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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보유는 반세기 마라톤 … 악마는 정상회담 뒤에 있다

[오영환의 외교노트] 남·북·미 ‘핵 담판’ 성공의 조건 
2000년 말 방북을 추진하다 포기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앞줄 왼쪽)이 2009년 8월 납북된 미 여기자 2명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0년 말 방북을 추진하다 포기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앞줄 왼쪽)이 2009년 8월 납북된 미 여기자 2명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핵 개발은 반세기의 마라톤이다. 1960년대 이래 김일성 3대(代)의 핵 물신(物神) 숭배가 녹아 있다.
 
김일성은 평화의 핵(원자력)과 무기의 핵 가운데 후자를 택했다. 그러곤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 주기(週期)를 완성했다. 냉전 시기 옛 소련의 협력이 한 모태가 됐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직전 미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이 12㎏의 플루토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다(미 군축협회). 핵무기 약 2기 분량이다. 김정일은 고농축 우라늄(HEU) 핵무기 개발의 길을 열었다. 파키스탄의 핵 개발 대부 압둘 카디르 칸 박사와의 커넥션을 통해서였다. 미사일 기술을 넘기고 칸의 HEU 생산 원심분리기 기술을 받았다. 영변의 플루토늄 시설은 가동 여부가 위성에 포착되지만, 농축 시설은 공개하지 않는 한 찾기 힘들다. ‘스텔스’ 시설이다.
 
 
빨치산 게릴라 전법으로 핵 보유 한길
 
2000년 10월 방북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김정일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 [중앙포토]

2000년 10월 방북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김정일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 [중앙포토]

김정은 시기엔 핵·미사일 양면에서 개발의 속도가 붙었다. 둘 다 내리막을 구르는 눈덩이 모양새가 됐다. 수소탄 실험이 이뤄졌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핵탄두가 소형화·경량화·다종화됐다는 북한 주장은 허언이 아닐지 모른다. 북한은 반세기 동안 국가 역량을 핵·미사일 개발에 총동원한 병영 국가다. 핵은 북한에 그들식 표현대로 ‘보검’이다. 백두 혈통 체제 보장과 안보 차원에서 그렇다. 핵 보유는 남북의 경제력 격차, 한·미 동맹 체제에서 군사적 균형을 이루려는 전략적 결단이다.  
 
동시에 핵은 국제사회 제재를 안고 살게 한 북한의 근본 모순이다. 제재는 주민을 곤경에 빠뜨렸고, 지배층의 돈지갑을 비우게 했다. 무역과 시장이 쪼그라들면서 역습을 시작했다. 외교가 북한의 생명선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북한은 때로는 기만하고,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때론 허풍을 떨고 실질적 위협을 하면서 핵 보유의 한길을 걸어왔다. 여기엔 북한 정권의 원점인 빨치산 활동, 게릴라 전법의 DNA가 짙게 투영돼 있다.
 
시침을 2004년으로 돌려보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1년 만이다. 부시의 선과 악의 이분법적 세계관과 일방주의는 북한에 공미(恐美) 심리를 불러일으켰다. 김정일은 2003년 3월 부시의 이라크 개전 전후 49일간 잠적했다. 북한은 정공법을 택했다. 2004년 1월 미국 핵 물리학자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 등 5명을 영변 핵시설로 초청했다. 헤커는 인류 최초로 핵폭탄을 제조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본산인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소장 출신이다.  
 
북한은 헤커에게 핵 시설을 둘러보게 하고, 유리병 속의 플루토늄을 보여주었다. 그 직후 헤커는 북한 외무성 김계관 부상과 이근 북미국장을 만났다. 그들은 “평양은 핵 억제력을 가졌다”며 이번 방문이 북한의 핵 억제력 보유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는지 물었다. 헤커는 일침을 가했다. “핵 억제(Nuclear Deterrence)란 말은 거의 동등하게 핵 무장한 과거 미·소 간에 작동한 것이다. 당신들이 말하는 핵 억제력 개념은 미·북 간에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했다. 김계관은 역효과를 걱정하기도 했다. “당신이 미국에 돌아가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하면 미 정부가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는가” “우리는 미 정부가 당신이 내린 결론을 대북 공격의 구실로 이용하는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당시의 북핵 능력은 지금과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핵을 방패로 삼는 북한 전략은 한결같다. 김계관 발언은 미국의 강성 정권에 대한 북한의 불안을 상징한다. 그해 북한군은 ‘혁명의 수뇌부’ 사수를 강조하는 교재인 학습제강을 발간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북한의 치고 빠지는 외교는 이라크전 전후로 두드러졌다. 북한은 2002년 10월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 차관보에게 HEU 계획을 시인했다가 나중에 발뺌했다. 이듬해 8월 1차 6자회담에서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가 총적(총체적) 목표다. 농축 우라늄에 의한 비밀 핵 계획이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 4개월 전 북·미·중 3자 회담에서 이근은 켈리에게 핵을 보유했다고 협박했다. 일종의 교란 작전이었다. 북한이 1990년대 영변 재처리시설 일대에 나무를 심어 은폐한 것과 닮은 구석이 없지 않다. 북한은 2010년 11월 헤커 박사에게 처음으로 영변의 농축 우라늄 시설을 공개했다. 컴퓨터 통제의 초현대식 제어실은 헤커를 놀라게 했다. 국제사회는 속았다. 마라톤 와중의 갈지(之)자 행보가 레이스 포기를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2003년 이래 6자회담은 결과적으로 북한에 시간을 벌게 해준 보호막이었다.
 
북한은 핵 개발이 진전되면서 비핵화 조건과 핵 독트린을 정교화했다. 1차 6자회담에선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포기를 핵 포기의 전제로 삼았다. 구체적으론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들었다. 이 부분은 미완(未完)의 북핵 폐기와 평화 로드맵인 2005년의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서 구체화했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 계획 포기를 공약하고, 미국은 한반도 핵무기 부재와 대북 불가침 의사를 확인했다.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은 하나의 분수령이다. 북한은 동북아에서 핵 불균형 상태가 종식됐다고 자체 평가했다. 자신감의 산물이다. 이후 핵 정책도 가다듬었다. 이듬해 4월 외무성 비망록은 비핵화 실현에는 신뢰 조성이 필요하며, 그 하나로 평화협정 체결을 들었다. 핵무기를 한반도와 세계의 비핵화 실현 때까지 보유하겠다고도 했다. 이 부분은 핵보유국 관련 법령(2014년)에 그대로 들어갔다.
 
 
미군 철수 등 비핵화 5가지 조건 제시
 
김정은은 2013년 3월 경제·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했다. 1962년 김일성의 경제·국방 병진 노선의 현대판이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 실패가 병진 노선 부활에 한몫했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는 지금도 이 노선과의 싸움이다. 2016년 7월 북한은 비핵화 입장을 집대성했다. 핵심은 세 가지다.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 ▶핵 억제력 구축은 한반도의 평화체제와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 실현을 위한 선택 ▶한반도 비핵화에 남 핵 폐기와 남한 주변의 비핵화 포함이다. 그러면서 비핵화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①남한 내 미국의 모든 핵무기 공개 ②남한 내 모든 핵무기·기지 철폐와 검증 ③한반도와 주변 전개 미국 핵 타격 수단의 불반입 보장 ④대북 핵 불사용 확약 ⑤미군 철수 선포가 그것이다.
 
 
마지막 단계 검증만 10년 이상 걸려
 
김정은이 지난 5일 남한 특사단에 밝힌 비핵화 입장은 이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한다. 비핵화 조건의 하나로 내세운 군사적 위협 해소는 이 다섯 개 조건과 큰 차이가 없을 듯하다. 다른 하나의 조건인 체제 안전 보장은 미국의 대북 불가침 의사 확인과 한반도 평화협정일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지금 북·미 정상회담 성사 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을 비핵화 의지와 조건의 수위를 놓고 장고(長考)할지도 모른다. 세부 내용을 후속 실무 협상으로 넘기면 일단 성공이다. 북한의 핵 협상 상무조(태스크포스)는 그 분야의 빠꼼이들이고,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협상·비확산 담당은 거의 공석이다. 치밀한 로드맵 없는 정치적 타결은 후유증을 남긴다. 악마는 정상회담 후의 후속 협상에 있다. 북·미가 비핵화 원칙과 틀에 합의해도 마지막 단계인 핵 폐기 검증은 10년 넘게 걸릴 수도 있다. 기존의 북핵 합의는 번번이 검증의 벽에 걸렸다. 비핵화 문제는 단판에 승부가 나는 복싱이나 격투기가 아니다.  
 
헤커 박사는 8일 “워싱턴과 평양의 대화 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위기 해결에는 긴 시간과 지루한 협상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인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미 과학자회보). 지난해 11월 김정은의 핵 무력 완성 선언은 반세기 마라톤에서 하나의 분기점이다. 현재의 평화 공세는 핵보유국 지위에서 체제 보장과 안보의 새 판을 짜려는 시도다. 우리는 또 다른 마라톤의 출발선에 선 북한을 마주하고 있다.
 
북한 핵 정책·교리 흐름도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정부 성명, “핵무기를 만들 의사도 없으며, 현 단계에서 우리의 핵 활동은 평화 목적에 국한”
2004년 7월 외무성 대변인 담화, “리비아식 선 핵 포기 제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2005년 2월 외무성 성명 통해 핵 보유 선언. “핵무기고를 늘리기 위한 대책 취할 것”
2006년 10월 외무성 성명, “우리의 최종 목표는 북·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모든 핵 위협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비핵화”
2009년 1월 외무성 대변인,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없이는 살아갈 수 있어도 핵 억제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2010년 4월 외무성 비망록(조선반도와 핵). “핵 무력의 사명은 조선반도와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침략과 공격을 억제·격퇴”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경제·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 채택
2014년 4월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 데 대하여’ 법령 채택. “핵무기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에 대처한 정당한 방위 수단”
2016년 5월 노동당 7차 당 대회. “핵 강국의 지위에 당당히 올라선 만큼 그에 맞게 대외 관계 발전시켜 나갈 것”
2016년 7월 정부 대변인 성명,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 “이 비핵화는 한반도 전역의 비핵화. 여기에는 남 핵 폐기와 남한 주변의 비핵화 포함”
2017년 3월 정부 비망록, “핵 무력은 제국주의가 남아 있고 핵 위협이 존재하는 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민족의 생명이며, 통일 조선의 국보”
 
오영환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논설위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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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