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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초부터 미투에 휘청이는 상아탑...문제 교수 강의 휴강하기도

개강 초 대학가에서 ‘미투’ 폭로가 이어지면서 수업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그동안 숨겨진 교수들의 성폭력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일부 강의가 휴강하는 경우도 있다. 학사 일정 차질에도 불구하고 대학가에서는 "폐쇄적인 울타리 안에서 고여있던 썩은 관행을 도려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루에만 미투 폭로 대상 교수 3명 나와
교수들 줄 사직…강의 차질 불가피해져
교수가 취업과 진로에 막대한 영향력 행사

지난 19일 한국외대 페이스북 익명 커뮤니티 대나무숲에 올라온 미투 폭로 게시글. [한국외대 대나무숲 캡쳐]

지난 19일 한국외대 페이스북 익명 커뮤니티 대나무숲에 올라온 미투 폭로 게시글. [한국외대 대나무숲 캡쳐]

지난 19일 하루에만 대학가에서는 미투 폭로의 가해자로 지목된 세 명의 교수가 사직 의사를 밝혔다. 앞서 한국외대 익명 커뮤니티 ‘대나무숲’에는 한 교수가 수년간 “모텔에 가자”고 하는 등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증언이 또다시 나왔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해당 교수는 “모든 직책에서 사퇴하고 반성하는 삶을 살겠다”는 사과문을 공개했다. 
 
같은 날 동덕여대에서는 강의 도중 ‘미투 폄하’ 발언을 하고 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강단을 떠나겠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어 세종대에서는 지난달 페이스북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김태훈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각 학교 측은 진상조사를 위해 교수의 사직서 처리를 보류한 상태다.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19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미투’ 비하 관련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19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미투’ 비하 관련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대학 측은 미투 폭로가 개강 초부터 끊임없이 터져 나오면서 비상이 걸렸다.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들이 갑작스럽게 사퇴하면서 당장 수업을 담당할 교수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성 추문에 휩싸인 대학은 명지전문대, 서울예대, 서울시립대, 연세대, 서울대, 제주대, 가천대, 세종대, 한국외대, 동덕여대, 원광대, 이화여대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일주일 사이 두 건의 미투 폭로가 이어진 한국외대 관계자는 “학기가 시작하고 강의를 대신 맡을 교수를 새로 찾는 게 어려워 1주일 휴강 후 보강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세종대 관계자는 “교수가 공석이 된 수업은 다른 교수가 대신해서 진행할 예정이다. 추가로 최근 벌어지는 사태들과 해외 사례까지 참고해 교수들에게 배포할 매뉴얼 작성할 것”이라고 전했다.
 
학생들은 교수들의 오랜 성 추문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총학생회 차원에서 미투 피해 사례 접수하거나, 피해자 지지하는 연대성명 등 공동대응에도 나섰다. 앞서 지난 6일 서울대와 중앙대 등 전국 대학생 단체와 개인 1000여명이 “학생 스스로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생 사회를 만들겠다”는 ‘3·8 대학생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동안 교수를 견제하고 처벌할 교내 견제기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슬아 전국대학원생노조 위원장은 “학교가 주관하는 인권센터 설치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운영돼야 한다. 권력을 가진 가해자와 동일한 위치에 있는 교수들이 인권센터를 담당하는 것은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들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성폭력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하얀 장미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들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성폭력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하얀 장미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잇딴 미투 폭로에 대해 학생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변화로 여기는 분위기다. 세종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이희정(26)씨는 "개강을 해서 다시 만난 친구들과도 ‘미투’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 이제는 학생들끼리 단순히 언론보도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 과거에 들었던 교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나 경험 공유한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말레인도네시아어과에 재학 중인 정모(20)씨는 “미투 운동으로 인해 강의 도중에 교수가 스스로 ‘미투’ 걸릴지 모른다는 식의 발언을 할 정도로 조심스러워 졌다. 지금은 미투에 거론된 학과 학생들은 해당 소속을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학 사회의 고질적인 폐쇄성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교수 한 명이 대학원생들의 진로를 좌우하는 등 권력 구조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같은 전공으로 얽힌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등으로 얽힌 도제식 구조가 앞서 미투 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연극계의 카르텔과 닮았다는 지적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는 "학생과 교수의 관계는 학위 취득뿐 아니라 진로·미래까지 지도교수가 영향을 미쳐 대학원생은 성·노동 착취당하고 이를 폭로할 수 없는 구조”라며 “대학교수가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 해임, 파면 같은 중징계를 내린다는 것을 선례로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최규진·정진호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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