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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작가의 질문, 그대는 그대를 아는가

책 속으로
스웨덴 장화

스웨덴 장화

스웨덴 장화
헤닝 만켈 지음
이수연 옮김, 뮤진트리
 
소설 따위는 왜 읽는 거냐는 질문에 대한 유력한 변명은 잠깐이나마 남의 삶을 대신 살 수 있다는 거다. 읽는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처지를 완전히 망각한 채 타인의 영혼 깊숙한 곳에 발을 들이게 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아도 될 것 같은 장편소설이다. 애니메이션으로 치면 실사 애니메이션, 지금 어딘가에 살아 있는 사람들의 다큐를 본 듯한 기분이다.
 
소설의 소재나 주제는 새로울 게 없다. 한국에서는 저평가돼 있는 저자 헤닝 만켈(1948~2015)은 세계적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은 탐정소설 작가답게, 스웨덴 다도해에서 벌어지는 연쇄 화재사건의 비밀을 긴장감 넘치게 추적한다. 핵심 메시지는 인간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쯤 된다. 만켈은 “인생은 복잡하다. 그런 인생을 제대로 드러내는 방법은 한 개인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는 물론 그 사람과 세상과의 관계 역시 복잡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그런 세계관은 소설의 다음 문장에 집약돼 있다.
 
“얀손은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까? 그런데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한 걸까?”(603쪽)
 
주인공 프레드리크 벨린의 독백이다. 상대역인 얀손과 시종일관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데, 자기 안의 알 수 없는 심연, 얀손의 심연을 싸잡아 얘기하는 대목이다.
 
인기 탐정소설 작가였던 스웨덴의 헤닝 만켈. 장편 스웨덴 장화가 최근 출간됐다. [사진 뮤진트리]

인기 탐정소설 작가였던 스웨덴의 헤닝 만켈. 장편 스웨덴 장화가 최근 출간됐다. [사진 뮤진트리]

똑같은 재료를 사용한 엇비슷한 메뉴인데도 풍미가 다르다면 역시 요리사의 솜씨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주방 상황도 물론 고려 요인이다. 만켈이 암 발병 2년 만에 2015년 숨졌을 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부고 기사는 그가 “특출나게 왕성한(extraordinarily prolific)” 작가였다고 썼다. 한 해에 소설책을 세 권 출간한 적이 있을 정도였고, 대부분 ‘발란더 형사’ 시리즈의 성과로 보이지만, 평생 소설책을 4000만 부나 팔아치웠다. 좀 밋밋한 제목인 스웨덴 장화는 만켈의 마지막 소설이다. 결국 암과 싸우게 된 자신의 인생을 무르익은 장르소설 감각으로 반죽한 말년의 ‘순문학’이다.
 
70세인 벨린은 실패한 외과의사다. 여성 환자의 엉뚱한 팔을 자르는 끔찍한 의료사고를 저지른 다음, 번듯한 경력만큼이나 고귀한 자존심에 타격을 입고 조부모가 물려준 고향 섬의 옛집으로 도망치듯 돌아와 산다. 소설은 연쇄 화재사건의 첫 번째 피해자인 그가 1년 전 사건 당시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현재 시점에 이르는 형식이다. 벨린의 건강은 문제없다는 설정이지만 투병 중인 만켈은 소설의 인물에 자신의 실존적인 고민을 작심한 듯 털어놓는다.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죽음과 노화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에 관한 착잡한 상념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벨린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노화를 슬퍼하기만 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다. 아무리 나이 들어도 성욕은 어찌하지 못한다는 속설처럼 30년 나이 차이 나는 딸뻘 여성에게 수시로 욕정을 느끼고(물론 내색은 잘 하지 않는다), 불쑥불쑥 치솟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뜨거운 존재다. 알 수 없는 사람 속은 벨린만이 아니다. 최고의 충격적인 반전은 어딘가 덜떨어진 인물인 얀손의 몫이다. 벨린과 ‘밀당’ 관계인 여기자 리사 모딘, 벨린의 도깨비 같은 딸 루이제 역시 돌출행동으로 예상을 뒤엎는다. 이런 인물들 간의 감정 난타전이, 평온한 듯하다가 돌변하는 스웨덴의 변덕스러운 바다처럼 변화무쌍하게 펼쳐진다. 모순적인 표현이지만, 차분하면서도 격정적인 소설이다.
 
다시 가디언. 부고 기사는 낙관적이던 1960년대 제임스 본드가 살인 면허로 중년 남성들을 사로잡았다면, 90년대 만켈의발란더는 탐정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으로 선망의 대상이 됐다고 분석했다. 경제 거품 끝에 일자리가 위태로워진 당대 스웨덴 상황 덕을 봤다는 얘기다. 말년의 마지막 소설은 고령화라는 요즘 트렌드에 들어맞는다. 역시 감이 좋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탐정소설이 인기를 얻지 못하는 걸까.
 
신준봉 기자 inform@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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