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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양보하라며 '호통'···나이가 벼슬이던 시대는 갔다

기자
김성희 사진 김성희
[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37)
시내버스나 전철을 타면 앉을 자리부터 찾는다. 딱히 몸이 불편한 곳은 없지만 편한 것을 바치는 나이가 된 탓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빈자리를 차지하려 허둥지둥 달려가는 편은 아니지만 말이다.
 
 
지하철 2호선 시청~을지로 4가역 사이의 임산부 보호석. [중앙포토]

지하철 2호선 시청~을지로 4가역 사이의 임산부 보호석. [중앙포토]

 
며칠 전 일이다. 서울행 지하철을 타고 서서 가는데 내 앞에 앉았던 이가 일어섰다. 한데 옆에 섰던 젊은 여성이 앉으려고 움칠하는 것이었다. ‘젊은 것이 어디서 내 몫을…’하는 생각에 잽싸게 엉덩이를 들이밀고는 승리감에 취하려는데 앉고 보니 그 여성의 가슴 어림에 ‘임산부 먼저’란 글이 적힌 임신부 배지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 딸이 임신했을 때 하던 이야기가 떠올라 냉큼 일어섰는데, 마침 그 자리가 교통약자 배려석 옆이었다. 그러니 그 여성은 그 분홍색 좌석 앞에 내내 서 있었던 셈인데 문제는 그 자리에 임신부가 아닌 나이 지긋한, 그렇다고 호호백발은 아닌 ‘할저씨’가 떡 앉아 있는 것이었다. 임신부 배지도 무시한 채 ‘나 몰라라’하고.
 
역시 지하철에서 본 일이다. 역에서 막 내리려던 ‘지공거사(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세대를 비하하는 말)'가 문가에서 젊은이하고 부딪치며 엉겼다. 누구 잘못이랄 것도 없어 보였는데 이 ‘어른’, “문가에 서서 막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야지”하고 버럭 소리 지르며 젊은이에게 한 차례 인상을 쓰고 내리는 것이었다. 그 젊은이는 날벼락 같았을 것이다. 출근시간대여서 지하철은 만원인데, 마음대로 비집고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데 그런 호통을 들었으니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염치가 사라지고, 자기 잇속만 챙기고, 버럭질이 는다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밉살스럽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서도 그런데 젊은 세대는 어찌 볼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런데 가까운 이들이 얽히면 그 정도는 아니지만 민망하다.
 
역시 며칠 전 지인들과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다. 한 친구가 식사 후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더니만 이내 담배 냄새를 풍겼다. 요즘 유행이라는 전자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마침 식당은 꽤 넓고, 손님은 우리밖에 없긴 했다. 그래도 사회적 ‘룰’은 지켜야 했지 않을까. 
 
싫은 소리를 하자 “창문을 열었다”며 머쓱해 하면서도 내내 피웠다. 그 바람에 다른 일행이 공연히 종업원 눈치를 봐야 했기에 서둘러 자리를 파했다. 젊었을 적에는 깔끔하고 합리적인 성격이었던 그가 몇 분을 못 기다리고 왜 실내 흡연을 했는지 끝내 묻지는 못했다.
 
 
'상놈은 나이가 벼슬'
나이가 무기, 벼슬이던 시대는 지났다. [중앙포토]

나이가 무기, 벼슬이던 시대는 지났다. [중앙포토]

 
우리 속담에 ‘상놈은 나이가 벼슬’이라는 게 있다. 신분, 재산, 학식 등 내세울 게 없는 ‘상놈’들로선 내세울 게 그나마 ‘나이’밖에 없어 나온 말이거나, 상놈끼리 서열을 매길 때 힘보다는 나이가 그래도 합리적이어서 나온 말이 아닐까 짐작한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나이가 무기, 벼슬이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다. 
 
집 안팎을 막론하고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권위를 발휘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이야기다. 경륜, 식견,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잔소리나 허튼소리를 하는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기에 십상이다. 그런데 여기에 염치와 양식마저 없다면 ‘뒷방’이 아니라 ‘지하 골방 늙은이’ 취급받을지 모른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news.joins.com/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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