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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마지막 콘서트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잭슨 빌 에지 콘서트홀. 혼자서 잭슨빌이 낳은 레너드 스키너드의 무대를 재해석하는 밴드들의 연주를 지켜보고 있다. 레너드 스키너드. 1977년 비행기 사고로 리드 보컬 로니 밴 잰트(Ronnie Van Zant)가 사망하여 허무하게 음악을 그만둔 그룹. 아버지의 향수가 묻어나는 그룹이다. 아버지는 1987년에 레너드 스키너드가 재결성되어 활동한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고 했다. 나와 나이 차이가 너무 나는 그들에게 순전히 반한 것은 아버지 덕이다. 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들의 음악을 감상하곤 했다. ‘화요일이 지나갔네(Tuesday's Gone)’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다. 그들의 음악이 지니고 있는 힘과 서정성은 나를 아련한 그리움으로 데려간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이들의 노래를 틀며 말씀하셨다.

 
“참 슬프다, 슬프다. 감정을 뒤집는 아름다움이 빗방울에 젖고 있다. 나와 네 할아버지의 관계가 복원되는 느낌이야. 이들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정화된다. 그리고 때로 시적인 순간이, 황홀한 아름다움이, 순식간에 다가와서 몸과 마음을 찌른 후, 도마뱀처럼 달아나버리는 것 같아. 아들아 조용히 음미하며 들어 보렴. 음악이 흐르는 것을 마음속에서 느껴봐.”

 
아버지 말씀을 기억하는데 당신이 즐겨듣던 ‘자유로운 새(Free Bird)’가 연주되고 있었다. 가슴 한가운데서 뭉클 한 것이 타올랐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전해주는 따스한 말씀 사이에서 번뜩이는 기타 선율. 남부 지방 특유가 느껴지는 록의 서사시. 명곡 그 자체인 ‘자유로운 새’가 기타 연주로 폭발하려고 했다. 전율, 전율 다시 전율하는 감동이 이어졌다. 사랑하는 여인 곁을 새처럼 떠나가야 하는 남자의 아픈 마음이 기타 연주로, 온몸의 날갯짓으로 표현된 듯하다. 노래가 비상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런 가운데 내 현실이 부러진 날개를 지닌 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신문에서는 내가 세계 갑부이고 내 재산이 애플의 시가총액을 따라잡을 날이 머지않다고 보도한다. 그런 소리가 별로 반갑지 않다. 총이 나를 겨누고 있다고 느껴졌다. 매스컴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의 폐부를 찔렀다. 세계 여러 나라 정부의 총부리가 나를 겨눈다고 느꼈다. 정부의 고유한 권한을 훔치려 한 나쁜 악인으로 나를 간주하는 듯하다. 나는 세계 정부의 두통거리로 전락했다.

 
“너는 정부에서 돈을 훔쳤어. 신뢰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사기를 쳤어. 물론 네가 그런 세상을 바란 게 아니라 해도 미필적 고의는 있을 수 있지. 세상을 향해 지은 죄의 대가를 충분히 받아야 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콘서트홀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반항했다.

 
“나는 프로메테우스이다. 그 이름은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그 어떤 신보다도 인간을 사랑한 신이다. 나는 대장간에서 불을 훔쳐 속이 빈 풀 속에 불씨를 넣었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불을 전해주고 싶었다. 내 뜻과 무관하게 탐욕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성난 제우스는 나를 코카서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었다. 나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가시덤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친 죄로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힌다. 나는 불사신이었기에 밤이 되면 간이 다시 회복된다.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된다. 나는 자유로운 새가 되고 싶다.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

 
그렇게 절규했다. 콘서트홀에서 스키너드의 노래를 듣는 감회는 새로웠다. ‘자유로운 새’를 잭슨빌의 한 대학생이 발라드풍으로 변주하여 솔로로 노래한다. 내 눈에 이슬이 고인다. 감미로운 음악이 감정선을 건드렸다.

 
“불을 인간들에게 전해주면서 인류의 문명은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나의 동기는 선하였습니다. 이제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날아가고 싶습니다. 나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독백하는 나의 소리 뒤로 아름다운 음악은 계속되었다. 나는 더욱 흥분하였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 하나뿐인 아들아, 이리 와서 앉아 봐라. 내가 하는 말을 새겨들어야 해 그러면 네가 햇빛 찬란한 날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줄 거야. 여유를 가지고, 급하게 삶을 살려 하지 마라. 시련은 다가왔다가 곧 지나기 마련이니까. 여자 친구도 사귀고 사랑도 해 보아라 그리고 저 위에서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 소박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 자신이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
 
그 노랫소리를 듣는데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내게 늘 그런 삶을 살아가라고 호소하셨다. 세상에서 평범한 삶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 죄송해요. 나도 보통사람처럼 어둠에서 나와 햇빛을 사냥하러 가고 싶어요. 아니타도 보고 싶고요. 그녀가 말했어요.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다고요. 이름은 벤자민으로 지었다고요. 어머니에게 그런 손주를 안겨드리고 싶었어요.”

 
노랫소리가 계속 울린다. ‘단순한 삶’의 미덕을 노래하는 가사에 내 복잡한 삶이 대비되어 너무 힘들어 쓰러질 것 같다.

 
“수수하고 검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들아, 할 수 있다면 날 위해 그렇게 해 주지 않으련? 부자가 되기 위해 돈이나 추구하는 그런 욕심은 버려야 해. 필요한 것은 모두 마음속에 들어 있단다. 네가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어. 얘야,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만족하는 삶을 사는 거란다.”

 
나는 속죄하는 기분이 들었다. 속으로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저는 틀린 인간이에요. 할 수만 있으면 시간을 거꾸로 돌려 옥턴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요. 린다에게도 용서를 빌고요. 철부지 불장난도 그만할 걸 그랬어요. 그게 그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될 줄은 몰랐어요. 어머니. 그런 저를 당신은 사랑하시나요?”

 
노랫소리가 들린다.

 
“소박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 자신이 사랑하고 이해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 수수하고 검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들아, 할 수 있다면 날 위해 그렇게 해 주지 않겠니?“
 
“어머니, 왜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하세요. 저는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복잡한 것이 싫어요. 그런데 세상은 너무 복잡해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인간들은 복잡해요. 나를 가만히 놓아주세요. 어머니 저를 믿어 주세요.”

 
나의 노래가 들렸나.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너 자신이 누군지 발견할 거야. 그 무엇보다 너 자신의 마음에 따라 살아. 그리고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단다.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거야. 소박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 수수하고 검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들아, 할 수 있다면 날 위해 그렇게 해 주지 않겠니.”

 
노래가 끝난 후 나는 계속 앉아 있었다. 무대 위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아니타였다.

 
“빌, 언젠가 이 말을 꼭 들려주고 싶었어. 당신은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보였어요. 새장을 벗어나고 싶다고요? 그러려면 당신의 욕망을 비웠어야 했어요. 진정으로 날고 싶다면… 다 버리세요. 버리면 자유로워져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세요. 부를 쫓지 않는데 검프에게 부와 명성이 오잖아요. 새의 깃털은 저 멀리 있지 않아요, 당신 곁에 있는 것이에요. 진정한 자유를 얻고 싶다면 돈독한 유대관계를 가져야지요.”

 
“아니타.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 믿어줘. 내가 지금이라도 당신 곁에 간다면 당신은 나를 받아들일 수 있어?”

 
“나는 순수한 남성의 단순함이 좋아요. 복잡한 세계를 가진 사람은 싫어요. 당신은 세상을 복잡하게 만들었어요. 마음을 비우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아니타. 그건 아니야. 그건 오해야. 나의 의도를 바로 알아줘.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미안해, 사랑한다는 것은 진실이었어,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복잡한 상품을 판 죄는 충분히 받았어. 속죄하고 싶었어. 정부라는 감옥에 갇힌 많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어. 훨훨 날아가는 새들처럼 말이야. 그게 내 진심이었어.”

 
아니타는 손을 흔들며 ‘노’를 외치며 사라진다. 나는 그녀를 따라 무대 위를 여기저기 헤맨다. 얼마나 그녀를 찾았는지 모른다. 그녀의 숨소리를 생각하며 무대 위에서 관객이 놀랄만한 소리로 외쳐댔다.

 
“아니타. 돌아와 줘. 많은 세월이 흘렀어.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사랑에도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수 있다지만 너를 향한 내 마음은 늘 한 방향이었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 그게 사랑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겠지만. 나는 사랑이란 단어를 초월하여 너를 사랑했어. 내 진심을 알아줬으면 해.”

 
무대는 숨죽인 듯 조용했다. 모두가 사라진 무대에서 나는 조용히 흐느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니타도 무대에서 사라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음악이 없다면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죽을 것이라고 하는데. 모든 이가 떠난 자리에 나 혼자 남겨져 있었다. 음악은 사라지고 나도 사라진다. 무대에는 적막감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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