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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가 외톨이 죽여" 1년간 동료도, 가족도 몰랐다

동료를 살해하고 시신을 쓰레기 소각장에 버린 혐의로 입건된 환경미화원 이모(50)씨가 20일 전주 완산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준희 기자

동료를 살해하고 시신을 쓰레기 소각장에 버린 혐의로 입건된 환경미화원 이모(50)씨가 20일 전주 완산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준희 기자

"피해자 가족들에게 죄송합니다."
20일 오전 11시45분 전북 전주 완산경찰서. 빨간 점퍼와 청바지 차림의 남성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경찰서 입구에 들어섰다. 두 손은 수갑을 찬 채였다.

동료 살해한 50대 환경미화원 구속영장
1년 전 쓰레기로 위장해 소각장에 버려
"가발 잡아당겨 홧김에 범행했다" 주장
피해자 돈 1억4000만원 유흥비 등 탕진
1년간 피해자 행세하며 가족·동료 속여
경찰 "금전 노린 계획 범죄 가능성 무게"

 
동료를 살해한 후 시신을 쓰레기 소각장에 버린 혐의(살인·사체유기)로 이날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은 완산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이모(50)씨다.
 
이씨는 '왜 살해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우발적인 범행이 아닌 것 같다'고 묻자 피해자 유족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자백한 이유는 뭔가' '시신을 훼손했나' 등의 물음에는 "죄송합니다"만 연발한 후 조사실로 들어갔다.
 
동료를 살해하고 시신을 쓰레기 소각장에 버린 혐의로 입건된 환경미화원 이모(50)씨가 20일 전주 완산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준희 기자

동료를 살해하고 시신을 쓰레기 소각장에 버린 혐의로 입건된 환경미화원 이모(50)씨가 20일 전주 완산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준희 기자

이씨는 지난해 4월 4일 오후 6시30분쯤 전주시 완산구 자신의 원룸에서 동료 Y씨(59)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입건됐다. 이씨는 경찰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Y씨가 내 가발을 잡아당기며 욕을 해 홧김에 범행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범행 이튿날인 4월 5일 오후 6시쯤 원룸에 둔 Y씨의 시신을 50L짜리 검정 비닐봉투 15장으로 겹겹이 쌌다. 상반신과 하반신에 각각 비닐봉투를 씌운 뒤 다시 옷가지와 이불로 시신을 감싸 100L짜리 종량제봉투에 넣었다. 이씨는 일반 쓰레기로 위장한 Y씨의 시신을 평소 자신이 모는 청소차가 지나가는 한 초등학교 앞 쓰레기장에 갖다 놨다. 다음날(4월 6일) 평소처럼 출근한 이씨는 이날 오전 6시10분쯤 다른 환경미화원 동료들과 함께 Y씨의 시신이 담긴 봉투를 차량에 실어 완산구 상림동 소각장에 버렸다.
 
동료를 살해하고 시신을 쓰레기 소각장에 버린 혐의로 입건된 환경미화원 이모(50)씨의 도주 장면이 찍힌 CCTV 화면. [사진 전북경찰청]

동료를 살해하고 시신을 쓰레기 소각장에 버린 혐의로 입건된 환경미화원 이모(50)씨의 도주 장면이 찍힌 CCTV 화면. [사진 전북경찰청]

그러나 이 사건은 1년간 아무도 몰랐다. 노숙자도 아닌 지자체 소속 공무원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지만 동료들은커녕 가족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외톨이가 외톨이를 죽였다.' 이 사건을 압축하는 말이다. 두 사람은 환경미화원으로 일한 2003년부터 15년 가까이 알고 지낸 '단짝'이었다고 한다. 둘다 이혼한 데다 가족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대인관계가 원만치 않아 회사 동료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Y씨의 부재(不在)에 동료들은 특별히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씨는 이런 Y씨의 환경을 악용해 1년간 Y씨 행세를 하며 Y씨 가족과 금융기관까지 감쪽같이 속였다.  
 
동료를 살해하고 시신을 쓰레기 소각장에 버린 혐의로 입건된 환경미화원 이모(50)씨의 도주 장면이 찍힌 CCTV 화면. [사진 전북경찰청]

동료를 살해하고 시신을 쓰레기 소각장에 버린 혐의로 입건된 환경미화원 이모(50)씨의 도주 장면이 찍힌 CCTV 화면. [사진 전북경찰청]

조사 결과 이씨는 범행 전 2015~2016년 세 차례에 걸쳐 Y씨에게서 8750만원을 빌렸다. 범행 후에는 Y씨 카드 8개로 5100만원을 결제하고, Y씨 명의로 650만원을 대출받았다. 경찰은 이씨가 Y씨로부터 빌리거나 Y씨인 양 쓴 1억4000만원 대부분을 유흥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는 "주식을 하느라 빚이 많아 (Y씨에게) 돈을 빌렸다. 일부는 갚고 5000만원가량 남았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범행을 숨기기 위해 치밀한 연극도 꾸몄다. Y씨를 살해한 지 40여 일 뒤인 지난해 5월 16일 경기도의 한 병원장 직인을 위조해 Y씨가 허리디스크가 걸린 것처럼 진단서를 첨부해 완산구청에 Y씨 이름의 휴직계를 팩스로 보냈다. 구청 측은 의심 없이 휴직 신청을 받아들였다.
 
환경미화원 이모(50)씨에게 살해된 동료 Y씨(59)가 메던 가방. 경찰 압수수색 결과 이씨의 차량에서 발견됐다. [사진 전북경찰청]

환경미화원 이모(50)씨에게 살해된 동료 Y씨(59)가 메던 가방. 경찰 압수수색 결과 이씨의 차량에서 발견됐다. [사진 전북경찰청]

이씨는 Y씨의 두 딸에게도 정기적으로 용돈을 부쳤다. Y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Y씨의 딸들과 '아빠는 잘 지낸다'는 문자를 주고받으며 60만원씩 세 차례에 걸쳐 180만원을 계좌로 입금했다. Y씨가 평상시 전처가 데리고 있는 딸들에게 용돈을 보낸 사실을 알던 이씨가 범행을 감추려고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하지만 Y씨가 살던 원룸 우편함에 쌓인 카드 사용 내역서와 대출 독촉장을 수상히 여긴 Y씨 딸이 지난 5일 "우리 아빠는 한꺼번에 카드를 많이 쓸 사람이 아니다"며 경찰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꼬리가 잡혔다. 카드 내역서에는 전주의 한 유흥주점에서 한 번에 200만원을 쓴 기록이 나왔다. 앞서 Y씨의 친부는 지난해 12월 "아들(Y씨)이 집을 나간 지 오래됐는데 연락이 안 닿는다. 안전한지 확인하고 싶다"고 112에 신고했지만, 이때까지 경찰은 단순 실종 사건으로 파악했다.
 
환경미화원 이모(50)씨가 동료 Y씨(59)를 살해한 뒤 범행을 감추기 위해 위조한 병원 직인. [사진 전북경찰청]

환경미화원 이모(50)씨가 동료 Y씨(59)를 살해한 뒤 범행을 감추기 위해 위조한 병원 직인. [사진 전북경찰청]

경찰은 Y씨 카드가 사용된 유흥주점 주인에게 탐문한 결과 "Y씨는 온 적이 없다. 다만 완산구청 환경미화원으로 대머리인 남성이 자주 들렀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리고 지난 7일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경찰 출석을 요구했다. 이상한 낌새를 챈 이씨는 그대로 달아났고, 17일 인천의 한 PC방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이후에도 Y씨의 죽음에 대해 시치미를 떼던 이씨는 이튿날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앞두고 "내가 Y씨를 죽였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앞서 지난 9일 Y씨의 원룸에서 Y씨가 예전에 쓰던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전화에는 생전 Y씨의 목소리가 녹음돼 있었다. 경찰은 이씨가 Y씨 이름으로 대출을 받을 때 금융기관에서 녹음한 목소리와 비교해 당시 대출 상담을 한 사람이 Y씨가 아니라 이씨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씨가 Y씨의 죽음과 연관돼 있다는 정황이었다. 하지만 물증이 없던 경찰은 일단 사문서 위조 혐의로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지난 13일 이씨의 원룸에서 이씨가 위조한 진단서 등을 확보했다. 이씨 차량에선 Y씨의 가방과 혈흔이 묻은 Y씨 지갑 등이 나왔다.  
 
이씨는 살인 및 사체 유기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살해 동기에 대해선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환 전주 완산경찰서 형사과장은 "피의자가 생전 피해자와 거액의 금전 관계가 있었던 만큼 계획적인 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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