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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갑부 리카싱의 은퇴…"연봉 68만원 고문으로 물러나"

16일 실적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은퇴를 선언한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 [AP 연합뉴스]

16일 실적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은퇴를 선언한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 [AP 연합뉴스]

홍콩 최고의 갑부,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해 ‘재물의 신’ 또는 ‘수퍼맨’으로 불리는 기업인. 리카싱(李嘉誠) 청쿵(長江) 그룹 회장이 은퇴를 선언했다. 1928년 생인 그는 오는 7월 만 90세 생일을 앞두고 있다.
 
리카싱은 16일 홍콩에서 열린 지난해 실적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5월 열릴 주주총회에서 모든 경영자 직위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남겠다”고 밝혔다. 청쿵(CK)허치슨홀딩스와 CK애셋홀딩스를 이끌 후계자로는 장남 빅터 리(53) 부회장을 지명했다. 리 회장은 “내가 12살 때 전쟁을 피해 홍콩으로 일자리를 찾아온 지 78년이나 됐다”며 “은퇴 뒤엔 자선사업에 더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연간 고문료로 5000위안(약 68만원)을 받기로 했다. CEO로서 현재 받는 월급 역시 5000위안밖에 되지 않는다. 리 회장은 검소한 생활습관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0년이 훨씬 지난 양복을 즐겨 입고 3만원 짜리 시계를 착용한다. 식사는 직원들과 똑같이 줄 서서 회사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리 회장은 자산이 360억 달러(포브스 집계)에 달하는 홍콩 최고의 부자다. 세계 순위로는 23번째다. 그가 이끄는 청쿵그룹은 미디어, 호텔, 항만, 식료품점, 정유 사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하루라도 리 회장 기업의 제품·서비스를 소비하지 않고는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다. 홍콩 사람들은 청쿵이 지은 아파트에 살면서 청쿵의 전기회사가 제공하는 전기를 쓰고, 청쿵이 운영하는 식료품점에서 장을 본다.  
 
플라스틱 꽃 제작으로 돈 벌어 
리카싱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중국 광둥성 출신인 그는 12세 때 중일전쟁을 피해 가족과 홍콩으로 피란을 왔다. 15세에 아버지의 사망으로 소년가장이 된 그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2세인 1950년 그는 종잣돈 7000달러를 들여 ‘청쿵실업’이란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차렸다. 사업이 번창한 건 플라스틱 조화(가짜 꽃) 제조에 손을 대면서부터였다. 정기구독하던 미국 전문잡지 ‘모던 플라스틱’의 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직접 이탈리아로 떠나 조화 제작 기술을 배웠다. 조화는 불티나게 팔렸고 큰돈을 벌었다.  
 
리 회장은 이 돈으로 홍콩의 부동산과 땅을 사들였다. 홍콩 사람들이 동남아시아로 떠나면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던 시기였다. 리 회장은 홍콩 곳곳에 빌딩을 짓고 아파트를 세웠다. 1970년대 들어 홍콩 경제가 살아나면서 부동산 가격은 몇 배로 뛰었다. 1979년 리카싱은 영국계 항만기업인 허치슨왐포아를 인수했다. 화교 출신 기업인이 영국계 기업을 인수한 최초의 사례로 주목을 끌었다. 홍콩과 영국의 권력구조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허치슨왐포아 인수는 적중했다. 홍콩이 아시아 물류의 허브로 떠오르면서 홍콩항은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허치슨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끊임없는 중국 철수설 
리 회장은 1980년대 초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본격화하자 중국에 진출했다. 덩샤오핑은 홍콩에서 기업을 일궈본 리 회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상하이(上海) 컨테이너 터미널, 광저우(廣州)-주하이(珠海) 고속도로 건설 등 인프라 구축을 그에게 맡겼다. 선전(深圳) 매립지 개발을 시작으로 부동산 사업도 활발히 벌였다. 출판·방송·인터넷까지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갔다.
 
하지만 2011년부터 리 회장은 중국과 홍콩에서 부동산 자산을 줄여 왔다. 2015년엔 대대적인 사업개편을 하면서 신규 법인을 모두 영국령인 케이맨 제도에 등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중국 본토 언론의 비판은 거셌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그가 중국 자산을 매각한 것에 대해 ‘부도덕한 부정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사이가 좋지 않아 중국을 떠난다는 분석도 나왔다.  
 
리카싱 회장(오른쪽)이 빅터 리 부회장(왼쪽)과 기자간담회 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리카싱 회장(오른쪽)이 빅터 리 부회장(왼쪽)과 기자간담회 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하지만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리 회장은 중국 내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허스키에너지의 천연가스 프로젝트를 포함해 중국 해안 지역에만 400억 위안(약 6조80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리 회장이 은퇴를 선언했지만 그가 완전히 무대에서 퇴장하진 않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기자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후계자인 빅터 리 부회장을 지목해서 회사의 미래 투자계획에 대해 질문하자 리 회장은 “내가 대신 답하겠다”며 아들의 답변을 막았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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