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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68만원’ 고문으로 물러난 홍콩 최고 부자 리카싱

리카싱

리카싱

홍콩 최고의 갑부,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해 ‘재물의 신’ 또는 ‘수퍼맨’으로 불리는 기업인. 리카싱(李嘉誠·사진) 청쿵(長江)그룹 회장이 은퇴를 선언했다. 1928년 생인 그는 오는 7월 만 90세 생일을 앞두고 있다.
 
리카싱은 16일 홍콩에서 열린 실적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5월 주주총회에서 모든 경영자 직위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남겠다”고 밝혔다. 청쿵(CK)허치슨홀딩스와 CK애셋홀딩스 최고경영자(CEO) 후계자로는 장남 빅터 리(53) 부회장을 지명했다. 리 회장은 “내가 12살 때 전쟁을 피해 홍콩으로 일자리를 찾아온 지 78년이나 됐다”라며 “은퇴 뒤엔 자선사업에 더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연간 고문료로 5000위안(약 68만원)을 받기로 했다. CEO로서 받는 월급 역시 5000위안밖에 되지 않는다. 리 회장은 검소한 생활습관으로 유명하다. 10년이 훨씬 지난 양복을 즐겨 입고 3만원 짜리 시계를 착용한다. 식사는 직원들과 똑같이 줄 서서 회사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리 회장은 자산이 360억 달러(포브스 집계)에 달하는 홍콩 최고의 부자다. 세계 순위로는 23번째다. 그는 미디어, 호텔, 항만, 식료품점, 정유 사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하루라도 리 회장 기업의 제품·서비스를 소비하지 않고는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다.
 
중국 광둥성 출신인 리카싱은 12세 때 중일전쟁을 피해 가족과 홍콩으로 피란을 왔다. 15세에 아버지 사망으로 소년가장이 된 그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22세인 1950년 7000달러를 들여 ‘청쿵실업’이란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차렸다. 그가 만든 플라스틱 조화(가짜 꽃)가 큰 인기를 끌면서 큰돈을 벌었다.
 
그는 이 돈으로 홍콩의 땅을 사들였다. 홍콩 사람들이 동남아시아로 떠나면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던 시기였다. 리 회장은 홍콩 곳곳에 아파트를 짓고 빌딩을 세웠다. 1970년대 들어 홍콩 경제가 살아나자 부동산 가격은 몇 배로 뛰었다. 1979년 리카싱은 영국계 항만기업인 허치슨왐포아를 인수했다. 화교 출신 기업인이 영국계 기업을 인수한 최초의 사례로 주목을 끌었다. 인수는 적중했다. 홍콩이 아시아 물류의 허브로 떠오르면서 홍콩항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허치슨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리 회장은 1980년대 초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본격화하자 중국에 진출했다. 덩샤오핑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상하이(上海) 컨테이너 터미널, 광저우(廣州)-주하이(珠海) 고속도로 건설 등을 맡았다. 선전 (深?) 매립지 개발을 시작으로 부동산 사업도 활발히 벌였다. 출판·방송·인터넷까지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갔다.
 
2011년부터 리 회장은 중국과 홍콩에서 부동산 자산을 줄여 왔다. 2015년엔 대대적인 사업개편을 하면서 신규 법인을 모두 영국령인 케이맨 제도에 등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중국 본토 언론의 비판은 거셌다. 일각에서는 그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사이가 좋지 않아 중국을 떠난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리 회장은 중국 내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허스키에너지의 천연가스 프로젝트를 포함해 중국 해안 지역에만 400억 위안(약 6조80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리 회장이 은퇴를 선언했지만 그가 완전히 무대에서 퇴장하진 않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기자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후계자인 빅터 리 부회장을 지목하며 미래 투자계획에 대해 질문하자 리 회장은 “내가 대신 답하겠다”며 아들의 답변을 막았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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