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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리, 연기 고통스러울 때 떠올리는 '이것'

자연주의와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힐링 영화 '리틀포레스트' 주연배우 김태리.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자연주의와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힐링 영화 '리틀포레스트' 주연배우 김태리.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시골 살이 성장 영화 ‘리틀포레스트’(감독 임순례)가 개봉 보름 남짓 만인 17일 손익분기점 100만 관객을 넘어 130만 관객을 돌파했다. ‘리틀포레스트’는 도시 생활에 지친 20대 혜원(김태리 분)이 시골 고향집에 돌아가 소꿉친구들과 농사 지으며 제철 음식을 해먹는 사계절 여정을 담아낸다. ‘힐링 영화’로 소문 나며 10번 넘게 본 N차 관람객도 나왔다.
개봉에 앞서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김태리(28)와의 시시콜콜한 문답을 전한다. 인터뷰를 위해 촬영 틈틈이 기입한 노트를 훑어보고 왔다는 그는 팔을 커다랗게 휘저으며 지난해 사계절을 보낸 현장을 돌이켰다. 호쾌한 미소 뒤에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엄격한 면도 있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현장 스틸.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영화 '리틀 포레스트' 현장 스틸.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경북 의성 근처 고택에서 지난해 1월부터 계절이 바뀔 때마다 2~3주씩 찍었다고. 가장 기억에 남는 계절은.
“사계절을 다 좋아한다. 그래서 시나리오에 더 끌렸다. 겨울의 설산, 봄은 옷을 얇게 입을 수 있어서, 여름은 빗소리 듣는 걸 좋아한다. 가을은 하늘이 높아서 좋다.”
 
전작 ‘아가씨’ ‘1987’이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듯한 속도감이었다면, ‘리틀포레스트’는 더딘 호흡으로 천천히 자연에 젖어 들게 만드는 영화다.  
“더 느렸어도 좋았을 것 같다. 매 계절 자연을 담은 인서트컷도 짧게만 들어간 게 아쉬울 만큼 더 오래 보고 싶었다.” 

 
현장도 여느 때와 달랐나.  
“차이가 컸다. 스태프 규모가 보통 상업영화의 5분의 1 정도였다. 긴 시간 함께해서 가족처럼 뭉쳤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현장에서 임순례 감독.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영화 '리틀 포레스트' 현장에서 임순례 감독.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촬영 일과는 어땠나.  
“숙소가 혜원집 세트에서 한 30~40분 떨어져 있었는데, 읍내도 아니고 외진 데였다. 보통 새벽 다섯 시에 비몽사몽 일어나 아침 먹고, 12시간 촬영하면 숙소로 되돌아와 고립돼 있었다(웃음). 가끔 경북 칠곡으로 도시 바람을 쐴 겸 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덩케르크’ ‘공조’를 봤다. 대선 개표 중계방송도 같이 봤다.”
 
시골살이가 능숙해졌다 싶었던 순간은.
“감도 잘 따고, 밤도 잘 땄다. 뭘 하든 ‘저 잘해요’ 맨날 이렇게 말하는 게 습관이다. 항상 자제하려고 하는데, 정말 감은 현장에서 제가 제일 잘 땄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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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이 ‘주변에 에너지를 주는 스타일이다. 자연스러움을 타고났다’ 칭찬하던데.  
“저랑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그건 저 자신을 위한 행동이 그분들을 편안하게 만든 것 같다. 어색하면 제가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는다. 그래서 ‘뭐 어때’ 하며 잘 허무는 편이다. 과하지 않은 선에서 말도 일부러 더 편하게 하려 한다.”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소꿉친구 역 진기주, 류준열과 김태리(가운데). [사진 메가박스플러스엠]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소꿉친구 역 진기주, 류준열과 김태리(가운데). [사진 메가박스플러스엠]

혜원과 자신이 닮았다 했는데.  
“독립적이고 저 스스로 삭이고 혼자 어떻게든 해결해보려는 성격이 닮았다. 대사도 내 말투에서 많이 차용했다. 친구들과 있을 때의 혜원은 평소 나보다 살짝 더 밝다.”
 
‘1987’의 털털한 연희와도 닮은 듯 느껴졌다.  
“비슷한 지점은 있을 수밖에 없다. 인물들이 나로부터 시작되니까. 연희가 실제 87년도 시대의식 앞에 고민하는 인물이라면, 혜원은 지금의 청춘과 닮아있다. 내가 중요한데, 내가 잘 살아야하는데, 너무 등 떠밀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쭉쭉 나가며 불안감에 떤다. 이게 내가 바라는 삶이 맞나, 자꾸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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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 현장 스틸.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영화 '리틀 포레스트' 현장 스틸.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혜원 같은 고민으로 불안해본 적 있나.  
“살면서 누구든 마주치는 보편적인 고민이다. 저는 모든 작품을 할 때마다 밑바닥에 한 번쯤 처박힌다. 기억력이 되게 나쁘다. (연기의) 고통이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나는 왜 이 인물을 이해하지 못하게 태어났는가. 그날 촬영 때 실수, 더 잘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자괴감, 더 거대하게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붕괴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괴롭다. 도망치고 싶다! 이런 고통이 마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인 양 생생하게 다가온다. 친구한테 상담했더니 ‘너 연극할 때부터 그랬어. 근데 다 지나가잖아’ 그러더라.”
 
‘리틀포레스트’를 촬영하며 고통스러웠던 적은.  
“혼자 등장하는 장면이 많이 지쳤다. 혼자 연기하는 게 여러모로 시도해볼 수 있어서 더 낫다는 배우도 있는데, 저는 상대 배역이 있어야 내가 지금 뭔가를 해나가고 있구나, 실감이 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마당의 텃밭을 일구는 혜원.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마당의 텃밭을 일구는 혜원.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첫 원톱 주연작이다. 호흡 조절은 어떻게 했나.  
“무심하게 흐르는 듯한 영화지만 인물은 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걸음 떨어져 전체를 보기도 했다. 시나리오는 두꺼우니까 한눈에 보이게끔 단순하게 리스트를 정리해두면 꺼내보면서 연기하기 편하다. 한 작품 할 때마다 노트를 한 권씩 만들어서 쓴다. 시나리오를 쭉 보며 느낀 궁금증과 그 답을 찾으려는 노력들, 오늘 부족했던 점을 쓰기도 한다. 촬영하면서 대사나 장면 순서가 조금 바뀌었는데, 이 장면은 빼는 게 좋겠다든지 엔딩도 다같이 고민했다.”
 
다른 버전의 엔딩이 있었나.  
“계속 바뀌었다. 여러 버전을 찍었다. 혜원이 집으로 돌아와 내가 살 집이라는 의미로 새롭게 고향집 지붕을 고치는 버전도 있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친구들 뭐하는지, 새로 이사온 사람들 돌아보며 마을 이모저모 살피는 엔딩도 있었다. 원작 느낌을 살려서 마을회관 팔순잔치를 같이 준비하는 걸로 끝낸 적도 있는데 감독님이 그걸 꽤 마음에 들어 하셨는데 결국엔 편집됐다.”
영화에서 남편이 죽고 혼자 혜원을 키운 엄마(문소리 분)는 혜원이 수능을 치고 얼마 안 돼 "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는 편지만 남기고 사라진다.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영화에서 남편이 죽고 혼자 혜원을 키운 엄마(문소리 분)는 혜원이 수능을 치고 얼마 안 돼 "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는 편지만 남기고 사라진다.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결국은 혜원이 살면서 외면하고 미뤄왔던 문제와 마주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미뤄둔 숙제 같은 고민이 있나.  

“저는 억지로라도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별생각 없이 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사서 힘들게 산다.”
 
혜원의 고향집처럼 당신이 어딘가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구체적인 공간은 (잠시 망설이다) 없는 것 같다. 근데 추상적으로라면, 그냥 언제든 이 모든 일을 접고 스톱할 수 있다, 스톱버튼을 내가 쥐고 있다. 그게 저한테는 숨통 트이는 일인 것 같다.”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촬영 막간 혜원의 반려견 오구와 김태리. 강아지 때 구조된 유기견을 구정아 프로듀서가 입양했다. [사진 메가박스플러스엠]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촬영 막간 혜원의 반려견 오구와 김태리. 강아지 때 구조된 유기견을 구정아 프로듀서가 입양했다. [사진 메가박스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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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아가씨’가 2년 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에 이어, 올 초 영국 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해외 러브콜도 있었을 듯한데.  
“해외 진출은 영어가 중요한데, 아직은 이른 것 같다.”
올 여름 tvN에서 방영할 ‘미스터 선샤인’으로 첫 드라마 주연을 맡았는데.  
“제가 신인이고 처음인데 이런 큰 드라마를 할 수 있을까, 불안감을 내비쳤을 때 이응복 감독님과 김은숙 작가님이 워낙 자신감 있어 하셨다. 그게 가장 큰 출연 동기가 됐다.”
 
‘리틀포레스트’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로 데뷔 후 바뀌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또 매순간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좀 더 나 자신한테 혹독해지는 것 같다. 그게 변화라면 변화다. 예전에는 훨씬 관대했다. 요즘은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한다. 나 스스로를 점검할 줄 아는 태도를 유지하고 싶다.”
 
자신을 점검할 때 가장 경계하는 것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내가 다 이해한다는 듯이 아는 척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말을 아끼려 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주연배우 김태리 제공 사진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영화 '리틀 포레스트' 주연배우 김태리 제공 사진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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