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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오신지 한달도 안되셨는데…" 여성 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 의식 잃어

지난 3.1절날 오희옥 지사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에 자리한 독립유공자의 집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 지사는 고향 땅을 밟은 지 한달도 되지 않아 쓰러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진 용인시]

지난 3.1절날 오희옥 지사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에 자리한 독립유공자의 집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 지사는 고향 땅을 밟은 지 한달도 되지 않아 쓰러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진 용인시]

쓰러진 지사의 안타까운 '침묵'
 
‘3대(代) 독립운동가’인 오희옥(92·여) 지사가 지난 17일 급성 뇌경색으로 쓰려진 뒤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남은 생을 고향인 경기도 용인에서 보내고 싶다는 바람을 이룬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오 지사는 지난 21일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3·1 만세운동 기념공원에서 개최한 ‘제99주년 용인 3·21 만세 운동’ 기념행사장에 참석하지 못했다. 오 지사는 현재 특유의 환한 미소를 잃은 채 안타까운 침묵을 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 생존한 여성독립운동가는 오희옥 지사를 포함해 민영주(95)·유순희(92) 지사 3명뿐이다.
 
지난 21일 오후 수원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본관 3층 외과 중환자실. 오 지사가 나흘째 입원해 있는 병실이다. 성빈센트병원 홍보팀 관계자는 “보호자 외에는 환자의 현 상태를 알려줄 수 없다”며 “주치의의 소견 역시 마찬가지인데 다만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채 의료진이 분주히 움직이는 중환자실이 오 지사의 현 상태를 대신 짐작하게 해줬다.
오희옥 지사가 입원해 있는 수원 가톨릭대 성빈센트 병원 3층 외과 중환자실. 김민욱 기자

오희옥 지사가 입원해 있는 수원 가톨릭대 성빈센트 병원 3층 외과 중환자실. 김민욱 기자

 
불 꺼진 '독립유공자의 집', 태극기만 쓸쓸히 
 
같은 날 원삼면 죽능리 ‘독립유공자의 집’. “지사님의 고귀한 희생에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글귀가 당당히 새겨진 나무 문패 옆에 걸린 태극기가 쓸쓸히 바람에 나부꼈다. 집 안의 불은 모두 꺼졌다. 창을 통해 본 거실은 적막했다. 오 지사를 소녀처럼 웃게 해줬다는 푹신한 소파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오 지사는 올해 3·1절부터 이곳에서 생활해왔다. 그전까지는 수원시 보훈복지타운에서 지냈다. 1년여 전 오 지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생을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시민들이 지사의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 팔 걷고 나섰다.    
불꺼진 독립유공자의 집. 오희옥 지사의 빈 자리가 크다. 김민욱 기자

불꺼진 독립유공자의 집. 오희옥 지사의 빈 자리가 크다. 김민욱 기자

 
우선 해주오씨 종중에서 고향인 원삼면 죽능리 땅(438㎡)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용인시 공무원은 건축비로 2133만원의 성금을 모았다.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회, 원삼면기관단체장협의회도 힘을 보탰다. 건축·토목설계와 골조공사, 시공, 조경, 인테리어 등은 재능기부로 이뤄졌다. TV·세탁기 등 생활가전제품과 소파‧식탁 등 가구 역시 후원됐다. 방 2개와 거실, 주방을 갖춘 1층짜리 단독주택은 그렇게 지어졌다.
용인 독립유공자의 집에 걸린 태극기가 쓸쓸해 보인다. 김민욱 기자

용인 독립유공자의 집에 걸린 태극기가 쓸쓸해 보인다. 김민욱 기자

 
정찬민 용인시장은 “새집에 들어가시면서 기뻐하시던 오 지사님의 환한 얼굴이 지금도 아른거리는데…”라며 “오 지사님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3대(代)로 이어진 독립운동
 
오 지사는 3대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등에 따르면 지사의 할아버지인 오인수 의병장(1867~1935)은 1905년 을사늑약(일제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맺은 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으로 투신해 용인과 안성 등지에서 활약했다. 의병 300여 명을 이끌고 일본헌병대와 경찰 주재소를 습격했다. 일본군에 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8년간 모진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나라를 되찾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독립운동가로서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오인수 의병장은 명사수로 알려져 있다.
오희옥 지사의 부친인 오광선 장군.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오희옥 지사의 부친인 오광선 장군.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지사의 아버지는 오광선 장군(1896~1967·사진)이다. 만주 독립운동의 거점인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독립군단 중대장, 광복군 장군을 역임했다. 일본군에 붙잡혀 시베리아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다 탈출에 성공했다. 1936년 중국 베이징에 파견돼 비밀공작대를 조직하고 일본 관동군 참모장이었던 도이하라  겐지(土肥原 賢仁) 암살작전을 펼쳤다. 이듬해 일본군에 붙잡혀 신의주형무소에서 3년여간의 옥고를 또 치렀다. 아버지인 오인수 의병장처럼 출옥 후에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무장독립운동을 계속 이어갔다. 광복 후에는 한국군 육군 대령으로 임관돼 준장으로 예편했다. 
 
오희옥 지사는 2살 터울의 언니인 오희영 지사(1925~1969)와 함께 13살 나이에 중국 류저우(柳州)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 일본군 정보수집과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을 탈출시키는 임무를 도왔다. 오 지사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수원·용인=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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