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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 왜 베트남에 갔나…'도이모이'식 북한 개방 모델 염두?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2년 차 첫 순방국은 베트남이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ㆍ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긴박한 상황에 베트남을 방문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베트남을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 하노이 주석궁 대정원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쩐 다이 꽝 국가주석과 함께 베트남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베트남을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 하노이 주석궁 대정원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쩐 다이 꽝 국가주석과 함께 베트남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20년, 일본을 넘는 교역국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하노이 전경. 곳곳에서 고층건물이 신축되고 있다. 하노이=강태화 기자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하노이 전경. 곳곳에서 고층건물이 신축되고 있다. 하노이=강태화 기자

 
문 대통령은 이번 순방 내내 “베트남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신남방정책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2020년까지 양국 간의 교역액을 1000억 달러로 높이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베트남은 이미 지난해 기준으로 639억 달러(수출 477억ㆍ수입 162억)의 교역 규모를보이는 한국의 4대 교역국이다. 머잖은 장래에 중국에 이은 2대 교역국이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다.
 
전쟁 이후 꺼내 든 ‘도이모이’
 
73년 닉 우트의 퓰리처상 수상작 ‘베트남-전쟁의 테러’.

73년 닉 우트의 퓰리처상 수상작 ‘베트남-전쟁의 테러’.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경제 제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오랫동안 베트남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6년 베트남 공산당은 제6차 대회에서 개혁과 개방을 정책의 슬로건으로 앞세운 ‘도이 모이’를 제시했다. 베트남어로 ‘변경한다’는 뜻의 도이(doi)와 ‘새롭게’ 라는 의미의 모이(moi)가 합쳐진 용어로 공산당 일당 비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사회주의적 경제발전을 지향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외국 자본은 베트남에 투자하지 않았다. 미국과의 외교가 단절된 상태에서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는 나라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자 베트남은 1992년 개정 헌법에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1995년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뤘다. 그러면서 베트남의 무역액은 급증하기 시작했다.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기록한 1063억 달러의 무역액은 경제 제재 이전 시기보다 20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대우호텔에서 바라본 롯데호텔. 하노이=강태화 기자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대우호텔에서 바라본 롯데호텔. 하노이=강태화 기자

 
현재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미국과 가장 협력적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해 6.8%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는 등 6%가 넘는 급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북ㆍ미 경제협력과 관계 정상화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와 북ㆍ미 관계의 정상화, 남북 관계의 발전, 북ㆍ미 간 또는 남ㆍ북ㆍ미 간 경제 협력 등이 될 것”이라며 이번 회담의 궁극적 목표를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이 23일(현지시간) 베트남 호치민 거소를 둘러보고 있다. 2018.03.23.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이 23일(현지시간) 베트남 호치민 거소를 둘러보고 있다. 2018.03.23.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은 고립돼 있다. 핵을 개발하면서 미국뿐 아니라 우방인 중국까지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의 관계 정상화와 이보다 더 나아간 경제 협력을 언급했다. 이는 과거 베트남이 도이모이 정책을 통해 ‘동남아의 용’으로 부상해가는 과정과 동일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3일 “문 대통령의 언급은 북ㆍ미 정상회담이 잘 됐을 경우에도 이후 가야 할 길이 아주 멀기 때문에 남ㆍ북ㆍ미가 협의해 진행할 것이 많다는 점을 밝힌 것”이라며 “이후 미국의 대북 제재가 해결되고 미국 자본이 북한에 들어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역사 속을 걸어가는 신의 옷자락’을 단단히 잡은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을 매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3각 대화가 진행된다. [중앙포토]

‘역사 속을 걸어가는 신의 옷자락’을 단단히 잡은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을 매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3각 대화가 진행된다. [중앙포토]

 
북한이 시장을 개방하고, 한국의 중재로 북ㆍ미 관계 정상화를 이뤄낸다면 과거 미국과 전쟁을 치렀던 베트남이 동남아에서 미국과 가장 협력적 외교 관계를 맺게 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물론 대전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하노이 전경. 곳곳에서 고층건물이 신축되고 있다. 하노이=강태화 기자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하노이 전경. 곳곳에서 고층건물이 신축되고 있다. 하노이=강태화 기자

 
 
남ㆍ북ㆍ미 정상회담과 베트남 모델
 
베트남 U-23 축구 대표팀의 카 퍼레이드에 등장한 박항서 감독 격려 피켓과 태극기. 베트남 사람들은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처음 봤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 유튜브 캡처]

베트남 U-23 축구 대표팀의 카 퍼레이드에 등장한 박항서 감독 격려 피켓과 태극기. 베트남 사람들은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처음 봤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 유튜브 캡처]

 
지난 2007년 북한의 김정일은 방북한 농득마인 당시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난 뒤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의 성취를 높이 평가한다. 베트남의 귀중한 경험을 거울로 삼기 위해 베트남 측의 다방 초청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김정일의 베트남 방문을 실제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 서기장의 방북 열흘 만에 김정일은 김영일 내각 총리를 4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에 파견했다. 베트남을 방문한 북한 인사들은 베트남 기획투자부를 방문해 도이모이를 배우고 돌아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베트남 하노이의 '분짜 흐엉 리엔' 식당에서 셰프 앤서니 부르댕과 식 사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 북부 대표 음식인 쌀국수 '분짜'(2100원)와 스프링롤, 베트남 맥주를 시켰다. 7150원짜리 2인분 세트 식사였다. 2000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베트남전 당시 남베트남 수도 호찌민의 식당을 찾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북베트남 수도이자 현 수도인 하노이의 식당을 방문했다.  [사진제공=앤서니 부르댕 인스타그램]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베트남 하노이의 '분짜 흐엉 리엔' 식당에서 셰프 앤서니 부르댕과 식 사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 북부 대표 음식인 쌀국수 '분짜'(2100원)와 스프링롤, 베트남 맥주를 시켰다. 7150원짜리 2인분 세트 식사였다. 2000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베트남전 당시 남베트남 수도 호찌민의 식당을 찾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북베트남 수도이자 현 수도인 하노이의 식당을 방문했다. [사진제공=앤서니 부르댕 인스타그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스위스 유학을 경험했던 김정은의 신년사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돼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핵화 문제만 해결되면 북한을 베트남식 개방으로 이끄는 게 불가능한 구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베트남 하노이=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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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