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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의 케네디 암살 트라우마, 결국 동생 연인마저 빼앗았다

재클린 케네디 재혼 선박왕 오나시스는 원래 동생 연인
 
재클린 케네디(왼쪽)와 리 라지윌 자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미국 사교계의 꽃이었다.

재클린 케네디(왼쪽)와 리 라지윌 자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미국 사교계의 꽃이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부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1929~1994).  
재클린(이하 재키)은 케네디 암살 5년뒤인 68년 10월20일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재혼했다. 케네디 암살 때 재키가 'Oh, No.(맙소사)'를 외쳤고, 그가 오나시스와 재혼하자 이번엔 미국인들이 'Oh, No.(맙소사)'를 외쳤다는 일화를 남겼다. 
재키는 75년 오나시스와 사별할때까지 7년간 딸 캐롤라인, 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를 데리고 오나시스 소유의 개인섬 스콜피오스(그리스)와 뉴욕을 오가며 생활했다.  
오나시스가 숨진 75년까지 7년간 가족으로 지낸 재키와 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 오나시스(왼쪽부터).

오나시스가 숨진 75년까지 7년간 가족으로 지낸 재키와 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 오나시스(왼쪽부터).

 오나시스와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오나시스의 여성편력과 재키의 사치벽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오나시스는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였던 마리아 칼라스의 후원자이자 연인이었고, 이밖에도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 중엔 재키의 여동생 리 라지윌도 있었다. 라지윌은 언니 재키에게 ‘결혼하고 싶은 남자’라며 오나시스를 소개했지만, 재키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오나시스와의 결혼을 선택했다. 
이런 사실은 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재키, 재닛&리=재닛 오친클로스와 그의 딸 재클린 케네디 오나니스, 리 라지윌』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책의 저자인 J 랜디 타라보렐리는 마이클 잭슨과 프랭크 시나트라, 비욘세, 마돈나, 다이애나 로스 등의 이야기를 펴낸 전기작가다.   
 미국 패션아이콘, 사교계의 꽃이 된 여인
1933년 재키의 4살 어린 여동생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캐롤라인 리 부비에. 어려서부터 책벌레였던 재키와 달리 남다른 외모로 주목을 받았다. 훗날 재키는 “어려서 외모로 리와 비교를 당하다보니 동생은 예쁜 아이, 난 머리좋은 아이가 돼 있었다”고 했다.  
유명 출판사주의 아들, 망명한 폴란드 왕족, 사업가와 평생 세차례 결혼한 리 라지윌. 두 자녀의 아버지 스타니슬라브 라지윌의 성을 따 평생 리 라지윌로 살았다.

유명 출판사주의 아들, 망명한 폴란드 왕족, 사업가와 평생 세차례 결혼한 리 라지윌. 두 자녀의 아버지 스타니슬라브 라지윌의 성을 따 평생 리 라지윌로 살았다.

 재키의 어머니 재닛은 두 딸을 사교계의 꽃으로 키웠다. 그는 51년 파리 유학을 마친 재키와 리를 미국 사교계에 데뷔시켰다.  
리는 스무살이던 53년 미국 유명 출판사주의 아들 마이클 캔필드와 결혼했다. 언니 재키는 같은 해 정치명문가의 존 F 케네디 상원의원과 결혼했다. 두 자매는 결혼 후에도 가족끼리 종종 내왕했으며, 케네디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동행하기도 했다. 재키는 인도 파키스탄 단독순방때도 여동생 리를 데려갔다.  
62년 재키의 파키스탄 방문에 동행한 리 라지윌. 라지윌(왼쪽)과 재키가 낙타 등에 올라타 있다.

62년 재키의 파키스탄 방문에 동행한 리 라지윌. 라지윌(왼쪽)과 재키가 낙타 등에 올라타 있다.

 리는 57년 영국에 망명중이던 폴란드 왕족인 스타니슬라프 라지윌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59년 캔필드와 이혼하게 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리는 라지윌과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받기 위해 첫 결혼의 혼인무효소송을 벌였고, 이를 도와준 사람이 형부 존 F 케네디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리와 라지윌은 63년 가톨릭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라지윌과 남매를 낳은 리는 유럽 사교계에도 발을 넓혔는데, 이때 만난 이가 그리스의 부호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다.   
오나시스(오른쪽)와 리 라지윌. 리는 오나시스와 불륜관계였다. 그는 훗날 두번째 남편 스타니슬라프 라지윌과 결혼한 것을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말했다. 두번째 실수는 언니 재키에게 오나시스를 소개한 것이라고 했다.

오나시스(오른쪽)와 리 라지윌. 리는 오나시스와 불륜관계였다. 그는 훗날 두번째 남편 스타니슬라프 라지윌과 결혼한 것을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말했다. 두번째 실수는 언니 재키에게 오나시스를 소개한 것이라고 했다.

 오나시스와 리는 68년 8월 그리스의 ‘힐튼 아테네’ 오프닝 파티에 함께 참석했다. 눈부신 리의 외모는 참석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니키 힐튼(힐튼 주니어)의 친구이자 홍보 담당자였던 밥 웬트워스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니키 힐튼은 오나시스에게 “리는 정말 자네를 좋아하는 것 같네. 자넨 행운아”라고 말하자 “난 운이 좋지. 정말 훌륭한 여인이지. 게다가 재클린 케네디의 여동생이라네”라는 답이 돌아왔다. 고졸 학력의 자수성가한 오나시스가 권력과 명망을 갖춘 케네디 가문에 대한 동경심을 드러낸 대목이다.  
교회에서 기도하는 재클린 케네디.

교회에서 기도하는 재클린 케네디.

 재키는 63년 8월 둘째아들 패트릭을 조산으로 잃었다. 리 라지윌은 한달 뒤인 9월, 시름에 빠진 언니를 오나시스의 크루즈 ‘크리스티나호’로 초대했다. 이미 오나시스와 불륜관계였던 리 라지윌은 언니에게 “오나시스와 결혼할 생각”이라고 했으나 재키는 “말도 안되는 꿈 같은 얘기”라고 일축했다고 한다.
책은 훗날 리 라지윌이 언니 재키를 ‘크리스티나호’로 초대해 오나시스를 소개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자유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재키의 결혼 
오나시스 소유의 크리스티나호를 타고 유람하고 있는 오나시스와 재키.

오나시스 소유의 크리스티나호를 타고 유람하고 있는 오나시스와 재키.

케네디 암살사건 5년 뒤인 68년 5월. 재키는 오나시스와 크리스티나호를 타고 대서양을 유람했다.  오나시스는 재키가 도착하기 전 직원들을 시켜 크리스티나호 곳곳에 케네디와 재키의 사진을 장식했다.  
결혼을 위한 모종의 합의가 이뤄진 장소가 바로 크리스티나호였다. 당시 목격자들이 본 두 사람은 연인사이가 아니었다.  
이때 오나시스는 재키에게 청혼했고, 재키는 자유와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프로포즈를 수락했다. 케네디의 암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재키는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고, 자신과 아이들을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재키와 오나시스.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재키와 오나시스.

 당시 오나시스는 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재키가 울고 있을 때 어깨를 빌려줄 남자가 될 생각이다. 나는 재키를 지키고, 안전과 사랑, 그리고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의 돈을 줄 수가 있다”고.  
 재키는 오나시스와의 결혼계획을 가족들에게 곧바로 알리지 않았다. 뒤늦게 언니의 결혼사실을 알게 된 리는 절친이던 소설가 트루먼 커포트에게 “재키는 어떻게 이렇게 복수할 수가 있느냐.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며 절규했다고 한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트루먼 카포트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로도 유명하다.   
리 라지윌과 그의 절친 트루먼 카포트. 카포트는 재키와 리 자매의 애증 관계를 훗날 책으로 엮어냈다.

리 라지윌과 그의 절친 트루먼 카포트. 카포트는 재키와 리 자매의 애증 관계를 훗날 책으로 엮어냈다.

68년 10월, 튀니지에서 휴가중이던 리 라지윌은 오나시스의 결혼식 초대를 받았다. 결혼식이 열린 그리스 스콜피오스섬을 방문한 리는 달빛아래 크리스티나호 갑판에서 웃음짓고 있는 재키와 오나시스를 발견했다.  
예비 처제의 등장에 오나시스가 자리를 피했다. 동생 리를 끌어안은 재키의 한마디는 이랬다. “내겐 리 네가 필요해.” 언니의 번민하는 표정을 읽은 리는 “알고 있어. 난 괜찮아”라고 답했다고 한다. 리는 언니 재키의 요청으로 결혼식 신부 들러리를 섰다.  
그리스의 스콜피오스섬에서 열린 재키와 오나시스의 결혼식. 오나시스는 결혼선물로 스콜피오스섬을 구입해, 이곳에서 재키의 딸 캐롤라인과 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를 키웠다.

그리스의 스콜피오스섬에서 열린 재키와 오나시스의 결혼식. 오나시스는 결혼선물로 스콜피오스섬을 구입해, 이곳에서 재키의 딸 캐롤라인과 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를 키웠다.

올해 85세, 예술가들과 교감한 패션아이콘
리는 88년 배우 크리스찬 베일의 아버지인 사업가 허버트 로스와 결혼했다.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미나 등 패션업계 관계자들과도 교류하며 미국의 패션아이콘이자 홍보 전문가로 활동했다. 60년대 잠시 영화배우로도 활동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다. 94년 언니 재키를 잃고, 99년엔 비행기 사고를 당한 조카 존 F 케네디 주니어와 10년간 암투병을 한 자신의 아들 앤서니를 먼저 떠나보냈다. 2001년에는 세번째 남편인 허버트 로스와도 사별했다.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리 라지윌.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리 라지윌.

이 모든 비극을 지켜본 리는 2003년 자서전 『해피 타임스』를 펴냈다. 지난 2008년 프랑스 정부의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은 리 리자왈. 올해 85세인 리는 여전히 유명 패션쇼의 맨 앞자리에 앉는 미국 사교계의 명사다. 유명 사진작가 호르스트 P 호르스트가 그의 아름다움을 렌즈에 담았고, 루돌프 누레에프, 레너드 번스타인, 앤디 워훌 등 문화계 인사들과는 우정을 나눴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가수 믹 재거와는 한때 연인으로 지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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