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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하키 대표팀 '이과장'의 마지막 꿈 '패럴림픽 메달'

10일 오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아이스하키 한일전 3피리어드에서 이해만(왼쪽에서 네번째)이 추가골을 성공시킨 뒤 코칭스태프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10일 오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아이스하키 한일전 3피리어드에서 이해만(왼쪽에서 네번째)이 추가골을 성공시킨 뒤 코칭스태프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이과장'이 달린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1세대 이해만(46)이 태극마크를 달고 펼치는 마지막 경기에서 꼭 메달을 따내겠다는 다짐을 했다.
 
한국 장애인하키의 시작은 2000년이다. 연세대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으로 척추장애을 입은 이성근 씨가 일본에서 장애인 하키를 처음 접했다. 이씨는 일본팀을 초청해 시범경기를 열고, 다른 종목 운동을 하던 장애인 선수들을 끌어모았다. 일본 선수단이 기증한 1대의 썰매를 토대로 최초의 한국 클럽팀인 연세 이글스가 만들어졌다. 당시 하키를 시작한 선수 중 지금까지 대표팀에 남아 있는 건 주장 한민수(48)와 이해만, 2명이다. 평창패럴림픽은 1세대 선수들의 고별전이다. 한민수는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링크를 떠나고, 이해만도 대표팀 활동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4일 오전 인천장애인국민체육센터 체력단련실에서 아이스하키 패럴림픽 대표팀 이해만이 개인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전 인천장애인국민체육센터 체력단련실에서 아이스하키 패럴림픽 대표팀 이해만이 개인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연합뉴스]

밴쿠버 대회에 이어 8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패럴림픽에 나선 이해만은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었다. 지난 10일 열린 일본과의 예선 첫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다. 골 크리스 앞에서 기다리다 장동신이 날카롭게 때린 슛에 살짝 스틱을 갖다대 띄웠고, 퍽은 그대로 골망 안으로 들어갔다. 수비수인 그가 두 차례 패럴림픽에서 넣은 개인 첫 골이었다. 이해만은 "골리 앞에서 살짝 방향만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의도대로 잘 됐다"고 설명했다.
 
이해만은 6살 때 소아마비로 2급 장애인이 됐다. 운동 신경이 뛰어난 그는 1991년 삼육재활원에서 휠체어농구를 시작했다. 이성근씨와 인연도 그때 맺어졌다. 좌식 스키, 배드민턴 등 여러 스포츠를 섭렵한 그는 아이스하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금속 세공, 웹 디자인 일을 하면서 클럽 팀에서 뛰었다. 그러던 차에 2005년 대한장애인체육회가 탄생하면서 이듬해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그는 대표 선수로 활동하면서 체육회에서 생활체육을 보급하고, 전문선수들을 육성하는 '투잡'을 했다. 그래서 대표팀 선수들은 그를 장난삼아 '이과장'이라고 부른다.
 
2012년 노르웨이 세계선수권(은메달)을 마지막으로 이해만은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나이가 40대에 접어들면서 본업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2014 소치 패럴림픽 때는 선수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사실 소치까지 뛰고 은퇴할 생각이었는데 직장 생활에 집중하고 싶어 클럽팀(서울 연세 이글스)만 뛰기로 했다. 그나마도 연습을 거의 하지 못하고 경기만 뛰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이해만의 딸 서하, 아들 성율.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이해만의 딸 서하, 아들 성율.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이해만 선수 딸 서하 양과 아내 국정란씨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이해만 선수 딸 서하 양과 아내 국정란씨

그런 그의 가슴에 다시 불을 붙인 사람이 한민수였다. 이해만과 함께 하키를 시작했지만 강원도청 소속 선수로 줄곧 뛴 한민수는 이해만에게 "평창에 같이 가자"고 권유했다. "마지막 기회일 것 같은데 해보는 게 어떠느냐"는 것이었다. 이해만은 "공백 기간이 5년이나 되서 '이 체력으로 괜찮을까'란 생각을 하고 선발전에 나섰다. 그런데 덜컥 붙어버렸다. 아내도 내 마음을 알기 때문에 허락해줬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도 'TV에 나올 거야'라고 했더니 '해야지'라며 응원해줬다"고 웃었다. 그는 "이명호 대한장애인체육회장님이 '네가 꼭 필요하대? 나이가 있는데 도움이 돼?'라고 물어보길래 '그럴걸요?'라고 대답했더니 흔쾌히 보내주셨다"고 했다. 이해만은 "공백기가 있기 때문에 내 역할은 선수들을 독려하고, 빈 자리를 메워주는 것"이라며 "국가대표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17일 낮 12시 강릉 하키센터에서 이번 대회 마지막 경기인 동메달결정전을 치른다. 상대는 이탈리아다. 역대전적에선 5승9패로 밀린다. 2014 소치 패럴림픽 조별리그에서도 우리에게 패배를 안겼고,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도 슛아웃 승부 끝에 진 팀이다. 그래도 최근 두 차례 대결에선 한국이 두 번 싸워 모두 이겼다. 이탈리아만 넘는다면 2010 밴쿠버(6위), 2014 소치(7위)에 이은 세 번째 패럴림픽 도전 만에 첫 메달을 손에 넣는다. '이과장' 이해만은 "18일까지 공가를 낸 상태다. 기왕이면 멋지게 메달을 따낸 뒤 본업에 복귀하고 싶다"는 바람을 말했다.  
 
강릉=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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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