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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개혁·진보’가 18세기 실학에 있나 … 봇물 터진 의문

실학별곡 - 신화의 종언 ① 프롤로그 - 실학과 근대
20세기 한국학의 기둥 ‘실학’에 대한 의문이 이어진다.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성찰적 문제제기다. 사진은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실학자 성호 이익 기념관 내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세기 한국학의 기둥 ‘실학’에 대한 의문이 이어진다.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성찰적 문제제기다. 사진은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실학자 성호 이익 기념관 내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 학계의 20세기는 ‘실학(實學)의 시대’였다. 실학은 근대화의 학술적 표현이었다. ‘서양 따라잡기’의 또 다른 양식이기도 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 지금까지 70여년간, 대한제국기부터 치면 120여년간 우리 민족이 서양을 배우면서 이룩해내려고 애써온 그 목표가 근대화였다. 온 백성의 자유와 평등, 시장화와 산업화는 근대화의 목표들이었다. 1977년 수출 100억불 달성은 근대화의 한 축인 산업화의 성공을 상징했다. 1987년 6월항쟁은 근대화의 또 다른 한 축인 국민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화의 약진을 상징한다.
 
실학은 서양식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우리 민족 고유의 내재적 역량으로 간주됐었다. 서양 근대 문명의 충격을 우리가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소화해낼 자체적 능력을 조선 후기부터 스스로 배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7~18세기에 반(反)주자학적인 유학자들이 나와서 주자학의 도덕과 의리만 얘기한 것이 아니라 시무(時務), 즉 정치경제와 실용 등 우리 일상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학문을 본격 거론하기 시작했다.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등이 주도한 새로운 흐름을 ‘실학’이라고 불렀고 그들은 실학파로 규정됐다. 그런데 이 같은 실학이라는 학술 장르로서의 개념이 18세기 당시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조선학운동을 펼친 정인보·안재홍 등이 유형원·이익·정약용 등을 실학파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근대화는 국가의 전략 목표로 설정되면서 실학은 더욱 강조되었다. 실학은 한국 근대화의 토대를 놓은 사상으로 격상되었다. 국민들은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학계에선 실학을 규명하기 위해 매진했던 셈이다. ‘근대적’ ‘개혁적’ ‘진보적’ 등 온갖 좋은 형용사는 다 실학 앞에 붙곤 했다.
 
 
‘진정한 실학’ 바람이 ‘가짜 실학’ 비판
 
그렇다면 세계가 놀랄만한 속도로 매우 신속하게 근대화를 이뤄낸 성공 잔치의 학술적 주인공은 당연히 ‘실학’이 되어야 할 텐데 상황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초대장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근대화 성공의 팡파르가 울릴 때부터 역설적으로 실학을 언급하는 이들은 줄어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초중고 교과서에 실학은 중요한 항목으로 설정돼 있고, 각종 시험에도 출제되고 있지만, 실학을 연구해온 전문가들에게서 실학 개념에 대한 회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강명관(부산대 한문학) 교수는 지난해 12월 『허생의 섬, 연암의 아나키즘』(휴머니스트)이란 책을 펴냈다. 강 교수는 실학이 “조선후기 사족체제의 자기조정 프로그램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올해 들어 2월에는 황태연(동국대 정치외교학) 교수가 『한국 근대화의 정치사상』(청계)을 출간했다. 황 교수는 “실학자라고 거명되는 이들의 주장은 알고 보면 근대적 주장이기는커녕 복고적 봉건주의 논변들이었다”고 비판했다. 3월 들어선 노관범(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한국사) 부교수가 『역사비평』(2018년 봄호)에 글을 기고하며 실학이란 용어 자체의 무용성을 주장했다. 노 교수는 “정의로운 학문을 ‘의학(義學)’이라 하지 않고, 어떤 학문이 용감하다고 해서 그 학문을 ‘용학(勇學)’이라 하지 않듯이, 어떤 학문이 실사구시를 한다고 해서 그 학문을 실학(實學)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한문학·정치사상·한국사 분야에서 모두 실학 개념을 잇따라 비판하고 나선 셈인데, 이는 최근에 갑자기 불거진 현상만은 아니다. 국내에서 실학 개념에 대한 최초의 비판은 1990년 김용옥 전 고려대 철학과 교수가 『독기학설(讀氣學說)』(통나무)이란 책을 펴내면서다. 김 교수는 “실학은 역사적 사실로서의 실존태가 아니라 20세기 중엽 한국 역사학계에서 발생한 역사서술론적인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이 책은 당시 5만부가 판매됐다고 한다. 필자도 기자가 되기 1년 전인 그 해에 그 책을 사 본 추억이 있다. 20대 젊은 시절의 잊지 못할 ‘지적 충격’이었다.
 
김용옥의 주장에 당시 학계에서는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응답이었다. 이런 류의 책이 5만부 나갔다면 관련 분야에서 볼만한 사람은 거의 다 봤다는 얘기일 수 있는데, 논문이나 저서의 참고도서 목록에 올려놓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해방 이후 한국학 분야 제1의 목표는 식민사관 극복이었다. 실학은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근거였다. 그런데 김용옥은 실학 개념의 연원을 일본의 근대관과 연결시키면서 식민사관에 습윤되었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설정한 실학이 도리어 ‘식민지 프레임’에 물든 개념일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1990년의 실학 비판과 2018년의 실학 비판 분위기를 비교하면서 전환기의 공통점을 감지하게 된다. 1990년에는 또 다른 거대한 지적 충격이 외부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구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었다. 1980년대 대학가와 지식사회를 휩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회주의 관련 책도 읽은 이들에게는 요즘 말로 ‘사상적 멘붕’의 시대였는데, 그런 시대적 변화의 흐름과 함께 실학 비판도 제기되었던 것이다.
 
2018년의 ‘실학 비판’은 어떤가.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사태에 이어 ‘미투 혁명’에 이르기까지 각종 ‘적폐 청산’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사상 첫 정상회담도 예견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거대한 시대적 전환의 시기에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담보할 ‘진정한 실학’을 희구하는 바람이 기존의 ‘가짜 실학’을 비판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실학 개념의 타당성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는 점차 다양한 모습으로 확산되었다. 지난 2006년 7월 12일 한림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실학의 재조명’을 주제로 연 학술대회는 일종의 중간 점검 성격을 띠었다. 실학 개념에 대한 혼란이 확산되자 학계에서도 정리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한영우(서울대 국사학) 명예교수가 교통정리에 나섰다. 당시 한 교수는 두 가지로 실학 개념을 재정리했다. 첫째 실학은 성리학(주자학)과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학문이 아니라고 했다. 제도개혁과 실용성을 추구한 실학은 일종의 ‘실용적 성리학’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근대와 봉건을 기준으로 실학과 비실학을 나눠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실학=반(反)주자학=근대’라는 공식이 실학의 본질적 특성으로 간주되어 왔었는데 그런 특성이 모두 무화된 셈이다. 그럼에도 실학이란 용어를 폐기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사회를 변화시기려는 개혁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조선 후기는 서양의 봉건사회보다는 한층 앞서가는 사회이고, 서양의 근대사회보다는 산업구조가 뒤떨어진 사회였다”고 하면서 이 같은 조선 후기의 특징을 “근세적 유교사회”라고 재정의했다. 근세는 ‘초기 근대(Early Modern)’를 의미하는 학술용어다.(한영우 외, 『다시, 실학이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2007, 25~62쪽)
 
 
유형원·이익·정약용, 그들은 무얼 지향했나
 
이런 흐름 속에서 실학 비판은 더욱 심화되기 시작했다. 2014년 김영식(서울대 동양사) 명예교수가 펴낸 『정약용의 문제들』(혜안)은 실학 비판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했다. “정약용의 ‘개혁적’ ‘진보적’ 심지어는 ‘근대적’ 면모에 대해서 나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김 교수는 “정약용은 개혁적이기보다는 보수적이었으며 그가 내놓은 개혁 방안들이 ‘근대적’ 사회를 지향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통설이 깨지고 있다. 신화의 종언이다. 18세기 실학자들이 살았던 시대가 어떤 시대였고 그 실학 사상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제 제대로 분석되어야 할 때다. 2018년의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실학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유형원-이익-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실학의 흐름 자체가 없었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그 이전의 정통 성리학자들과 다른 면모가 그들에겐 있었다. 그들이 함께 모여 조직적인 운동(movement)을 벌인 것은 아니지만, 『반계수록』의 저자 유형원을 스승으로 생각하면서 그때까지 정통 성리학자들이 하찮은 것으로 격하했던 정치경제와 일상적 시무에 관한 실용적 제안을 본격적으로 내놓았다. 그런 흐름은 대한제국 시기에 정약용의 저서를 읽고 영향을 받은 이기(1848~1909·애국계몽운동가)에게까지 이어진다. 그들이 보여준 일종의 새로운 학풍을 실학이라고 불러도 좋고 그 어떤 이름을 붙여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세상을 바꾸자고 내놓은 제안이 정작 무엇을 지향했는가이다.
 
주자학과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보이면 ‘근대’의 딱지를 붙이며 옹호하는 것은 일종의 이분법적 ‘진영 논리’다. 주자학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주자학과 조금이라도 다른 얘기를 한다고 다 옳은 얘기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것은 복잡하고 미묘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21세기 실학’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18세기에 존재했던 실학은 과연 근대적인가.
 
 
‘실학’이란 말은 ‘허학’을 꼬집는 보통명사였다
실학(實學)은 대개 17~18세기 조선 후기에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실사구시의 학풍. 즉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비판하며 실제 생활에 유용한 대안을 제시하는 학술 경향으로 알려져 있다. 유형원·이익·정약용과 북학파(박지원·홍대용·박제가) 학자들이 이런 흐름을 주도했으며 이들을 실학파로
분류한다.
 
그런데 실학이란 말은 조선 후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허학(虛學)과 대비되며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용어였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가 자신의 학문을 실학이라고 하면서 불교나 노장사상을 허학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실학이 마치 조선 후기의 고유명사인 것처럼 규정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1930년대 조선학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됐고, 해방 이후에는 근대화라는 시대적 과제와 맞물려 주체적 한국학 수립의 디딤돌로 활용되었다. 20세기 실학 개념의 형성사 자체가 21세기 한국학의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자문 전문가=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 김영식 서울대 명예교수,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황태연 동국대 교수, 강명관 부산대 교수, 장득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부교수.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참고 자료
- 황태연, 『한국 근대화의 정치사상』, 청계, 2018.
- 강명관, 『허생의 섬, 연암의 아나키즘』, 휴머니스트, 2017.
- 김영식, 『정약용의 문제들』, 혜안, 2014.
- 한영우 외, 『다시, 실학이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2007.
- 김용옥, 『독기학설(讀氣學說)』, 통나무, 1990.
- 이태훈, ‘실학 담론에 대한 지식사회학적 고찰’, 전남대 박사학위논문, 2004.
- 노관범, ‘근대 초기 실학의 존재론-실학 인식의 방향전환을 위하여’, 『역사비평』 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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