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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보다 신라 때 부르던 '서라벌'이 낫지 않을까

기자
송의호 사진 송의호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8)
사적 제18호인 ‘경주 동궁과 월지’ 안내판. 지금은 안압지란 명칭은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사진 송의호]

사적 제18호인 ‘경주 동궁과 월지’ 안내판. 지금은 안압지란 명칭은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사진 송의호]

 
지명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 지난달 27일 대학 신입생들과 경주를 ‘사제(師弟)동행’했다. 분황사와 황룡사지‧안압지를 차례로 답사했다. 안압지(雁鴨池)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출입문 옆 안내판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곳은 통일신라 시대 궁궐터의 하나로, 임해전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과 함께 태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였다.”

 
 
안압지 대신 ‘동궁과 월지’  
경주시 인왕동 동궁과 월지의 모습. 신라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기념해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사진 송의호]

경주시 인왕동 동궁과 월지의 모습. 신라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기념해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사진 송의호]

 
유적지 이름은 최근에 바뀌었다. 안내판에는 안압지 대신 ‘경주 동궁(東宮)과 월지(月池)’(사적 제18호)로 적혀 있다. 안압지는 좋은 이름은 아니다. 시인 묵객들이 조선 시대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자 붙인 명칭이다. 1974년 발굴된 안압지의 토기 파편에서 ‘月池(월지)’라는 명문이 나왔다. 달빛이 아름다운 연못이다. 경주시는 도시의 정체성을 찾아 황성 옛터를 떠올리는 호칭 대신 본래 이름 ‘동궁과 월지’를 회복했다. 잘한 일이다.
 
 
동궁과 월지의 추정 모형. 동궁 안에는 태자가 머문 궁궐과 영빈관인 임해전 등 여러 전각이 있었다. [사진 송의호]

동궁과 월지의 추정 모형. 동궁 안에는 태자가 머문 궁궐과 영빈관인 임해전 등 여러 전각이 있었다. [사진 송의호]

 
월지는 674년 신라 30대 문무왕이 조성했다. 문무왕은 백제에 이어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했다. 신라 56 왕 중 치적으로 단연 첫 손에 꼽힌다. 월지는 문무왕이 만든 일종의 ‘삼국통일 기념공원’이다. 5년 뒤 월지에 지은 임해전(臨海殿)은 영빈관쯤 된다. 나라의 경사스러운 일이나 귀빈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삼국사기』에 임해전 연회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월지와 임해전은 이렇듯 신라 전성기의 영광을 간직한 공간이다. 그러나 역사는 영광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후삼국 시대다. 927년 후백제 견훤은 신라를 급습해 신라 55대 경애왕을 포석정에서 붙잡아 자결하게 한다. 도움을 요청받은 고려 왕건은 신라를 구원하러 나섰으나 견훤은 김부(경순왕)를 신라 왕으로 세워 놓고 후백제로 돌아가 버렸다. 왕건은 견훤을 뒤쫓다가 서라벌로 돌아온다.
 
 
월지에서 발굴된 14면체 주사위 ‘주령구’를 해설한 안내판. 주령구는 각 면에 벌칙을 적어 연회의 흥을 돋우는 놀이기구의 하나였다. [사진 송의호]

월지에서 발굴된 14면체 주사위 ‘주령구’를 해설한 안내판. 주령구는 각 면에 벌칙을 적어 연회의 흥을 돋우는 놀이기구의 하나였다. [사진 송의호]

 
931년. 경순왕 재위 5년째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56대 마지막 경순왕이 임해전으로 고려 왕건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문화해설사는 “연회만 있지 않았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경순왕은 국운이 다했음을 알고 고려 왕건에게 신라를 통째로 넘기는 ‘충성 맹세’를 한다. 월지와 동궁은 이렇듯 삼국통일의 찬란한 영광을 새기고 동시에 1000년 신라가 바쳐진 굴욕의 공간이다.
 
 
월지 옆을 지나는 동해남부선을 건너면 황룡사지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에 전시된 황룡사의 추정 본존불 불두. [사진 송의호]

월지 옆을 지나는 동해남부선을 건너면 황룡사지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에 전시된 황룡사의 추정 본존불 불두. [사진 송의호]

 
‘경주(慶州)’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신라 시대는 ‘서라벌’이었다. 935년 경순왕은 고려 왕건에게 신라를 고스란히 넘긴다. 왕건은 전쟁 한 번 하지 않고 1000년 왕국을 얻게 되자 서라벌을 ‘아주 경사스러운 고을’이라는 경주로 명명했다. 그러고 보면 경주라는 이름은 지역민에게 그리 유쾌한 이름이 아니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에 전시된 황룡사 9층목탑 모형. 실제의 10분의 1 크기로 높이가 8m쯤 된다. [사진 송의호]

황룡사 역사문화관에 전시된 황룡사 9층목탑 모형. 실제의 10분의 1 크기로 높이가 8m쯤 된다. [사진 송의호]

 
경주는 뭐니뭐니해도 신라의 도읍지다. 경주시는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안압지를 월지로 고쳤듯 도시 이름을 신라 1000년 도읍지 서라벌로 되돌려야 하지 않을까.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yeeh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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