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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떠난 이성자, 그리움이 쌓여서 그림이 됐다

화가 이성자는 ‘음과 양’으로 상징되는 대립적인 요소의 조화를 통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다. 유화 ‘내가 아는 어머니’ (1962, 130x195㎝).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화가 이성자는 ‘음과 양’으로 상징되는 대립적인 요소의 조화를 통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다. 유화 ‘내가 아는 어머니’ (1962, 130x195㎝).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1950년, 그의 나이 서른둘. 결혼생활 12년 만에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면서 당시 아홉 살, 일곱 살, 다섯 살인 세 아들과 생이별을 했다. 외로움과 절망의 한가운데서 그는 자신에게 닥친 슬픔을 피하기 위해서는 “더 멀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지를 통해 알게 된 외교관의 도움으로 그는 이듬해인 1951년“무일푼, 무명의 처지로, 불어도 모르지만” 프랑스로 떠난다.

탄생 100년 특별전 7월까지
박수근·김환기에 비교되는 작가
가족과 생이별 후 무작정 파리로
“나는 여자다, 어머니다, 대지다”
점 하나, 선 하나에 우주를 담아

 
재불화가 이성자(1918~2009) 얘기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22일 시작하는 전시 ‘이성자 반대편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사연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장애 없는 세계' '196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장애 없는 세계' '196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최초의 여성화가로 일컬어지는 나혜석(1896~1948)은 어떠했던가. 1931년 남편으로부터 이혼당하고 헤어진 자녀들과 만나지 못해 고통받던 시절 나혜석은 이런 글을 썼다.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는 파리 가서 죽으련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텅 빈 나는 미래로 나가자.”. (삼천리, 1935년 2월) 
 
그러나 나혜석은 1928년에 머물렀던 파리를 그리워만 하다가 48년 서울 원효로 시립자제원에서 무연고자로 삶을 마감했다. 나혜석은 생전에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화재 등의 이유로 현재까지 남은 작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국 근대 여성미술가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그런 점에서 이성자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작업 60년을 총망라해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매우 특별해 보인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신여성 도착하다’(4월 1일까지)에 이어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조명 받아온 한국 여성 미술가를 살핀다는 점에서다. ‘음과 양’ 등 동양적 사유를 서양화 기법으로 풀어내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집요하게 추구한 작가를 재조명하는 자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성자, '은하수에 있는 나의 궁전' (2000).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성자, '은하수에 있는 나의 궁전' (2000).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처음 붓을 잡았던 30대의 초기작부터 89세 9월에 작업한 마지막 작품까지, 시기별로 드러나는 변화의 궤적도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감동은 오로지 작품에 모든 것을 걸었던 작가의 절절 끓는 듯한 에너지가 전하는 감동이다. 생전에 그는 개인전 80여 회, 그룹전 300회 이상 참여했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1월 4, 90’ (1990,150x150㎝).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1월 4, 90’ (1990,150x150㎝).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사랑하는 아들들이 있는 곳을 떠나와 ‘지구 반대편’ 어디에선가 홀로 그리움을 견디며 그가 정면으로 마주한 삶이 127여 점의 작품에 알알이 박혀 있는 듯하다. “점을 하나 찍을 때마다 이건 큰 아이 밥 먹이는 거, 이건 작은 아이 옷 빨아주는 거, 이건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 거…. 그걸 안 하면 아이들이 죽잖아요. 자기도 작업을 안 하면 살길이 없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신 것 같아요.” 박명자 갤러리현대 대표가 전하는 당시 작가의 이야기다.
 
이 전시를 준비해온 박미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점화로 한국의 대표 작가를 꼽을 때 박수근, 김환기, 이성자를 꼽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성자 작가의 작품세계가 눈부시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가 우리 미술사에서 잊혀서는 안 될 작가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성자.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성자.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는 회화와 판화 등 그의 시기별 대표작을 50년대 ‘조형탐색기’, 60년대 ‘여성과 대지’, 70년대 ‘음과 양’, 80년대부터 작고 전까지인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등 네 주제로 나눠 소개한다. 초기 회화 중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1956)는 평론가 조르주 부다유의 호평을 받으며 파리 화단에서 이성자를 주목받게 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후 작가는 58년 파리의 유명 화랑인 라라뱅시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64년 샤르팡티에 갤러리에서 목판화 전시를 열었다. 미술평론가 유준상씨가 “파리에는 유명한 전람회들이 있다. 특별한 작가만을 초대하는데, 이성자는 그런 식의 인정을 받은 유일한 한국 화가”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성자, '10월의 도시 1, 72' (1972).  이성자는 붓질을 쉬지 않으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시기별로 변화의 궤적이 뚜렷한 것도 특징이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성자, '10월의 도시 1, 72' (1972). 이성자는 붓질을 쉬지 않으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시기별로 변화의 궤적이 뚜렷한 것도 특징이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60년대 작품에선 자신만의 모티브를 치열하게 모색해온 작가의 여정을 볼 수 있다. 직선과 삼각형, 사각형, 원 등을 그리며 ‘여성과 대지’라는 주제를 파고든 시기다. “나는 여자이고, 여자는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대지”라는 철학을 담은 작품들이다. 
 
'천사의 땅' (195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천사의 땅' (195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작가는 한국을 떠난 지 15년 만에 귀국해 65년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국내 첫 전시를 열었다. 첫 귀국전과 훌쩍 자란 아이들과의 만남, 어머니의 죽음 등을 거치면서 그의 작품 세계는 한결 자유로워지고, 후기에는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시리즈와 ‘우주’ 시리즈로 뻗어간다. 말년의 작가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에서 본 극지에서 영감을 얻은 몽환적인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원과 음과 양, 은하수라는 모티브는 회화와 목판화 전반에 두루 걸쳐 드러난다. 최근 비평집 이성자의 미술:음과 양이 흐르는 은하수(미술문화)를 펴낸 전시기획가 심은록씨는 “70년대 중반 이후 작가의 관심은 자연과 우주로 뻗어 나간다”며 “이성자의 작품을 관통한 주제는 여성과 남성, 밤과 낮, 지구와 우주 등 대립되는 관계와 이를 이어주는 물의 어우름으로 요약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가 합쳐지는 인생의 자기완성을 작품 세계를 통해서 구현했다”(오광수 산 뮤지엄 관장)는 얘기와 맥을 같이 하는 평가다. 7월 29일까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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