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가해자는 악하고 피해자는 선한가

미국 골든 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등 세계 주요 영화 시상식에서 호평받았던 수상작들이 국내 박스오피스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시상식의 성적과 박스오피스 순위가 달랐던, 이른바 ‘예술 영화’라는 꼬리표를 뗀 영화가 늘어난 것이다. 메시지와 재미가 있으면서, 캐릭터의 힘이 괄괄한 것이 공통점이다. 영화마다 입체적인 캐릭터가 살아 숨쉰다. 누적 관객 수 47만 명을 돌파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샐리 호킨스(엘라이자 에스포지토), ‘더 포스트’의 메릴 스트립(캐서린 그레이엄),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브루클린 프린스(무니)를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쓰리 빌보드’의 프란시스 맥도맨드(밀드레드)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의 각본도 쓴 마틴 맥도나 감독이 “‘밀드레드’ 캐릭터는 프란시스를 생각하며 썼다. 다른 배우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유머와 비극, 노동자 감성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여배우는 그녀뿐이었다”고 밝힌 대로, 맥도맨드는 거친 고목 같은 어머니를 마치 자신인냥 소화해낸다.  
 
살해당한 딸의 어머니 밀드레드는 전사(戰士)가 된다. 딸이 죽은지 7개월째, 그 죽음을 잊어가는 세상을 향해 선전포고를 날리면서다. 마을 외곽,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 위에 붉은 메시지 세 개를 남긴다. ‘강간당하며 죽었다’ ‘아직도 범인을 못 잡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윌러비(경찰서장)?’.  
 
대형 광고판 세 개는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딸의 죽음과 함께 화제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다. 그런데 이를 지배하는 감정은 연민이 아니었다. 분노였다. 전사가 되어 분노를 내뿜는 어머니를 향해 세상은 오히려 분노한다.  
 
멈출 줄 모르는 이 분노의 전투에 숨이 막힌다. 밀드레드의 싸움 상대는 췌장암 투병 중인 경찰서장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환자에게 “무능력하다”고 비난하며 싸우는 어머니라니. 불편한 상황이다. 세상은 더는 밀드레드를 피해자로 보지 않는다. 경찰서장의 가족들에게, 그를 사랑하는 동네 사람들에게 밀드레드는 또 다른 가해자가 된다.  
 
어디 그뿐인가. 밀드레드는 당할수록 똑같이 갚는다. 더 처절하게 응징한다. 화재에는 화염병으로, 차로 투척 되는 음료 캔에는 폭력으로, 받은 것의 몇 배로 대응한다. 이 일로 아들이 학교에서 곤란한 일을 겪더라도, 어머니는 멈추지 않는다. 딸의 죽음을 놓고, 무법자처럼 날뛰는 이 어머니를 어떻게 볼 것인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극중 대사처럼, 분명한 것은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을 뿐”이다.  
 
이 영화의 힘은 선ㆍ악을 규정할 수 없는 캐릭터가 밀드레드를 포함해 적어도 셋이나 된다는 데 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골든 글로브·영국 아카데미 등 주요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휩쓸며 극찬 받은대로 캐릭터의 힘이 세다. ‘쓰리 빌보드’가 아니라, ‘쓰리 피플’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다. 살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무능한 경찰 서장 월러비(우디 해럴슨)는 아내에게 “만일 천국이 없다면 당신과 있었던 이곳이 천국이었어”라고 편지 쓰는 다정한 남편이다. 밀드레드가 타깃한 적으로서, 매사 법보다 주먹을 앞세우는 인종차별주의자 경찰 딕슨(샘 록웰)도 끝내 희생정신을 발휘하며 범인을 쫓기도 한다. 숨가쁜 캐릭터의 열전이다.  
 
쫀쫀한 스토리 전개로 러닝타임 115분이 훌쩍 지나간다. 그렇지만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은 없다. 따발총 같은 분노의 감정에 숨이 막힐 때쯤 영화는 끝난다. 분노를 사그라지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어렴풋한 메시지를 남기지만, 뭔가 아쉽다. ‘끝내기용 메시지’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쓰리 빌보드’가 보여주는 세상, 던지는 질문은 만만치 않다. 타고난 악은 있는가, 혹은 선은 있는가. 쉽사리 답하기 어려운 논제다.
 
감독 : 마틴 맥도나
주연 : 프란시스 맥도맨드
등급 : 15세관람가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