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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보다 위스키 한 잔? 요즘 청춘은 무엇을 꿈꾸는가

영화 ‘소공녀’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30대 주인공 미소(이솜 분). [사진 CGV아트하우스]

영화 ‘소공녀’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30대 주인공 미소(이솜 분). [사진 CGV아트하우스]

취직하기 위해, 집을 얻기 위해 좋아하는 것을 하나둘씩 포기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원래의 나는 모두 깎여 나가고 무색무취한 회색 인간만 거기 남아 있다. N포 세대들이 느끼는 서글픈 아이러니다. 전고운 감독(33·사진)의 장편 데뷔작 ‘소공녀’(22일 개봉)는 바로 N포 세대의 고단한 현실을 다룬 영화다.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하루 4만5000원을 버는 서른한 살 미소(이솜 분)는 사랑하는 담배와 하루 한 잔 위스키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집을 포기한다.
 
개봉을 앞두고 이 영화를 제작한 창작집단 광화문시네마의 공동대표이며 ‘소공녀’의 연출자인 전 감독을 만났다. 장편 연출은 ‘소공녀’가 처음인 전 감독은 “어릴 땐 제가 미소 같았는데 어느새 현실과 타협하며 살고 있더라”며 “텐트 치고 살면 뭐 어때, 좋아하는 거 하겠다며 ‘끝까지 가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고운 감독.

전고운 감독.

미소는 주류 한국영화에선 낯선 캐릭터다.
“남자가 아닌 여자인 데다, 아직도 금기시되는 담배 피우는 여자가 주인공이다(웃음). 그래서 캐스팅이 잘될까, 투자는 될까 걱정이 많았다. 근데 걱정만 하면 어떤 다양한 이야기도 할 수 없겠더라. 용기를 내서 순제작비 2억 원대로 독립영화처럼 찍었다. 배우 이솜씨가 큰 힘이 돼줬다.”
 
왜 하필 담배와 위스키였나.
“다들 어딘가 중독돼 살고 있는데,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담배와 위스키는 여성이 했을 때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3년 전 담뱃값 인상의 충격도 있었다.”
 
주인공을 가사도우미로 설정한 이유는.
“일당직 중 여성이 가장 구하기 쉬운 일이다.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청소에 대한 저의 존경심으로 넣게 됐다.”
 
무엇이 되겠다는 꿈 대신 현실의 만족을 추구하는 데 충실한 미소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른바 소확행(小確幸)을 추구하는 요즘 청춘을 대변한다. 전 감독은 “어릴 땐 ‘꿈을 꿔라’‘꿈이 중요하다’ 가르쳐놓고 성인이 되고 보면 정작 꿈꿀 여유를 허락지 않는 이 사회가 너무 이상해 보였다”며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람답게 사는 게 어떤 것인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삭막한 서울의 풍속도로도 읽힌다. 링거액까지 맞아가며 일하는 커리어우먼, 20년 만기 대출로 아파트를 마련했더니 이혼 위기를 맞은 새신랑 등 누군가에게 ‘집’은 족쇄다. 미소를 가장 못마땅해하는 건 가장 부유한 친구 정미(김재화 분)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전 감독은 경북 울진 출신. 중학교 때 사춘기를 ‘격하게’ 겪고 엄격한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기숙사가 있는 포항 명문고에 진학했다. 숨 막히는 학교생활 에서 그에게 위로가 돼준 게 영화였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전 감독이 남편 이요섭 감독(‘범죄의 여왕’) 등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들과 문을 연 광화문시네마는 ‘소공녀’를 끝으로 시즌1을 마무리한다. 광화문시네마는 안재홍 등 새 얼굴을 발굴하고 신선한 소재의 영화로 젊은 관객과 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이 모두 만족스럽진 못했다. 전 감독은 “하고 싶은 걸 찾아내 그걸 해내는 게 제 꿈이었는데, 점점 더 그게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내가 재밌는 걸 관객이 재밌어할 때 선물을 돌려받는 기분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영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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