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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비트코인의 미래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1972년에 설립된 노스 플로리다 대학교. 잭슨빌에 위치한 이곳은 1만5000여명의 학생이 학업에 임하고 있다. 컴퓨터 공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친구는 나와 버지니아 옥턴고등학교 동창생이다. 내 단짝이었던 지미와는 휴가 때마다 보곤 했다. 수재형의 지미는 단란한 가정을 꾸려 살고 있다. 8살, 6살 두 아이의 아빠인데 뱃속에 태어날 아이까지 합치면 세 아이의 아빠다. 그와 교정을 거닐며 싱그러운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빌, 제일 먼저 장가갈 것 같던 플레이보이가 여전히 혼자 지내? 이곳 잭슨빌까지는 어쩐 일? 여친과 휴가라도 왔니. 숨겨둔 여친은 어디에 있어. 데려오지 그랬어?”

 
“아. 혼자만의 여행도 좋잖아. 고독을 씹으며.”

 
“빌. 이제 우리도 나이가 적지 않아. 스무 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친구는 고등학생 아이를 두었더군. 하긴 독신의 즐거움도 포기하기 어려운 게 분명히 있을 거야. 그래도 한 3년 만에 만나는 것 아니니. 나는 빌이 짐 로저스 같은 인물이 될 줄 알았지.”

 
나는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지미 같은 친구는 언제 만나도 좋다. 그의 파란색 눈동자가 유난히 깊어 보인다.

 
“우리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너는 어때.”

 
“교수란 게 안정된 직업이긴 하지. 돈벌이는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나. 먹고살 만해. 네가 연결해준 세계은행과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잘하고 있어.”

 
“아. 그래.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니?”

 
“가난한 개발도상국 대부분 국민이 건강 보험이나 생명 보험이 없어. 보험이 보통 사람 수입보다 너무 비싸지. 그런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높은 관리비용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기술을 통해 인류의 발전을 위해 애쓰는 친구가 고마워 보였다.

 
“1달러당 보험 요금에 관리비용이 상당하더라. 나라마다 차이는 있는데 브라질은 0.28달러, 코스타리카는 0.54 달러, 멕시코는 0.47 달러야. 인도는 15%만 건강 보험에 가입해 있고.”

 
“블록체인을 통해 관리비용을 줄이는 프로젝트를 세계은행과 하려는 것이구나.”

 
“응. 블록체인 시스템은 보험사기 방지 같은 관리비용을 줄여 주잖아. 보험료를 인하할 수 있는 충분한 유인이 있어. 미래는 블록체인이 이끌어 줄 거야. 나를 세계은행에 소개해줘서 감사해. 대기 중인 프로젝트가 많아.”

 
“기술이란 걸 너처럼 선한 인간들이 사용하면 얼마나 좋겠니?”

 
내가 넋두리하듯 말하자 지미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선한 인간? 무슨 소리지. 선과 악이라. 인공지능 이야기니? 풋. 하긴 아무리 인공지능이 번역을 잘해도 인간의 문화란 것을 이해할 수 있겠어. 인간과 인간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 가는 것이 문화잖아. 그 문화를 인공지능이 다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기술자들은 뭘 모르고 말하는 자들이야. 나는 기술만능주의는 증오해. 그건 내가 꿈꾸는 세상이 아니야.”

 
“교수로서 기술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어떤 데 주안점을 두고 가르치고 있니?”

 
“너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을 하는구나.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는데, 결국 기술은 기술이고 기술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인간이야. 인간이 기술을 잘 사용하려면 철학이나 인문학에 바탕을 두어야 해. 그래서 융합 사고를 강조하고 교과과정도 그런 데 관심을 두고 있지. 단순히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물론 기술 그 자체의 중요성도 가볍게 보지는 않아.”

 
“아. 그래. 일자리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그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인류가 일자리를 얼마나 생각하며 기술발전을 시키려고 노력하느냐의 여부에 달렸지. 기술이 발전하면 그냥 일자리가 사라진다 하는 논리는 좀 비약이 심하다고 봐. 세상사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아. 물론 그럴 개연성은 충분히 있어.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간의 격차가 증대하는 문제가 아닐까? 아니면 기술적 실업자들을 사회에서 어떻게 거두어들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중요하겠지.”

 
“너 기술로 돈 벌 생각 없니? 교수 월급이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월가나 실리콘밸리 사람들과는 다를 것 아니야.”

 
지미는 나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삶이란 저마다 각자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보이는 것 같아. 소소한 일상의 가치에 행복의 의미를 두는 경우에는 새소리 물소리도 의미가 있는 거지.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 나처럼 가르치는데 의미를 두고 사는 사람도 있고. 돈이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그 가치를 추구한다고 생각해 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겠니. 물론 지금 세상이 그렇긴 해.”

 
나도 몰래 고개를 숙이는 데 눈물이 나려 했다. 지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의 눈동자에는 선함이 가득했다.

 
“사랑의 힘이란 것 있잖아. 나는 내 가족, 내가 소속한 공동체, 내 국가를 사랑해. 기술이 진정으로 세상을 하나로 만든다면 교황님 말씀을 예로 안 들더라도 인류애로 우리는 뭉쳐야지. 밥 네 끼 먹는 것 아니잖아. 안분지족이라고 지금의 내 처지면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지미가 너무 부러웠다.

 
“요새 뜨는 비트코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네 기술로 그런 암호 화폐의 세상을 만들 생각 없니. 암호 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것이잖아.”

 
지미는 나를 보더니 '풋'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비트코인은 사라지더라도 블록체인 기술은 그렇지 않을 거야. 물론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는 블록체인을 평가절하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라. 블록체인이 인터넷 혁명을 넘는 세상을 만들 거야. 내가 블록체인을 접목한 기술을 갖고 세계은행과 개발 협력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야. 그런데 두려운 게 있어.”

 
“뭔데.”

 
“암호 화폐에 열광하는 사람들 말이야. 그 사람들이 기술의 진전을 방해할까 두려워. 기술과 투기는 다른 것이잖아. 블록체인 기술은 분명히 신뢰를 먹고 사는 거야. 그런데 지금의 가상화폐 열풍은 자칫 블록체인 기술에 방해를 줄 수도 있다고 봐. 누군가의 표현을 들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암호 화폐의 가치가 저렇게 뛰는 것. 물론 암호 화폐는 나름대로 의미는 있어. 거래의 유인책이고 블록체인과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잖아. 둘을 완전히 분리해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그래서 코인 가격은 어느 정도 상승해야지. 주식 투자자에게 배당을 주듯이. 코인 투자자들도 배당을 받을 수 있지. 코인 가격을 무가치하다는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봐. 그런데 암호 화폐가 블록체인을 불신의 세계로 몰아갈까 두려워. 사람들은 신뢰의 의미를 모르면서 비트코인으로 달려가고 있어. 저렇게 가격이 출렁이는 것을 보면 또 다른 불신의 제국을 만드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지금 비트코인의 아류가 무수히 생기고 있잖아. 네 생각은?”

 
말문이 막혔다. 지미가 생각하는바 그대로가 내가 생각하는 의미인데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다르게 말한단 말인가!

 
“네 말이 맞아. 사람들이 기술에 관심을 두고 정상적인 거래를 했으면 해.”

 
“빌. 나도 사람이니 비트코인 좀 사둘 걸 하는 생각을 안 하겠어. 한데 결국 그게 거품이라면 언젠가는 터질 것이고 더는 받아 줄 수 없는 사람이 생길 때까지 폭탄 돌리기 하는 것 아닐까. 나는 두려움 없는 사람들의 무모한 행위가 겁나는 거야.”

 
“세상에 항상 그런 일은 있었잖아.”

 
“글쎄. 이게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면 사토시 나카모토가 불쌍하네. 노벨 경제학상도 받을 수 있었을 인물인데….”

 
가슴이 찔려왔다. 지미가 운동장에서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빌. 잡아라. 1센트. 너 이제 1달러라고 내게 외치는 거야.”

 
그는 저 멀리 가서 작은 돌을 던졌다. 우리는 수도 없이 주고받으며 3만 달러가 될 때까지 돌을 주고받는 게임을 했다. 그리고 난 뒤 지미는 돌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비트코인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글쎄. 만약 여기서 비트코인의 가격이 더욱 급등하면 각 나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문제는 각 나라의 규제가 다 다르다는 거지. 어떤 나라는 아예 거래를 금지하고, 물론 그런 나라는 중국같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경우이겠지. 어떤 나라는 제도권에 두고 있고. 어떤 나라는 규제의 강도를 점차 심하게 하잖아. 각국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 불일치로 인한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게다가 진짜 버블이 터지면 경제에 타격이 가해질 것은 분명하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렇게 마냥 돈놀이하는 것을 가만히 놔둘 정부는 없지 않을까? 폭락 뒤의 슬픔을 생각하면 미연에 방지하는 것도 필요한 거고.”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 가상화폐가 달러를 대체한다면?”

 
“글쎄. 지금 같은 가격 변동성 하에서 그게 화폐의 기능을 하겠니?”

 
“가격이 안정된다면?”

 
“그게 중요한 포인트이기는 해. 달러를 찍어 대는 것이나 가상화폐를 마구 찍어 내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런데 그건 비약이라고 봐. 분명히 차이가 있는 거야. 나는 무정부주의자 아나키스트는 아니야. 그래서 정부를 불신하고 정부가 없는 세상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야. 이상과 현실은 항상 괴리가 있는 것 아니겠어. 국가나 중앙 권력 없이 민간들끼리 거래를 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계급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세계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이 생길 거야.”

 
지미는 단순히 컴퓨터 기술만을 가르치는 교수는 아니었다. 그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에 대한 이해가 빠른 교수였다.

 
“그렇구나. 그래서 네 결론은.”

 
“결국 그 미래는 사람들의 가상화폐에 대한 생각에 달렸지 않을까? 아까 내가 돌을 던진 것처럼 그 가격이 제로가 될 수도 있는 거야. 그런데 암호 화폐 거래를 금지하려면 재산권 침해의 문제가 생길 거고. 뭐 우여곡절은 분명히 있을 것이야. 기술이 새로운 두통거리를 만들었다. 어쩌면 이런 게 기폭제가 되어 중앙은행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비트코인 같은 화폐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음 그러면 화폐의 위조나 변조의 문제는 안 생기겠구나. 지폐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도 줄어들 수 있고.”

 
“그렇지. 게다가 혹시 알아? 세계적으로 통일된 기구에서 달러를 대체하는 법정화폐를 블록체인 기술로 만들 수도 있잖아. 미래는 우리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그 비트코인을 만든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지미의 대답이 몹시 궁금했다. 그가 노벨 경제학상을 탈 인물이라 생각한다는 말에 더욱 그의 대답이 기다려졌다. 지미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만물박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금과옥조처럼 느껴졌다. 계절은 바뀌고 있었고 따뜻한 지역이지만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저 멀리서 키스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아니타를 생각해 본다. 이제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겠지.
 
※ 3월 23일 금요일 1시에 24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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