명함에 성공한 어느 연구자도 알지 못한다.”
 
이 책에 담긴 주장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그 논증의 구조를 따라가는 게 쉬운 것만은 아니다. 문맥을 무시하고 일부 문장만 떼어내어 인용한다면 비생산적이고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책이다.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는 총 12권으로 기획된 ‘이영훈 교수의 환상의 나라’의 첫 권이다. 저자는 대한민국을 둘러싼 환상이 “심지어 거짓말로 판명된다”고 인식한다. 저자는 환상을 극복하기 전에는 대한민국이 진일보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이 시리즈를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환상은 인간들을 큰 신뢰와 협동으로 이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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