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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이 터지는 北 유일한 학교···교수 전원 무보수"

[배명복의 사람속으로] 전유택 평양과기대 총장
평양과학기술대학(PUST) 총장이 있어야 할 곳은 평양이다. 하지만 전유택(77) 평양과기대 총장은 지금 서울에 있다. 미국과 한국을 떠도는 신세다. 지난해 9월 1일 발효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 방문 금지 조치에 따라 미 시민권자인 전 총장은 북한에 들어갈 수 없다. 평양과기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약 30명의 미국인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 갈 수 없는 총장의 심정은 어떨까.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대화 분위기 속에 누구보다 ‘한반도의 봄’을 고대하고 있는 전 총장을 14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전유택 평양과기대 총장은 ’우리 학교를 해커양성소니 뭐니 하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북한의 똑똑한 젊은이들이 세상을 볼 줄 아는 올바른 시각을 갖게 되면 통일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전유택 평양과기대 총장은 ’우리 학교를 해커양성소니 뭐니 하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북한의 똑똑한 젊은이들이 세상을 볼 줄 아는 올바른 시각을 갖게 되면 통일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곧 졸업식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달 28일 제4회 졸업식이 예정돼 있다. 졸업식만이라도 좀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미 국무부에 탄원서를 냈지만 거절당했다.”
 
인도적 목적의 방북은 예외적으로 허가해 준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미국인 억류 문제가 걸려 있다. 현재 북한에 3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억류돼 있는데, 그중 2명이 우리 학교 교직원이다. 한 분은 교수고, 다른 한 분은 농생명학과 직원이다.”
 
이유가 뭔가.
“공식 발표된 것은 없다. 연변과기대에서 근무할 당시 탈북자와 접촉한 혐의를 받는 걸로 짐작만 할 뿐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미 정부가 우리의 방북을 허가해 줄 것 같지 않다.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억류자 문제가 해결돼 학교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송금 안 돼 학교 운영에 큰 차질
 
대동강 남쪽 평양시 낙랑구역 승리동에 위치한 33만 평 규모의 평양과기대는 남북 합작으로 설립된 이공계 특수대학이다. 한국의 기독교 단체인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 1992년 조선족 학생들을 위해 연변과기대를 세운 경험을 살려 북한 교육성과 공동으로 설립했다. 2002년 설립 허가가 났지만 우여곡절 끝에 2010년 10월 개교했다. 학생 선발과 관리는 북측이 맡고, 학사 운영과 재정은 남측이 맡고 있다. 미국·영국·독일·핀란드·노르웨이·네덜란드 등 15개국에서 온 75명의 교수진 전원이 무보수 자원봉사자들이다. 각자 후원자를 물색해 경비를 자체 조달해야 한다.
 
평양과기대는 전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북한 내 유일한 국제대학이다. 전기공학(컴퓨터·통신·산업자동화), 농생명학, 국제금융·경영학과가 개설돼 있다. 치대에 이어 지난해에는 의대 신입생도 뽑았다. 학부와 대학원을 합해 550명이 재학 중이다. 지금까지 배출된 520명의 졸업생 중 약 30명이 장학금을 받아 유럽과 중국, 남미 등으로 유학을 다녀왔고, 지금도 10명이 유학 중이다.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2015년 남녀공학으로 바뀌면서 현재 약 50명의 여학생이 재학 중이다. 북한에서 유일하게 자본주의 경제와 경영을 가르치는 곳이다. 외국인 교직원용이지만 교내에서 와이파이(무선인터넷)가 터지는 북한 내 유일한 학교이기도 하다. 전 총장은 e메일과 카톡·위챗 같은 SNS를 통해 지금도 매일 학교 측과 연락하고 있다.
 
대북 제재 때문에 학교가 겪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미국인 교직원이 학교에 못 가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송금 문제도 있다. 은행들이 송금을 꺼리는 바람에 의대 건물은 공사가 중단됐다. 당장 학교 운영에 필요한 돈은 인편으로 직접 전달받고 있다. 실험에 필요한 장비나 자재의 통관이 안 돼 애를 먹기도 한다.”
 
학교 운영에는 상당한 돈이 들 텐데.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학생과 교직원 등 총 900명의 숙식비를 포함한 경상비용으로 매달 약 6만 달러가 든다. 물론 최대한 절약한 결과다. 식사 등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돈은 어떻게 조달하고 있나.
“주로 기독교 관련 단체와 개인들로부터 후원을 받는다.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미국 쪽에서는 후원이 거의 끊겼다. 요즘은 주로 한국 내 후원자들 도움으로 학교를 꾸려가고 있다.”
 
대북 제재의 여파로 북한 당국과의 협조에도 차질이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사실 평양 한복판에서 자본주의 교육을 하는 곳이 우리 학교다. 똑똑한 북한 젊은이들이 4년 동안 자본주의 물을 먹고 나가면 북한 체제에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학교가 얼마 못 갈 거라는 얘기가 처음부터 있었다. 하지만 이제 바깥세상을 알아야 한다는 쪽으로 그들 생각이 바뀌면서 북한 당국의 이해심도 상당히 커진 것 같다. 미국인 교수들이 못 들어오는 걸 기회로 학교 문을 닫을 법도 하지만 계속 참아 주며 우리가 돌아오기를 우리보다 더 기다리고 있다.”
 
평양과기대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달라지는 게 보이나.
“입학할 때와 비교하면 표정부터 달라진다. 처음에는 우리를 경계하고, 공연히 도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매일 부대끼면서 우리가 배운 것처럼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영국 BBC방송에서 취재를 왔을 때 한 학생은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는 싫지만 미국 사람은 좋다’고 했다. 자원봉사로 와서 자신들이 가진 모든 지식과 사랑을 내어 주는 교수와 직원들을 보면서 학생들은 감동한다. 졸업할 때는 교수도 학생도 다 함께 눈물을 흘린다. 그만큼 인간적으로 서로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풀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언젠가 이런 때가 올 걸로 생각했다. 평양에서 제일 큰 장마당이 통일시장이다. 매일 약 2000명의 상인이 모여 장사를 한다. 찬거리를 사러 거기에 가면 북한 사람들도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기를 상당히 바라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잘 풀리면 우리 학교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원봉사하는 교수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
“대부분 박사 학위를 갖고, 외국 유수의 대학이나 기관에서 활동하던 분들이다. 또 대부분 기독교인이다. 재미 교포 출신 교수들은 동포이니까 그렇다 쳐도 사서 고생을 하며 우리보다 더 열심히 하는 외국인 교수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온다고 보나.
“학생들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순수하면서도 똑똑하다. 뭐 하나 놓치지 않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눈을 반짝인다. 또 끊임없이 질문한다. 세 명 단위로 공동 프로젝트 과제를 주면 세 편의 결과물을 가지고 올 정도로 학구열이 대단하다. 흡수력이 뛰어나 예정 진도를 너무 일찍 끝내 당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면 고생이 고생으로 안 느껴질 수 있다. 여기서 한번 가르쳐본 교수 중에는 친구를 데리고 다시 오는 경우도 많다.”
 
똑똑한 학생들 학구열에 교수들 감동
 
학생 선발을 전적으로 북측에서 맡고 있다. 불만은 없나.
“학생들이 우리 기대에 못 미치면 그럴 수 있겠지만 기대 이상이기 때문에 그런 불만은 없다.”
 
학생들의 인터넷 사용에 제한은 없나.
“컴퓨터실에서는 마음껏 접속할 수 있다. 구글이나 남한 사이트에 들어가 논문 자료를 찾기도 한다. 자존심 때문인지 영어로 된 건 몰라도 한글로 된 남한 논문은 잘 인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도 노트북이 많이 보급돼 있나.
“거의 모든 학생이 다 갖고 있다. 태블릿 PC를 가진 학생도 많다.”
 
영어로 수업하는 데 문제는 없나.
“기본적으로 영어를 할 줄 아는 학생들을 뽑는 데다 학부 1학년 때는 영어 공부만 시킨다.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특별 과외도 한다. 우리 학교 졸업생들의 영어 실력이 평양외국어대 출신들보다 낫다는 소문도 있다.”
 
김일성종합대학과 비교하면 어떤가.
“우리 학교 학생의 절반 정도가 김일성종합대나 김책공대 등 다른 대학에서 2학년까지 다니고 신입생으로 들어온 학생들이다. 요즘에는 북한의 명문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들어오는 학생들도 있는데 상당히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
 
졸업생들의 진로는.
“학교에 남아 교내 벤처(지식산업연구소)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있고, 다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은행이나 보험 등 금융회사에 취업하거나 대외무역을 하는 회사 본사나 해외지사로 나가는 졸업생들도 있다.”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한국에도 우리 학교에 와서 가르치고 싶어 하는 교수님들이 많다. 남북 관계가 잘 풀려 그분들이 올 수 있게 되면 학교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송금 문제가 해결돼 의대 건물 공사가 재개되면 좋겠다. 우리 학교를 해커양성소니 뭐니 하면서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의 똑똑한 젊은이들이 세상을 볼 줄 아는 올바른 시각을 갖게 되면 통일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1·4 후퇴 때 월남한 평양 피난민 출신
전유택 평양과기대 총장은 1941년 11월 평양에서 목재상을 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51년 1·4 후퇴 때 부모를 따라 월남했다.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공대 전기과를 64년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마쳤다. 미 항공우주국(NASA), 걸프오일, 브리티시석유(BP) 등에서 30여 년간 엔지니어로 일했다. 2000년대 초 ‘고난의 행군’ 때 고통을 겪는 북한 주민들 소식을 접하고, “저곳에 있었으면 나도 굶어 죽었겠다”라는 생각에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북한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일할 요량으로 2003년 연변과기대에 자원했다. 거기서 전기신호처리를 가르치며 김진경 당시 총장의 지시로 평양과기대 설립을 준비했다. 2010년 개교에 맞춰 평양과기대로 옮겨 교수 겸 교무 담당 부총장으로 학사 운영에 참여했다. 지난해 3월 평양과기대 2대 총장에 취임했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으로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딴 부인도 북한 입국 금지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평양과기대에서 영어와 경영학을 가르쳤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bae.myungb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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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