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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시각각]MB가 희망인 시절도 있었다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17대 대선 닷새 전인 2007년 12월 14일, 후보 이명박(MB)은 대우증권 본사에 갔다. “내년 증시는 3000을 돌파할 수 있고, 제대로 되면 임기 5년 중 5000까지 간다”고 외쳤다. 코스피 지수 3000 발언은 지상파 뉴스를 탔다. 화면에 ‘경제 대통령 이명박’플래카드가 오버랩됐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그해 10월 코스피 지수가 처음으로 2000을 넘었다. 주식 없는 사람도 고도 성장기가 다시 도래할 것을 기대했다. 김대중 정부 5.0%, 노무현 정부 4.3%. 평균 경제성장률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빈부 격차는 커졌다. 노무현 정부 후반기인 2006년에 처음으로 소득 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3(2인 이상 가구 시장소득 기준)을 넘어섰다. 학계에선 통상 0.3 이하를 평등한 사회로 본다.
 
2000년대 중반 “부자 되세요!”는 흔히 오가는 인사말이었다. BC카드 광고에서 배우 김정은이 한 말이었다.(요즘 이 회사 광고 문구는 “지금 하세요”다) 실제로 꽤 많은 사람이 외환위기 이후에 불어닥친 벤처 열풍 속에서 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지니계수가 보여주듯 그래도 현실은 차가웠다. 대다수가 부자를 꿈꿨지만, 대부분이 되지 못했다. 상실감을 키웠다.
 
MB는 ‘7·4·7’을 내걸었다. 연평균 7% 경제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 진입. 그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가 누구인가. 서울시장으로 모두가 비현실적이라고 했던 청계천 복원을 이뤄낸 이였다. 중앙정부는 도롱뇽 문제로 고속철도 공사를 미루고 있을 때 그는 ‘한다면 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판잣집 소년에서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이 된 그 스스로가 성공 모델이기도 했다.
 
대운하 건설 공약, 물길을 마구 헤집으면 되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막상 해놓으면 그럴듯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청계천 효과’였다. 술자리에서 대운하 반대론을 펴면 왕따 되기 십상이었다.
 
MB가 뛰어난 정치적 식견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믿는 이는 더욱 적었다. 대선 후보 경선 직전에 검찰은 도곡동 땅 실소유 의혹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형과 처남 것이었다”는 MB 주장에 대한 의구심이 불어났다. 이후 검찰이 다스(DAS)가 MB의 차명 재산이 아니라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고, 유권자들은 반신반의했다. MB가 수년 전 광운대에서 “내가 BBK를 설립했다”고 자랑하는 동영상이 대선 사흘 전에 공개됐지만, 표심을 흔들지 못했다. 그에 대한 지지는 이미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난 상태였다. MB는 이를 ‘실용주의’라고 불렀다.
 
MB는 48.7% 득표로 집권했다. 2위와의 격차는 26.6%포인트로 역대 최대였다. 정권 초기 지지율은 50% 중반대를 오갔다. 그런데 경제는 좋아지지 않았다. 5년 연평균 성장률은 3.2%에 그쳤다. 지니계수는 2009년에 0.3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기업 경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아랫목 온기가 윗목으로 퍼지지 않았다. 개발 시대 논리가 더는 통하지 않았다. 미국발 금융위기(리먼 사태)라는 악재 탓이라고 열심히 설명해도 잃어버린 민심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22일 자정 무렵 MB 집 앞에 지지 시민이 모이지 않았다. 정치인 20여 명만 구치소로 가는 그를 배웅했다. 국민은 냉담한 눈빛으로 추락하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결국 그의 실용성을 높이 산 절반에 가까운 유권자들은 신기루를 좇았던 셈이다. 사업가 출신 정치인의 욕심과 국민의 욕망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던 시절, 허망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역사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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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