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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FBI와 비트코인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지미는 대답 대신에 자신과 함께 집에 가서 저녁이나 먹자고 했다. 그의 부인 에이미 역시 고교 동창생이다. 그들은 내가 잭슨빌로 이사 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 빨간 벽돌로 만든 집에 그리스 신전 같은 기둥이 중간에 있었다. 지붕에는 굴뚝이 보이고 TV 안테나가 세워져 있었다. 집에 들어가니 훈훈한 온기가 느껴졌다. 가족이란 어쩌면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리라. 

 
“빌, 하나도 안 변했는데. 몸이 홀쭉해졌어.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아냐. 운동을 좀 해서 그래. 괜찮아.”

 
“너무 말라보여. 눈에 띄게. 오늘 우리 집에서 많이 먹고 가.”

 
에이미는 저녁을 준비했고 우리는 나파밸리산 와인과 치즈를 안주로 고교생활을 회상했다. 에이미는 린다와 매우 친한 사이였다.

 
“린다 이야기 들었어. 빌, 너와도 친했지.”

 
“응. 에이미 너 하고는 연극반 활동을 같이하지 않았니?”

 
“맞아. 린다가 수다스럽고 말썽을 부리는 역할에는 딱 맞았잖아. 여주인공 앤 역할을 했지. 린다는 꾸밈이 없고 열정적이었어. 린다는 그 역할을 하면서 한 이야기가 있어. 그게 아주 기억에 생생해.”

 
“뭐라고.”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마을학교 교사가 되는 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고. 삶의 겸허함과 겸손함을 배웠다고. 그렇게 긍정적인 린다였는데. 음.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 있잖아. 내게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린다가 당시 어떤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그게 중의적으로 들리더라고.”

 
죄의식이 느껴진다. 내가 잠자코 있는데 지미가 말한다.

 
“그래? 사실 린다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지. 릭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는 사실 의아했지. 릭은 린다가 좋아할 스타일은 아니잖아.”

 
“자기야. 린다가 빨강머리 앤 대사를 하며 말했어.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기에 살만한 것이라고. 그게 멋진 것이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린다의 자기실현적 예언이 맞아떨어진 느낌이야. 그런데 불행히도 운명의 화살이 반대편으로 가 버렸잖아.”



“침대는 잠만 자는 곳이 아니다. 꿈을 꾸는 곳이다. 그 역시 멋진 대사지.”

 
린다는 빨강머리 앤의 대사를 읊조릴 때 정말 눈부셨다. 모든 사람이 박수를 쳤다. 에이미는 당시 마릴라 커스버트 역을 맡았다. 그녀는 고지식하고 엄격한 시골 아줌마로 앤을 우연히 돌보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삶의 즐거움과 낭만을 찾아가는 역할을 했다. 에이미가 와인을 홀짝거리며 말한다.

 
“사실 오늘 우리가 먹은 요리 중에는 빨강머리 앤 연극을 할 당시에 먹었던 음식들이 있었어. 젤리를 굳힌 닭고기, 과일 케이크, 버찌 파이, 레몬파이, 빵, 생크림 같은 것 말이야.”

 
지미가 짓궂게 말한다.

 
“침대는 잠만 자는 곳이 아니다. 섹스를 하는 곳이다.”

 
“오, 자기. 왜 이래. 그런 농담은 하지 마. 교수 체통에 금이 가겠어.”

 
“나는 빌이 이 잘생긴 얼굴로 어떻게 성욕을 해결하는지 궁금해. 하긴 인공지능 로봇도 있지. 혹시 빌. 너 그런 것 가지고 노는 것 아니겠지. 뭐든 자연산이 좋은 거야. 여자 신음 소리도 마찬가지고.”

 
“오. 스톱. 더는 그런 싸구려 농담 그만해주세요. 화제를 돌려주세요.”

 
“아. 참. 빌이 내게 사토시 나카모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 심리학 교수인 당신이 대답해 봐.”

 
에이미는 같은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왜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 거지. 정말 미 연방 수사국(FBI)이나 중앙정보국(CIA)에서도 모르는 인물일까?”

 
“그야 모르지. 처음에 미국과 중국이 비트코인에 엄청 반대한 것이 두 나라가 비트코인을 싸게 매수하기 위한 것이란 이야기가 있잖아. 음모론이겠지만. 빌. 너는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머뭇거리다 허공을 바라보며 막연하게 말했다.

 
“내가 뭘 알겠어. 그런데 몇 년 전에 FBI 관련 사건이 있었잖아. 그걸 보면 그 음모론은 맞지 않는 것 같아. 가지고 있던 것을 경매했잖아.”



2013년 10월 FBI는 실크로드라는 사이트를 폐쇄했다. 10억 달러 이상의 마약류가 거래되던 인터넷 사이트였다. 이곳은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사용했다. FBI는 비트코인의 거래 기록이 공개되고 저장되는 특성을 이용해 실크로드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모두 압수했다. 이 사건으로 FBI는 당시까지 채굴 총량의 1.5%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소유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정부기구로는 비트코인 최대 보유자로 알려졌었다.

 
“참 경매로 받은 그 사람은 부자였고 더 큰 부자가 되었다지. 세상에 돈이 돈을 번다고.”

 
지미가 말한 후 에이미가 거든다.

 
“사토시가 아무리 선한 의도로 기술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돈이 검은돈으로 떠도는 것은 괴로운 일일 거야. 만약 그에게 양심이 있다면. 사실 FBI가 습격한 그곳이 마약, 청부살인, 불법무기를 중개하는 사이트잖아. 그것을 FBI가 팔았고 억만장자가 3만개를 샀어.”

 
“자기 그건 무슨 의미로 말하는 거야.”

 
지미가 묻자 에이미가 대답한다.

 
“사람들은 덩달아 하는 편승 효과에 관심이 많아. 오르는 것에 같이 오르지 못하면 자신만 뒤진다는 것. 비트코인은 하나의 유행 같아. 억만장자가 샀으니 그건 오른다는 신호로 본 거야. 게다가 불법자금으로 여기저기서 이걸 이용하고. 납치범도 해커들도 몸값이나 암호 풀기 대가로 비트코인을 요구하니 권위가 서는 거지. 악의 소굴에서 그렇게 하니 묘한 느낌을 줄 거야.”

 
“그래서?”

 
지미는 심리학을 전공한 아내의 말이 자못 궁금해진다.

 
“사토시가 어떤 멘탈을 가진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상황은 혼미함 그 자체일 거야. 그럴수록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 하지 않을까.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 방법을 찾을 수도. 영웅일 수 있는 사람이 좀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것도 마음이 달갑지 않을 것이고.”

 
“에이미, 혹시 사토시가 거대한 세력을 조정하는 아나키스트 세계의 교주 아닐까?”

 
“이봐요. 침대의 용도를 한정해서 보는 분.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입니다. 가구는 말이 없지만, 침대는 말을 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과학이나 기술 역시 소통을 할 때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고 움직임을 선도하는 것이지요. 자기. 그것 강조하지 않았어.”

 
그녀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웬 삼천포야. 죄송합니다. 여왕 폐하. 지금의 암호 화폐시장은 세력이 주도하는 판입니다. 세력의 심리만 잘 파악하면 앉아서 돈 번다고 하더라고요. 차트도 필요 없는 이상한 시장이고. 잠시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는 건데. 이게 그냥 계속 사 주면 끝없이 올라가는 피라미드 같아. 다단계 피라미드. 그러나, 피라미드에도 정점이 있는 것이고. 그 사이에 뭘 하나 빼버리며 우수수 무너지는 것 아닐까요? 여왕 폐하 말씀해 보세요.”

 
“거대한 군중의 심리가 도박판으로 향하고 있긴 해. 많은 이들은 미래 기축통화라는 기대감과 '화폐'라는 단어에 매혹된 투기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요. 그 속에서 이를 바라보는 사토시의 정체에 대해서 나 역시 궁금하긴 하지만, 이건 정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아서…. 불법자금 흐름에 비트코인이 사용되는 것을 그가 꿈꾸었을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봐요.”

 
“에이미, 그러면 당신은 사토시가 굉장히 순수한 사람이라 생각하는지요?”

 
“글쎄. 지금의 현상만 가지고 어떻게 속단을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분명히 그는 수많은 번뇌에 사로잡혀 있을 겁니다. 억만장자라고 다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거든요. 다가올 미래에 누군가는 다쳐요. 어쩌면 사토시도 피해자일지 몰라요. 창조주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에요.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빨강머리 앤은 그런 대사를 읊었지만, 세상살이가 다 희극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린다의 경우만 봐도 그래요. 난 오히려 사토시에게 연민의 정이 가요. 세상에서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돈 앞에서 장사 없다고요. 돈이라는 유혹에 빠져 골드러쉬로 향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가 당당히 나타나 신기루였다고 말할 수도 없잖아요. 그는 지급수단으로서 화폐를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투자 혹은 투기 수단으로서 화폐를 생각하네요. 그의 정신적 혼란은 당연한 거죠.”

 
“그럼 당신은 현재 상황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비유하는 것인가?”

 
“그래요. 지금 내 생각은?”

 
“빌, 에이미 이야기에 수긍하는가?”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급하게 와인 잔을 비워버렸다. 그리고 내가 사토시라고 외치고 싶었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나의 현실을 에이미는 잘 꿰뚫고 있었다. 그날 한 암호 화폐는 하루에 900% 올랐다고 뉴스가 전했다. 또 다른 화폐는 상장 후 가치의 99%가 날아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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