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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치산, 시진핑과 문화혁명 때 밤샘 토론 인연 … 50년 뒤 권력 2인자로

왕치산. [AP]

왕치산. [AP]

왕치산(王岐山·사진) 전 중국 공산당 기율검사위 서기가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명실상부한 2인자가 됐다. 지난해 10월 당 대회에서 연령제한으로 상무위원직을 내려놓고 평당원이 된 그가 17일 국가부주석으로 선출되면서 화려하게 귀환했다.
 
시베이(西北)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사회과학원에 들어간 왕 부주석은 중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농촌경제·금융으로 연구 분야를 바꾼 뒤 경제관료의 길을 걷게 된다. 2004년에는 들불처럼 번지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을 퇴치하라는 특명과 함께 베이징 시장대행으로 긴급 투입돼 한 달 만에 추가 환자 발생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 ‘소방대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부총리 시절인 2008년에는 대규모 부양책으로 중국이 세계 금융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역량을 발휘했다.
 
2012년 시진핑 집권과 함께 그는 기율위 서기를 맡아 반부패 드라이브를 총괄 지휘했다. 앞으로 국제적 인맥을 활용해 외교 분야로 영역을 넓힐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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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과의 인연은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대혁명 기간 중 학생들을 산간벽지로 내려보내 농민들과 생활을 함께 하도록 한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 때 두 사람은 20여㎞ 떨어진 이웃 마을에 배치됐다. 10대 청소년이던 시진핑이 다섯 살 위인 왕치산의 숙소를 찾아가 인생상담과 독서 토론을 하며 밤을 새운 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왕치산은 이번 전인대 기간 중 7명의 상무위원 다음 순위의 예우를 받았다. 홍콩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10월 상무위원에서 물러난 뒤에도 계속 상무위원 회의에 출석했다. 사실상 8명째의 상무위원 역할을 해 온 셈이다. 그의 권력은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능가한다는 중론이 국가부주석 취임으로 더욱 힘을 얻게 됐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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