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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는 것 빼고 다되는 나라···암호화폐 발행? 하지 뭐

 [장원석의 글로벌 J카페]암호화폐? 뭔들!…인구 130만 에스토니아가 사는 법
한국인에게 에스토니아는 생소한 나라다. 그간 양국은 교류가 거의 없었다. 아직 대사관도 없다.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는 일본 대사가, 주 에스토니아 대사는 핀란드 대사가 겸임한다. 하다못해 그 흔한 축구 경기에서조차 만난 적이 없다(A매치 기준). 단기 유학생을 제외한 교민도 수도 탈린에 단 10명뿐이다.
 
그런데 이 나라, 조금만 알게 되면 놀라움의 연속이다. 간단히 정리해 ‘절대 안 되는 것 빼곤 다 되는 나라’다. 1991년 에스토니아는 말 그대로 백지상태였다. 구소련에서 분리된 다른 나라와 처지가 비슷했다. 그러나 대처는 달랐다. 전화 통신망보다 인터넷 통신망을, 세탁기보다 컴퓨터를 먼저 보급했다.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지난 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91년 독립 당시 국토 면적에 비해 관공서가 충분치 않았지만, 관공서를 새로 짓기 어려웠다. 그래서 디지털 공공 서비스로 눈을 돌렸다. 이는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본지 2월 13일 A4면>
 
에스토니아 탈린 구시가지. 중세시대를 잘 보존한 이 구시가지를 벗어나면 디지털 혁명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사진=장원석 기자)

에스토니아 탈린 구시가지. 중세시대를 잘 보존한 이 구시가지를 벗어나면 디지털 혁명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사진=장원석 기자)

 
인구 130만명의 소국. 이 장점을 활용한 디지털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시끄럽던 1997년, 에스토니아는 전자 정부의 시동을 걸었다. 2000년엔 e-Tax 시스템을 내놨고, 세계 최초로 인터넷 접속권을 의식주에 상응하는 기본 인권으로 보장한다고 선언했다.  
 
이듬해엔 디지털 신분증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덴마크 출신인 매즈 달스가아드 펀더빔 CMO는 “독일이 다 커버린 대기업이라면 에스토니아는 이곳에 생활한다는 자체가 벤처의 삶”이라며 “애초에 경직된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국민이 새로운 실험을 유연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매즈 달스가아드 펀더빔 CMO.(사진=장원석 기자)

매즈 달스가아드 펀더빔 CMO.(사진=장원석 기자)

 
현재 에스토니아 국민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민원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한다. 창업? 사업자등록증을 받는다며 필요한 서류를 떼러 동분서주할 필요도, 그 서류를 제출하러 관공서에 갈 필요도 없다. 회사 간판을 얻는 데까지 1시간이면 충분하다. 몇 번의 마우스 움직임만 있으면 된다.  
 
2005년엔 전자투표를 도입했다. 대통령을 뽑겠다고 투표소를 찾아 도장을 찍지 않는다. 2014년 내놓은 이레지던시(e-Residency)는 혁신의 결정판이다.  
 
이레지던시는 에스토니아 정부가 발행하는 전자시민권이다.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단 100유로만 내면 누구나 에스토니아 시민이 될 수 있다. 이 시민권이 있으면 온라인으로 창업할 수 있고, 에스토니아에 머물지 않아도 정부가 제공하는 행정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만 3년밖에 안 됐지만 전 세계 154개국, 3만3438명이 이레지던시를 받았다. 그리고 이들 중 약 6분의 1인 5033명이 에스토니아에 실제로 법인을 세웠다.    
 
 
한국이 시도했으나 하지 못한 혹은 검토 중인 대부분의 정책을 에스토니아는 이미 시도했거나 정착시켰다고 보면 된다. 에스토니아 특유의 유연함은 젊은 정치와도 관련이 있다. 의원 내각제를 채택한 에스토니아 내각은 평균 연령이 40대 중반이다. 
 
블록체인만 따로 떼서 본다면 에스토니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기 시작한 게 2008년이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2007년 러시아로부터 디도스 공격을 받은 이후 일찌감치 보안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게 계기였다. 
 
국민 의료정보 블록체인화, 상시 건강관리 시스템 구축  
 
2012년부터는 입법·사업·행정 등 정부 업무 영역 전체로 블록체인 시스템을 확대했다. 에스토니아가 개발한 블록체인 기술은 뛰어난 보안성을 인정받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미 국방부에서도 쓰인다.
 
국민의 의료 정보도 블록체인으로 관리한다. 예컨대 환자가 한 번 X-레이를 찍었다면 다른 병원의 의사도 언제든 해당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CD에 복사해 병원을 옮길 때마다 등록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나아가 환자의 물리적 위치와 관계없이 원격 처방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데이터를 활용해 국민 건강을 상시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한국에선 개인정보 이슈 때문에 논란이 있는 영역이다. 물론 에스토니아도 이런 우려를 한다. 그러나 이들은 환자의 정보가 종이나 병원 자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것이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이 경우엔 누가 그 정보를 봤는지 알 수 없지만, 블록체인 안에선 흔적이 남는다는 논리다.  
 
탈린공대 내에 있는 멕토리 창업센터는 1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탄생 시킨 창업 전초기지다.(사진=장원석 기자)

탈린공대 내에 있는 멕토리 창업센터는 1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탄생 시킨 창업 전초기지다.(사진=장원석 기자)

 
민간에서도 블록체인 기술 개발이 활발하다. 아세 사우가 에스토니아 암호화폐협회(ECA) 회장은 직함이 5~6개쯤 된다. 블록체인·암호화폐 업체에 컨설팅을 해주고 블록체인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에선 파트너 역할도 한다. 어디선 회장이고, 어디선 이사고, 어디선 파트너다. 최근엔 몇몇 지인과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목화 재배부터 옷 판매까지 전 과정에 블록체인 기술을 이식하는 작업이다.  
 
아세 사우가 ECA 회장은 ‘재미 삼아 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재미로 보기엔 목표가 매우 뚜렷했다. 그는 “농가에서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유실되는 부분이 많다”며 “사람과 상품을 단계별로 모두 연결해 명확하게 규명하고, 손실을 줄여 판매 가격을 낮추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아세 사우가 에스토니아 암호화폐협회(ECA) 회장.(사진=장원석 기자)

아세 사우가 에스토니아 암호화폐협회(ECA) 회장.(사진=장원석 기자)

 
지난해 9월 에스토니아는 세계 최초로 정부가 발행하는 암호화폐를 추진한다는 뉴스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에스트코인(Estcoin)이다. 

 
정말 ICO 단계까지 갈 지 관심이 쏠렸지만 결국은 수위를 조절했다.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유럽연합(EU) 소속 국가인 에스토니아는 (유로화 외에) 별도 화폐를 발행하거나 이용할 계획이 전혀 없다”며 “나는 단일 화폐를 강조하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입장이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 6일 오후 청와대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한한 케르스티 칼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월 6일 오후 청와대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한한 케르스티 칼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절대 안 되는 것 빼곤 다 되는 나라’가 이대로 그만둘 리 없다. 에스트코인은 어떤 형태로든 발행돼 널리 쓰이게 될 것이란 게 대다수 관계자의 예상이다. 전자시민권과 연계한 암호화폐로 개발하거나 세금 납부에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아세 사우가 ECA 회장은 “이레지던시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재화를 주고받거나 정부의 서비스를 사서 쓰는 형태로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탈린=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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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