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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 나는 지구에 즐거움을 선물하는 사람

스페인 출신의 아티스트 하이메 아욘은 건축가이자 산업디자이너다. 북유럽 가구회사 플리츠 한센, 이탈리아 타일 브랜드 비사자, 프랑스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 등과 협업해 만든 다양한 리빙 소품은 세계적인 디자인으로 인기가 높다. 지난 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중 ‘하우스 오브 프리츠 한센’ 전시공간을 꾸미기 위해 방한한 그를 직접 만났다. 리빙페어와 디자인 세미나를 위해 벌써 다섯 번째 한국을 찾는다는 그는 “전통과 현대가 믹스된 서울은 내게 많은 영감을 주는 도시”라고 말했다.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우상조 기자, 하이메 아욘, 장소협조=그랜드 하얏트 호텔

유쾌한 아티스트 하이메 아욘

 
하이메 아욘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마드리드와 파리의 산업 디자인 학교를 졸업했다. 1997년 베네통 그룹 디자인 연구소에 입사, 획기적인 광고 시리즈를 이끌었던 사진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와 함께 경력을 쌓았다. 2004년 바르셀로나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디자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2007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 비사자의 타일로 만든 거대한 피노키오 오브제를 선보이면서부터다. 이후 타임스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 100인’, 세계적인 디자인 잡지 월페이퍼가 선정한 ‘최근 1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선정됐고 현재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프리츠 한센과 9년째 작업하고 있다.
“조개에서 영감을 얻은 소파 파 븐(FAVN), 로(RO·덴마크어로 편안하다는 뜻) 체어, 아날로그(ANALOG) 테이블 등을 비롯해 도자기 소재의 화병 등 그 영역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프리츠 한센은 협업하는 디자이너에게 어떤 파트너인가.
“137년의 역사를 가진 브랜드인 만큼 ‘타임리스와 크래프트맨십’을 중시한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과 장인정신이 깃든 제품을 ‘진짜’라고 부르는 회사와 일하는 건 디자이너로선 멋진 일이다.”
 
하이메 아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멀티레그 캐비넷’.

하이메 아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멀티레그 캐비넷’.

하이메 아욘이 글로벌 기업들의 협업 러브콜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것은 ‘하이메 스타일’이라 불리는 차별점 때문이다. 일단 시각적으로 독특하다. ‘멀티레그 캐비넷’을 예로 들면 단순한 직사각형 상자 밑에 뾰족뾰족한 볼트 모양의 다리를 여럿 달았다. 모양은 다 다르고, 심지어 바꿔 낄 수도 있는데 그 모습이 예술적 오브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해피 수스토’ 화병들은 꽃을 꽂으면 머리에 꽃을 이고 양손에 꽃을 든 채 활짝 웃는 사람이 된다. 이처럼 아욘의 작품들에는 공통적으 ‘저건 대체 왜’라는 질문과 함께 웃음이 담겨 있다.
 
-‘하이메 스타일’의 디자인을 정의하면.
“나는 산업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이자 또 아티스트다. 때문에 가구를 디자인할 때도 기능성과 실용성만을 추구하진 않는다. 흔히 디자인이라고 하면 ‘형태’만을 떠올리는데 진정한 디자인은 만든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의 ‘소통’을 통해 완성된다. 디자이너가 어떤 생각으로 이것을 디자인했을지 상상력이 전해지는, 그래서 행복해지는 제품이 내 스타일이다.”
위에서부터 펭귄이 서로 안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의자와 파인애플에서 영감을 얻은 의자.

위에서부터 펭귄이 서로 안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의자와 파인애플에서 영감을 얻은 의자.

 
-종종 ‘괴짜 디자이너’라는 생각도 든다.
“박물관·갤러리·역사책·자연·뮤지컬·영화 등 정말 여러 곳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렇다고 단순히 이런 형태가 재밌겠다는 생각만으로 디자인하진 않는다. 중요한 건 보이는 형태보다 ‘내러티브(스토리텔링)’다. 나는 언제나 정확한 주제를 정하고 그에 따라 디자인한다. 보고 흥미를 느꼈다면 내 이야기가 잘 전달된 거고, 난 늘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원한다.”
원숭이가 서빙을 한다는 아이디어가 재밌게 표현된 가든 테이블.

원숭이가 서빙을 한다는 아이디어가 재밌게 표현된 가든 테이블.

 
실내용 흔들의자로 디자인된 ‘그린 치킨’.

실내용 흔들의자로 디자인된 ‘그린 치킨’.

그는 자신을 “친절한 얼굴과 미친 얼굴, 두 모습을 가진 아티스트”라며 웃었다. 유머러스하고 펑키한 제품으로만 보이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면 실용적이고 편안한 그의 작품들이 증거다. 음악을 주제로 한 의자를 디자인하면서 가볍고 부드러운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거위 털 같은 푹신한 충전재를 사용하는 식이다.
그는 또 스스로 위한 재미와 도전도 즐기는 사람이었다. 지난해 가을 런던패션위크 기간 동안 동료 디자이너인 재스퍼 모리슨과 함께 옷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다. 브랜드명은 ‘지지바바’. 일본에서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애교 있게 부르는 말이다. 현재 글로벌 유명 편집숍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전시·판매 중이다.
 
-패션 디자인에 도전한 이유.
“우리가 입고 싶은 옷을 디자인해봤다. 제스퍼 모리슨은 그답게 극도의 심플한 라인을 추구했고, 나는 도자기·타피스트리 등에 들어갔던 프린트와 독특한 소재의 버튼 등 섬세한 디테일을 추구했다. 시계·구두 등은 작업해봤는데 옷은 처음이어서 아주 재밌었다.”
스페인 슈즈 회사 캠퍼와 협업한 옥스포드 구두.

스페인 슈즈 회사 캠퍼와 협업한 옥스포드 구두.

 
-한국은 벌써 다섯 번째 방문이다.
“오래된 공예품을 좋아한다. 올드 앤 뉴(old & new)는 언제나 새로운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도심 한복판에 전통문화와 하이테크놀로지가 공존하고 있음에 매번 놀라고 감탄한다. 놋그릇처럼 매력적이고 우아한 전통 식기로 한식을 접하고 나오면, 거리에선 스트리트 패션을 비롯한 건축·음악 등 리얼한 현재의 문화가 쏟아진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두 개의 문화가 같은 시공간 안에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게 너무 재밌다.”
 
-한국인과 스페인 사람들의 기질이 많이 닮았다는데.
“친구들 중에 한국인이 여러 명 있는데 인간적이고 음악과 음식을 좋아하는 면이 나랑 닮았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직접 식사를 만들고 대접하는 걸 좋아하는 문화도 비슷하다.”
 
그는 늘 스케치북을 들고 다닌다고 했다. 인터뷰 중 가방에서 꺼내 보여준 노트만 해도 웬만한 소설책 하나 두께였다. 오늘 아침에도 커피를 기다리며 한국에서 얻은 영감을 그렸다고 했다. 그는 스케줄도 직접 손으로 그린 것을 갖고 다닌다.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일일이 그려서 일정과 메모를 정리한다. 그래야 스토리가 떠오르고, 그 스토리가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서울은 그의 노트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돼 있을까.
 
-앞으로의 계획.
“마드리드 호텔 인테리어 작업을 마친 후 런던의 새로운 호텔 프로젝트를 맡았다. 스페인 발렌시아에 있는 작은 게스트 하우스도 디자인에 들어갔다.”
 
-스스로 묘비명을 쓴다면 뭐라 적을 건가.
“지구에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었던 사람,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삶을 즐기고 즐겁게 살았던 사람이라고 적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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