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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볼보 삼킨 자동차 공룡의 패기

중국 지리차가 벤츠 모회사 다임러의 최대주주가 됐다. [사진 e.cn.miaozhen.com, dealer.bitauto.com]

중국 지리차가 벤츠 모회사 다임러의 최대주주가 됐다. [사진 e.cn.miaozhen.com, dealer.bitauto.com]

지난 2월 말 중국 자동차 업계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지리(吉利, Geely)차가 벤츠를 생산하는 다임러의 지분 9.69%를 9조 원대에 매입하며 최대주주가 된 것. 이는 중국 자동차 기업의 해외 투자액 중 가장 큰 규모다(이전 최고 기록도 지리차가 가지고 있었음). 지리차는 앞서 스웨덴 볼보자동차도 인수한 바 있다.
지리차는 2017년 판매량 기준 중국 6위 자동차 기업이다.
지난해 약 125만 대를 팔았다. 앞서 2016년에는 78만 여대를 팔아 10위에 올랐었다. 1년 만에 판매량이 59% 증가한 셈이다. 지리차의 판매 증가 속도는 중국 TOP 10 기업 중 최고 수준이다. 
[사진 왕상처스]

[사진 왕상처스]

이번 대륙의 CEO 주인공은 지리차를 창업한, 그리고 중국 기업인들이 존경하는 스타 기업가 리수푸(李书福) 회장이다. 
리수푸 지리차 회장. [사진 finance.sina.com.cn]

리수푸 지리차 회장. [사진 finance.sina.com.cn]

리수푸는 1963년 저장성 타이저우(台州)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에게 120위안을 꿔 카메라를 산 뒤 동네 곳곳을 다니며 사진 찍는 일을 했다. 반년 후 1000위안을 모아 사진관을 차렸다. 이후 폐기물에서 우연히 금과 은을 분리한 리수푸는 사진관을 닫고 아예 이 일에 매진했다.  
 
그러던 중 냉장고 부품이 돈이 된다는 걸 깨달은 그는 동업으로 냉장고 부품 공장을 차렸다. 꾸준한 연구개발로 창업 3년째에 증발기 기술을 확보하면서 그의 베이지화(北极花) 냉장고 부품공장은 연매출 5000만 위안(약 85억 원)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1989년 정부가 냉장고 지정 생산제를 실시하면서 리수푸는 좌절을 맛봤다. 그의 공장이 지정 기업 리스트에 들지 못한 것. 이에 리수푸는 모든 설비와 작업장을 현지 정부에 넘겨버리고 돌연 선전(深圳)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베이지화냉장고. [사진 auto.china.com]

베이지화냉장고. [사진 auto.china.com]

선전에서 그는 또 다시 돈이 될만한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장식자재였다. 곧바로 고향인 타이저우로 다시 돌아가 장식자재 공장을 세웠다. 마그네슘알루미늄 곡선패널과 아크릴판을 주로 생산하면서 큰 돈을 벌었다.  
 
수중에 돈이 들어오자 리수푸는 다른 기업인들처럼 사세 확장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이것저것 다양한 사업을 해보다 부동산 투자에 발을 담갔다. 1992년 하이난다오 부동산 투자 열기가 치솟자 리수푸도 수천만 위안을 투자했다. 하지만 곧 거품이 빠지면서 손해를 봤다. 리수푸는 이 일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앞으로 실업(實業)에만 종사하겠다고.  
“자동차? 생각보다 안 복잡한데?”
그렇다면 리수푸가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뭘까.  
 
리수푸는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다. 침대 밑에 진흙으로 만든 자동차가 한가득일 정도였다. 그가 냉장고 부품 사업을 접고 선전에서 공부할 당시 중국 국산차를 구입한 적이 있는데 차를 뜯어서 살펴보니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는 걸 알게됐다.  
 
리수푸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에는 아직 자동차 생산이 민간자본에 개방돼 있지 않은 때였다. 그래서 일단은 국유 오토바이 업체와 협력 관계를 맺고 이 업체의 허가증을 활용해 오토바이를 생산했다. 한 대를 만들 때마다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당시 중국 대륙에서는 아무도 생산하지 않던 대만식 스쿠터를 만들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판매량이 급증하자 허가증을 빌려주던 협력사가 가격을 올렸다. 리수푸는 이에 다른 오토바이 공장을 인수해 독립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리 위안징S1. [사진 e.cn.miaozhen.com]

지리 위안징S1. [사진 e.cn.miaozhen.com]

그리고 마침내 1996년 5월, 지리그룹을 창업했다. 운수대통을 뜻하는 다지다리(大吉大利)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의 오토바이 사업은 순항을 거듭했다. 1998년에는 35만 대를 팔아 중국 시장을 점령함은 물론 해외 수출까지 나섰다.  
 
이제 오래도록 꿈꿔왔던 자동차를 만들 때가 왔다고 리수푸는 생각했다. 내부 반대가 심했지만 이사회는 일단 해보고 안되면 그만두자며 리수푸의 뜻을 따랐다. 하지만 자동차를 생산하려면 별도의 허가증이 필요했는데, 리수푸는 참 대담하게도 저장성 린하이(临海)에 '오토바이 공장'을 세운 뒤 몰래 자동차를 제조했다.  
 
시작은 벤치마킹이었다. 우선 벤츠 여러 대를 구입해 참조했으며, 중국 회사 이치(一汽)가 생산한 고급 승용차 훙치(红旗)의 섀시, 엔진 등 주요 부품을 공수해온 뒤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으로 차체를 만들었다.  
 
1년 후 지리차는 정식으로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비웃었다. 자동차 시장은 국유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데다 제대로 된 자동차를 만들어본 적도 없는 민간기업이 뛰어들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 반응에 대해 리수푸는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 만드는 거 하나도 안 어렵다. 바퀴 4개에 소파 하나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자동차 생산 허가증 취득이라는 큰 난제에 봉착했다. 리수푸는 이리저리 관공서를 뛰어다녔지만 다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러던 중 쓰촨성 더양(德阳)에 파산 직전인 국유 자동차 기업이 있다는 걸 알게됐고, 그 즉시 1400만 위안에 인수했다. 하지만 이 회사가 보유한 허가증도 미니버스만 생산할 수 있어서 지리차는 정책을 아슬아슬하게 지키며 소형 자동차를 생산했다.
지리차 초기모델. [사진 촹예저비칸쯔쉰]

지리차 초기모델. [사진 촹예저비칸쯔쉰]

리수푸는 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끝내고 싶었다. 1999년 당시 중국 국가계획위원회 주임이 지리차를 시찰했는데, 이때 리수푸는 "제발 민영기업의 승용차 생산을 허가해주십시오. 제게 실패할 기회를 주세요!"라며 간곡히 호소했다. 리수푸의 염원은 이로부터 3년 뒤에 이뤄졌다. 2002년 11월, 지리차는 마침내 승용차 생산 허가증을 취득했다.  
 
지리차는 엔진 등 핵심 부품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부품 업체의 가격 갑질에 휘둘리기 싫었던 것. 2000년에는 중국 정부가 자동 변속기 개발을 위해 상하이자동차, 톈진자동차에 8억 위안을 투자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난 일이 있었다.  
 
리수푸는 이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톈진기어공장의 쉬빙콴(徐柄宽)을 데려오고 일본과 독일로부터 정밀장비와 가공센터를 들여와 자동 변속기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지리차는 자동 변속기 개발에 성공했다. 2008년에는 전 세계 최초로 BMBS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이 기술은 급정거 시 전복을 방지하고 제동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최첨단 기술이다.  
지리차는 처음엔 저가차를 표방했지만 나중엔 일본, 스웨덴, 한국으로부터 최첨단 현대식 설비를 들여오며 고급형 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가격이 오르자 당연히 매출이 뚝 떨어졌다. 한 달에 3만 대 팔리다가 5000~6000대로 급감했다. 하지만 쯔유젠(自由舰), 진강(金刚), 위안징(远景) 등 모델이 기존의 저가 모델을 조금씩 대체하면서 판매량이 다시 늘기 시작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하지만 중국 국산차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리수푸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외국의 훌륭한 기술과 브랜드를 사들이기 시작한 것. 2006년 영국 택시회사, 2009년 세계 2위 자동변속기 제조사 호주 DSI 인수를 시작으로 공격적인 해외 M&A(인수합병)에 나섰다.  
지리차 주요 해외 M&A 현황
[표 차이나랩]

[표 차이나랩]

특히 지리차가 포드로부터 볼보를 인수한 일은 '신의 한 수'로 평가된다. 현지에서는 이를 레노버가 IBM PC 사업부를 인수한 것과 다름 없는 일이라고 평하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아직 작은 기업에 불과했던 지리차가 볼보를 인수하기란 쉽지 않았다. 리수푸가 포드 고위 임원을 만났지만 그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집념의 리수푸는 모터쇼 등을 다니며 포드 관계자를 지속적으로 만나 그를 각인시켰고, 포드가 마침내 볼보를 매각하기로 결심했을 때 지리차는 우선협상자에 선정될 수 있었다.  
불굴의 리수푸, 2010년 볼보를 인수했다. 중국 역사상 첫 고급차 브랜드 인수건이다. 로스차일드, 딜로이트 등 기관을 포함해 200여명 규모의 협상팀을 꾸려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사진 news.163.com]

불굴의 리수푸, 2010년 볼보를 인수했다. 중국 역사상 첫 고급차 브랜드 인수건이다. 로스차일드, 딜로이트 등 기관을 포함해 200여명 규모의 협상팀을 꾸려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사진 news.163.com]

2010년 볼보 인수에 성공한 리수푸는 "지리는 지리, 볼보는 볼보" 경영 원칙을 강조했다. 다만 연구개발과 구매는 공동으로 진행해 시너지 효과를 냈다. 볼보의 기술 지원으로 지리차의 생산 기술이 크게 향상됐다. 디하오(帝豪), 보루이(博瑞), 보웨(博越) 등이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2016년 지리차는 76만 대 이상을 팔아치웠다. 전년보다 판매량이 50% 이상 늘었다. 매출과 순이익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2017년 상반기 기준 지리차는 8년래 최대 순이익 증가율(128%)을 달성했다.  
 
지리차가 승승장구하자 리수푸도 자연스레 중국을 대표하는 부호가 됐다. 2017년 포브스 중국 400대 부호 랭킹에서 재산 약 1100억 위안(18조 원대)으로 10위에 올랐다.  
 
현재는 벤츠의 최대주주가된 리수푸. 그가 중국, 더 나아가 세계 자동차 시장에 어떤 변혁을 일으킬지 기대된다.  
 
차이나랩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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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