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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붙여놓고 외웠더니 … 고문 3만 자 술술

31년 월급쟁이 생활 뒤 동네훈장으로 거듭난 석한남씨는 ’공부가 직업“이라고 했다. [사진 석한남]

31년 월급쟁이 생활 뒤 동네훈장으로 거듭난 석한남씨는 ’공부가 직업“이라고 했다. [사진 석한남]

우리 옛 문헌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서일까. 동혼재(東昏齋) 석한남(59)씨는 별명이 ‘동네훈장’이다. 금융업계에서 일하며 독학으로 한학과 고서화를 공부한 그는 암기와 암송을 비법으로 꼽았다.
 
“무조건 외웠습니다. 지금도 3만 자 정도의 고문(古文)을 외웁니다. 20여 년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눈으로, 입으로 되풀이 외우다보니 어느 날 번쩍 문리(文理)가 터지더군요.”
 
그의 집에 가본 사람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독학자의 집념에 놀란다. 사방 가득 외워야 할 문장이 붙어있어서다. 한문 초서(草書)를 읽어내는 탈초(脫草)에 능한 그의 비결은 벽을 뚫을 지경으로 오래 보고 익힌 그 지극정성에서 온다. 부처님 친견하는 마음으로 글자를 모시면 오리무중이던 초서가 뜻을 드러낸다.
 
“세월에 밀려 푸대접받는 고서(古書)의 세계에 빠진 뒤, 말 그대로 가산을 탕진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옛 간찰(簡札)과 시고(詩稿) 등 1000여 점을 모았는데 제가 발품 팔아 소장한 옛 자료의 가치를 드러내자니 직접 번역하고 고증하는 수밖에 없었죠. 암호 같던 글자, 짐작조차 힘들던 문장 하나하나를 비밀의 문을 열 듯 풀 때마다 밀려오는 희열에 다시 태어난 듯 했습니다.”
 
그는 최근 소장해 온 고문헌 133종 168점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탁했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자 당대 손꼽히는 서예가인 안평대군 이용(1418~53)이 1446년 쓴 ‘안평대군 행초서 십 폭 병풍’, 집현전의 대표 학자였던 최항(1409~74)의 『불설무량수경』, 조선 전기에 학자로 활동한 조말손의 소장인(所藏印)이 찍혀있는 초주갑인자본(1434년 조선조에서 세 번째로 만든 금속활자) 『사기』 등 보물급 희귀 자료가 많다. 그의 호를 딴 ‘동혼재 장서’는 소장인이 분명한 점이 특징으로 그만큼 확실한 이력과 근거를 지녔다.
 
“소장인을 보면서 선조들의 인장 연구를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옛 인장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됐고 그 인연으로 기탁도 결심하게 됐지요. 앞으로 이 자료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오는 10월 2일부터 본관 1층 전시실에서 ‘소장인으로 만나 본 옛 문헌의 세계’라는 주제로 동혼재 기탁 기념 특별전시를 열 예정이다. 안평대군의 병풍에 찍힌 대형 인장에는 ‘폐문즉시심산(閉門卽是深山), 독서수처정토(讀書隨處淨土)’, 즉 ‘문을 닫으니 곧 깊은 산이요 책을 읽는 곳마다 정토세상이네’라는 문구가 새겨져 안평대군의 심성을 느끼게 한다.
 
“『명문가의 문장』 『다산과 추사, 유배를 즐기다』 두 권 책을 쓰면서 햇빛 볼 기약 없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우리 고문서의 운명을 자주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깨워 새 생명을 불어 넣기 위해 스스로를 유배시키는 각오로 동네훈장이 되겠습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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