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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잔인한 봄날의 문장들

성기완 시인·음악가·밴드 앗싸 멤버

성기완 시인·음악가·밴드 앗싸 멤버

“스물세살이오 ― 三월이오 ― 咯血이다.”
 
이상의 자전적 소설인 ‘봉별기’의 첫 구절이다. 이 3박자로 된 리드미컬한 문장의 첫 두 박자가 참 잘 어울린다. 스물셋에 3월. 셋, 셋. 청춘의 절정에서 최고의 계절을 만났으니 가장 아름다운 꽃이 만개하기를 기다려도 좋다. 이 기대감을 어미인 ‘~오’, ‘~오’가 매우 효과적으로 상승시킨다. 거기에 대시(-)까지 써넣어 ‘오’를 길게 끌도록 만들었으니, 이렇게 길어진 장모음 ‘오’만큼 우리를 높이 데려다주는 모음은 없다. 물론 현대어로 표기하면 ‘요’가 되겠지만, ‘오’나 ‘요’ 계열의 모음은 놀람의 표시이자 감탄의 드러냄인 동시에 존경의 표현으로 쓰인다. 일본 말에서도 ‘오(お)’는 높임을 나타낸다. 심지어 서아프리카 말에서도 ‘오’나 ‘요’ 계열의 모음이 비슷하게 쓰인다. 예를 들어 ‘기완!’ 이렇게 부르는 것과 ‘기완요’라고 부르는 것은 차이가 있다. ‘기완요’는 기완이 형이라는 뜻.
 
이처럼 인류 보편적으로 상승의 표시인 ‘오’ 발음에 두 박자를 할애하여 독자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린 다음, 이상은 놀랍게도 ‘각혈이다’라는 단정적이고 냉정한 서술어를 덧붙인다. 각혈의 ‘ㄱ’이 숨 막힌다. 이 딱딱한 자음이 풍선처럼 부풀려진 봄날을 폭발시킨다. 시적 테러다. 앞의 두 박자는 감탄이지만 마지막 한 박자는 각혈이라는 증상의 진단이다. 이것은 짧고 건조한 진단서의 문체다. 이상이 즐기는 객관적 문체다. 사실 접속의 논리로 봤을 때 이 문장은 비문이다. ‘3월인데 각혈이라니’라는 대조의 의미가 있을 텐데 그냥 무시해 버린다. 그러니 독자는 더욱 놀란다.
 
이처럼 아름다운 3박자의 문장을 본 적이 없다. 이처럼 3월이라는 계절을 잔인하게 묘사한 문장을 아직 못 만났다. 그 추락이 너무도 뼈아프고 치명적이다. 춘삼월에 각혈. 더 뭔 말이 필요하랴. 이상은 담담할 따름. 이래서 이상은 이상이고 그래서 더욱 처절하다. 이 짧은 조합으로 우리 민족이 품은 한의 거의 모든 것이 요약된다. ‘봉별기’는 계속 이렇게 진행된다.
 
이상

이상

“여섯 달 잘 기른 수염을 하루 면도칼로 다듬어 코밑에 다만 나비만큼 남겨 가지고 약 한 제 지어 들고 B라는 신개지(新開地) 한적한 온천으로 갔다. 게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점입가경. 도입부에 이미 모든 게 끝났다. 2x3=6. 그의 글은 암호들이 숨어 있는 비밀의 도면이다. 이 도면이 우리말 문장의 ‘신개지’를 개척했다. 수염이 ‘나비’가 된다. 르네 마그리트(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다다(허무주의 전위예술)와 초현실주의. 생의 시간이 아니라 꿈의 시간이다. 온천에서는 축축한 물안개가 어른거린다. 이상은 금홍과 사랑한다. 사랑의 환상과 죽음의 그림자가 겹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죽어도 좋았다’. 더 뭔 말이 필요하랴.
 
4월, 하면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이 떠오른다. 그가 쓴 ‘황무지’라는 장시에 저 유명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가 나온다. 이 역시 멋지고 비극적이지만, 이상의 피를 토하는 3박자의 문장에 비하면 한 수 아래다.
 
이상은 그 좋은 봄날에 피를 쏟으며 무엇을 원했던가.
 
“나는 몇 편의 소설과 몇 줄의 시를 써서 내 쇠망해 가는 심신 위에 치욕을 배가하였다. (…) 나는 하여간 허울 좋게 말하자면 망명해야겠다.”
 
이상이 원한 건 망명이었구나. 봄이 오려나 싶다가 요 며칠 갑자기 추워졌다. 언뜻언뜻 겨울의 망령이 파충류의 꼬리처럼 매섭게 채찍질하여 코트 깃을 여미게 한다. 올해는 왜 그런지 더욱 봄이 기다려진다. 진짜 봄이 와도 실감 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조용히 기다리면 날은 따뜻해질 것이다. 봄은 잔인하게도 잊을 것은 잊으라 이른다. 지나간 계절에 집착하지 말라 한다. 각혈과 망명, 그 고통을 반복하지 말라 명한다.
 
성기완 시인·음악가 밴드 앗싸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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